내가 알고 싶은 나 자신
점심을 먹고 탕비실로 향하다 복사기 아래쪽에 떨어진 만원짜리 두장을 보았다.
나는 주인이 보고 찾아가라고 돈을 주워서 복사기 옆 테이블에 올려두고, 탕비실로 들어갔다.
커피를 타면서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사무실인데 주인이 아닌 사람이 돈을 가져갈 수도 있을 것 같아 메모를 붙이고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돈을 가지러 나오다가 뜻밖의 장면을 목격했다.
우리 부서 조교님이 탕비실로 오다가 돈을 보더니 얼른 주워 주머니에 넣은 것이다. 조교님은 나를 보지 못한 채 내가 있는 쪽으로 왔고, 가까이 와서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탕비실로 들어갔다.
그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웠기에 '본인이 흘린 돈이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본인이 흘린 돈이 아니더라도 줍는 걸 비난할 수가 있을까?
진위는 이제 알 수 없어졌고, 생각은 다른 데로 옮겨갔다.
나는 왜 그 돈을 주워서 내 주머니로 넣지 않았을까.
아무나 가질 수 있었던 거라면 나는 왜 가지지 않기를 선택했을까.
이와 같은 상황은 이전에도 있었다.
교외로 휴가를 갔을 때 오만원짜리가 겹겹이 포개진 돈뭉치를 주운 적이 있다.
얼핏 봐도 몇십만원은 될 것 같았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곳에서 꽤 떨어진 관광 안내소를 찾아 돈을 맡겼다.
그 돈이 결국 주인을 찾게 될지 알 수 없고, 그렇게 한 것이 결과적으로 내가 가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 될지라도, 그 돈을 내가 가지지는 않는 것이 나에겐 중요했다.
이런 걸 구태여 '정직'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고, 남들과의 비교에서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도 경계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에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나 자신에게
'나'라고 알고 싶은 모습이 되어주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했어.
내가 알아.
이 세상 그 누구도 내가 바꾸거나 책임질 수 없지만 나 자신만큼은 그렇게 할 수 있기에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것이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생각만큼 이상적이지 못하다. 나도 알고 남도 아는 흠결이 많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남들이 알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양보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남의 돈은 줍지 않는 사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