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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Aug 02. 2020

옛날의 행운

그때 우리의 전부였던 것

지난 일주일 당면한 급한 일로 조금은 바쁘고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이동을 하거나 필요한 일을 처리하면서 잠깐의 틈이 생길 때면

자꾸만 옛날에 지나온 시간들이 떠오르고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내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한때의 나와 우리.


언제나 제자리이고 언제까지고 나이를 먹지 않는

순진하고 무지한 그들은 기억의 주인이다.

아직 오만하고 아름다운 그들은 내 기억이 당연히 자기들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 따위 없다. 스스로가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보며 살갗 같은 그리움이 돋았다.

겁도 없이 마음의 전부를 주었던 일.

누군가의 그런 마음을 받았던 일.

그게 어떤 일인지도 모르면서

누군가의 극우선을 점유하고

절대적인 위치를 내어주던 일.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사랑하던 일.


모든 것이 놀라울 만큼 무모하여 조금 섬뜩하게 느껴졌다.

지금의 나에게 지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그들의 이치에선 그저 당연한 것들이다.

그들은 상처가 없어서 잔인하다.

피가 나도 웃는다.

젊음이란 총체적인 무감각이 아닐까,

존재의 광휘 속에 눈이 먼 상태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직도 나는 젊어있지만 이제 나는 젊음이 아까운 줄을 안다.

이때가 한 때라는 것도 알고, 지나가고 있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도 느낀다. 흘러가는 물살 속 내 존재와 무게를 의식하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받아들였고 이행을 위한 노력, 조정, 타협도 가능하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맹목적 추구는 있지 않고 있어서도 안된다.


일상을 위해 기능하는 현실 감각이 충만해진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은 그때 그 '마음'이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

무엇보다도

마음이 있었어요.

그걸 내놓고

먹으라고

먹으라고 했어요.

-정현종, <옛날의 행운> 중에서


아무것도 없는 중에 전부인 마음.

먹으라고

먹으라고 주는 마음.

지금 누가 그렇게 준다면

부담스러워 정중히 밀어낼 그 마음.


그게 '옛날의 행운'인 것을 이해하는 지금이 좋다.


마음만 주고 마음만 먹어서 되는 게 사랑이 아닌 걸

알고 있는 지금이 더 좋다.

마음 아닌 다른 것들

더 속되고 단단하고, 죄가 깃든 것들까지

줄 수 있는 지금이 더 좋다.


정현종 시인의 <옛날의 행운>은 내가 20살 때부터 알았던 시이다.

그 옛날에 대한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이 느껴져 좋아했는데

지금 보니 이 시는 옛날의 행운을 되찾고 싶은 시가 아닌 것 같다.

그 행운은 옛날 일 때나 행운인 것을 말하는 시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의 삶에는 마음 말고도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속된 현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좋다.

순수하지 않은 마음으로도 밥을 먹고 서로를 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좋다.

그들과 함께, 그들로서 살아갈 것이다.


옛날의 행운을 뒤로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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