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그만두거나 연구실을 옮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와 소속 연구실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만 써본다.
- 졸업과 논문 실적에 대한 고민
대학원 생활에서 결실을 맺는 부분인 학위 취득과 학술지 논문 게재는 대부분 학위 과정 후반부에 일어나는 일이다. 대학원 연구라는 게 원래는 없던 길을 새롭게 가는 거라서, 몇 년을 노력한 후에야 결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데에는 제출 후에도 몇 달이나 심하면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4년을 연구해서 이제야 결실을 앞두고 있었는데 결말이 학술지 논문 0편인 박사 중퇴자라면, 심히 부당한 일이 벌어졌더라도 대부분은 참고 마저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중퇴가 아니라 연구실을 옮기더라도, 그동안 했던 연구는 대부분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적 재산권 문제인데 앞으로 더 살펴보겠다.
- 새 지도교수를 구하기 어려움
대학원생은 누구나 지도교수에게 속해 있어야 하기에, 지도교수를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새로 맡아줄 지도교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1) 같은 학과에 속해 있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연구 분야가 천차만별이라 연구 주제가 대략이라도 맞는 지도교수를 찾기가 어렵고, 2) 새 지도교수는 학생의 이전 지도교수와의 사이가 불편해질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학생은 졸업하면 떠나겠지만 교수들끼리는 어쩌면 몇십 년을 함께 일해야 할 수도 있는 동료 사이이지 않은가. 새 지도교수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다.
- 연구 주제가 바뀌어도 문제, 바뀌지 않아도 문제
새로 지도교수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서 연구실을 옮겼다고 했을 때, 연구 주제가 크게 바뀌어도 문제, 바뀌지 않아도 문제다. 주제가 바뀔 경우, 원래 분야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 인맥 등이 아깝고, 새 분야를 개척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원래 분야를 선택했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걸 포기하는 것도 부당하다. 하지만 반대로 주제가 바뀌지 않을 경우, 원래 지도교수가 그 분야 학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을 걱정해야 한다. 그 영향력을 가지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뒤에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지 등을 걱정하게 된다.
* 이런 것을 'institutional betrayal', 즉 조직 단위의 배반이라고 한다는 것을 이번 일로 배웠다. 쉽게 말해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조직이 그 역할을 하는 데에 실패하는 것이다. 마땅히 마련했어야 할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 마땅히 지원하고 보호해야 할 피해자를 제대로 돕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을 포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