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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곧 Jan 30. 2024

해외 박사 과정 4년 차, 지도 교수를 바꿨다

이제 와서 그만두거나 연구실을 옮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박사 지도 교수를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때 나는 이미 박사 3년 차였고, 그 대학에서 학위 과정이 아닌 연구원으로 있었던 시간을 포함하면 연구실 생활은 5년째였다. 말도 안 될 정도의 부조리를 여럿 겪었지만, 이제 와서 그만두거나 연구실을 옮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부당한 대우를 당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와 소속 연구실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몇 가지만 써본다.

- 졸업과 논문 실적에 대한 고민
대학원 생활에서 결실을 맺는 부분인 학위 취득과 학술지 논문 게재는 대부분 학위 과정 후반부에 일어나는 일이다. 대학원 연구라는 게 원래는 없던 길을 새롭게 가는 거라서, 몇 년을 노력한 후에야 결실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데에는 제출 후에도 몇 달이나 심하면 1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4년을 연구해서 이제야 결실을 앞두고 있었는데 결말이 학술지 논문 0편인 박사 중퇴자라면, 심히 부당한 일이 벌어졌더라도 대부분은 참고 마저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까? 중퇴가 아니라 연구실을 옮기더라도, 그동안 했던 연구는 대부분 결실을 맺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적 재산권 문제인데 앞으로 더 살펴보겠다.

- 새 지도교수를 구하기 어려움
대학원생은 누구나 지도교수에게 속해 있어야 하기에, 지도교수를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새로 맡아줄 지도교수를 구해야 한다. 그러나 1) 같은 학과에 속해 있는 교수들 사이에서도 연구 분야가 천차만별이라 연구 주제가 대략이라도 맞는 지도교수를 찾기가 어렵고, 2) 새 지도교수는 학생의 이전 지도교수와의 사이가 불편해질 가능성도 감수해야 한다. 학생은 졸업하면 떠나겠지만 교수들끼리는 어쩌면 몇십 년을 함께 일해야 할 수도 있는 동료 사이이지 않은가. 새 지도교수를 맡아줄 사람을 찾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다.

- 연구 주제가 바뀌어도 문제, 바뀌지 않아도 문제
새로 지도교수를 맡아줄 사람을 찾아서 연구실을 옮겼다고 했을 때, 연구 주제가 크게 바뀌어도 문제, 바뀌지 않아도 문제다. 주제가 바뀔 경우, 원래 분야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 인맥 등이 아깝고, 새 분야를 개척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원래 분야를 선택했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걸 포기하는 것도 부당하다. 하지만 반대로 주제가 바뀌지 않을 경우, 원래 지도교수가 그 분야 학계에서 가지는 영향력을 걱정해야 한다. 그 영향력을 가지고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뒤에서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지 등을 걱정하게 된다.


연구실을 옮기는 것이 어려워서 지레 포기하며 합리화했던 걸 수도 있는데, 사실 연구실을 옮길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노력하고 진실되게 대화하다 보면 부서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했다. 그런 화해가 아니라면 적어도 그 상황을 견디고 졸업은 할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곤 했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이해해보고도 싶었다. 저 사람이 살아온 인생 궤적을 보면 이해 못 할 것도 없잖아. 저렇게 밖에는 남을 대하지 못하는 저 사람도 참 안 됐다. 지금까지 누가 저 사람에게 올바른 조언을 해줬겠어. 저 사람처럼 권력상 우위의 입장에 오래 있다 보면, 나쁜 의도가 없는 사람도 이상한 행동 방식을 습득하기도 할 테지. 한번 솔직하게 대화해 보고 알려줘 보자.


나는 이런 식의 생각을 꽤 오래 했고 어느 정도 실천도 했다. ‘당사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이 마음 고생하고 있는 부분을, 듣는 사람이 공격받는다고 느끼지 않도록 표현을 고르고 골라 전달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조심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이런 대화를 통해 갈등이 해결되는 때도 있었고, 그런 내 노력에 상대가 진심으로 고마워한다고 느끼기도 했다. 상대방의 나쁜 패턴을 내가 이해하고 있으니, 그런 부분을 잘 피하기만 하면 그런대로 평화롭게 공부를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일 같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시점 이전까지는 말이다. 


이 모든 과정이 내 나름의 선의였던지, 어려운 길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던 건지, 혹은 이해심 많고 고결한 사람이고 싶은 내 욕심었던 건지는 이제 와서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얼마 정도씩은 섞여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상황은 내가 견딜 수 있는 선을 이미 지나쳐있었던 것 같다. 이대로 견디고 졸업하겠다고 생각하던 느 날,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어떤 사건이 위태롭던 마음에 마지막 한 방을 쳤고, 그때서야 나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걸 알았다. 그건 내가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을 뿐, 이미 한참 전부터.


나는 그 순간을 몸의 감각으로 기억한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히고 불안해져서,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던 감각으로. 이 정도는 괜찮다며 억지로 견뎌보려 했더니 몸 그 상황을 거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에게 피해를 준 사람을 나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는 그 사람과 한 공간에 있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고, 거의 생리적인 거부감이 올라왔고, 금방이라도 도망쳐야 할 것 같이 불안했다. 숨이 짧고 얕아졌고 몸이 굳어졌다.


그런 기분을 느끼면서도 어떻게인가 회의를 마무리하고 나와서, 겨우 길가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았던 때가 기억난다. 그때 비치던 오후 햇살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과, 그 모든 것에서 단절된 것 같았던 나를 기억한다. 그 말도 안 되는 고립감이라니.


그 후로 며칠 동안 책상 앞에, 나무 아래에, 강가에 앉아 한참 생각했다. 참고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학위 과정이 끝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 며칠이 걸렸다. 학위를 관둘 것이 아니라 연구실을 옮길 수도 있겠다는 걸 깨닫는 데에 며칠, 관련 담당자들 (학교 상담사, 옴부즈 (ombuds), 대학원 과정 책임자, 학과장 교수님 등)을 만나 조언을 듣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에 또 며칠, 새 지도교수를 구하는 데에 며칠, 이전 지도교수에게 연구실 이동 결정을 통보하기까지 며칠, 관련 서류 제출에 며칠이 걸렸다.


그리고 그 서류가 승인되는 데까지는 다시 반년 정도가 흘렀다.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변경의 사유가 워낙 명확했기 때문이다. 러나 그것과 행정적 합의는 별개였다. 다른 글에서 더 설명하겠지만 지도교수 변경에는 지적 재산권을 포함하여 여러 합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전 연구실 측에서는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 그러나 마음의 힘이 약해졌을 때에는 흔들리기도 했던 ― 이상한 방식을 합의안으로 제시했다. 한편으로는 지금 이 선택이 나의 미래에 어떤 악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라며, 졸업 후에 어딘가에 면접을 보게 되면 나의 이 뜬금없는 이상한 결정을 어떻게 설명할 거냐는 식으로 겁을 주기도 했다. (참고로 꽤 설명하기 쉬운 일이고, 설명할 필요 자체가 없을 가능성도 높다.)


그런데 그 일방적인 합의안을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더니 지도교수 변경 절차가 중간에 멈춰버렸다. 내가 느끼기에는 학교 행정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소극적이었다. 관련 이메일에 여러 날 동안 답장이 오지 않아서 이웃 부서의 다른 직원을 통해 답장을 부탁하거나 새 지도교수님이 담당자를 직접 만나서 부탁하신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렀다. 누군가가 일부러 시간을 끌었는지, 그냥 할 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어떤 과정이 정말 오래 시간을 잡아먹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날짜까지 양측이 의견을 제출하고 또 어느 날짜에는 권한 있는 누군가가 중재하여 합의에 이르게 하는 것이 옳 것 같은데, 적어도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는 그런 부분이 학칙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아마 없는 학교가 대부분일 것이다. 지도교수 변경 사유가 얼마나 명확하든 한쪽이 협조하지 않으면 강제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문제의 근원은 학계의 구조 자체에 있었겠지만 나는 학교의 시스템이 나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 나를 도와주고 지켜준 여러 고마운 개인들이 있었던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 이런 것을 'institutional betrayal', 즉 조직 단위의 배반이라고 한다는 것을 이번 일로 배웠다. 쉽게 말해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조직이 그 역할을 하는 데에 실패하는 것이다. 마땅히 마련했어야 할 예방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 마땅히 지원하고 보호해야 할 피해자를 제대로 돕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을 포함한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사이 처음 결심을 했을 때 충만했던 투지와 확신은 깎여 나갔고, 내 공부는 방향성을 잃고 흔들렸다. 팬데믹으로 안 그래도 모두가 혼란스럽고 고립되었던 시기였는데, 연구실 학교를 중심으로 맺었던 다른 인간 관계 흔들렸다. 새 지도교수님과 새로 시작한 프로젝트에 열중하는 게 최선임을 알고 있었지만 집중하지 못했다. 재택근무를 한다며 집 밖으로 아예 나가지 않는 날도,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도 많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뭘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래 하던 프로젝트도 새 프로젝트도 진전이 없었다.


내가 그렇게 정체되어 있는 것이 외부 요인으로 인한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게으르고 무능해서인 건지도 점점 헷갈렸다. 좀 더 시간이 지나자 별것 아닌 일을 내가 크게 만든 게 아닐까, 그냥 참고 견디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저편에서 원하는 대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게 어떨까 고민했다. 이 고통과 투쟁에 의미가 있긴 한 건지 곱씹었다. 계속 생각하다 보면 그냥, 모든 것에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았다. 공부도 목표도 지금까지 이룬 것들도, 이 투쟁을 통해 내가 지키고 싶었던 삶의 기준과 가치도 다 부질없었다. 그리고 그 무엇을 지켜야 했던 나 자신도 좀 싫었다. 별 쓸데없는 것을 지키겠다고 싸우다가 괜히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그래도 견디고 있었더니 박사과정 4년 차 초반을 지나던 시점에 지도교수 변경이 승인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승인이 되었다는데 그 무엇도 그렇게까지 나아지지는 않았다. 예전 연구에 대한 권리는 여전히 모호했고 내가 해온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나는 여전히 주화입마 속을 헤매고 있었다. 우울하고 어두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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