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곧 Jan 26. 2024

어느 박사 과정의 최종 발표 날

해야 할 말이 있었다


박사 최종 발표* 날 아침.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텅 빈 연구실에서 혼자 발표 자료를 한번 더 살펴보고 설명이 막히는 부분을 다시 연습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발표 자료 끝에다가 한 장을 추가했다. 보라색 꽃이 핀 들판 사진을 넣고 글을 몇 줄 썼다. 그렇게 추가한 부분이 괜찮은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괜히 무섭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 소용없다는 생각도 했지만, 나에게는 해야 할 말이 있었고 그냥 그 말을 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승인을 받을 수도 없고 받을 이유도 없는 일이었다.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발표 장소로 향했다. 학교 친구들과 심사위원들이 도착했고 원격으로 참석하는 심사위원들과도 연결을 확인했다. 서로 간단한 소개를 하고 발표를 시작했다. 


45분 남짓한 발표는 연습한 대로 잘 흘러갔고 곧 마지막 장에 다다랐다. 발표를, 박사 과정을 마칠 때다. 해외 대학에서 연구를 시작한 지는 7년, 박사 과정을 시작한 지는 5년째였다. 


*박사 최종 발표: 박사 학위를 받기 위한 최종 관문 중 하나이다. 학위 논문 내용을 발표하고 심사 위원들의 질문을 받는데, 이 질문들에 맞서 자기 연구를 방어해야 한다는 뜻에서 최종 발표를 디펜스(defense)라고도 한다. 학교마다 과정이 다를 수 있지만, 대개 1) 학위 논문을 심사위원들에게 제출한 후, 2) 최종 발표 및 심사를 거치면 3) 통과 여부 및 논문 수정 사항이 결정되고, 4) 기한 안에 학위 논문을 수정해서 최종 제출하면 학위를 받는다.

심사위원들은 연구가 새로운지, 학문적으로 의미가 있는지, 논리가 바른지, 충분한 근거를 제시해 주장을 뒷받침했는지 등을 살펴서 학생이 박사 학위를 취득할 자격이 있는지를 판단한다. 




안 그래도 어려운 해외 유학 생활에 팬데믹이 겹쳤고, 연구실에서 이런저런 부조리를 겪고 봉변을 당하다 보니까 나는 일종의 주화입마(무협지에서 자주 쓰는 말인데, 예상치 못한 충격, 고민, 욕심 등 주로 마음의 문제로 인하여, 자기 기운을 통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상태를 일컫는다)에 빠졌다. 내 마음은 어떤 때는 분노, 억울함, 복수심 언저리에 있었고, 어떤 때는 무기력, 후회, 자책감, 불안, 우울 등 보다 어둡고 끈적한 곳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박사과정 4년 차에 지도교수를 바꾸고 새 연구를 시작해 결국 5년 차에 졸업했다. 


다음 글에서 더 살펴보겠지만 이것 자체로 꽤나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고, 나름대로 자부심도 느낀다. 하지만 단순히 '어려움이 많았지만 내 신념대로 계속했더니 결국엔 잘 되었더라'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쩌면 참고 졸업하는 편이 더 현명했을지도 모른다. 용감하게 싸웠지만 딱히 승리랄 것도 없었고, 승리 비슷한 것이 별로 달콤하지도 않았으며, 내 고생을 누가 보상해 준 것도 아니다.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것도 있지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제일 좋았을 것이다. 지금도 남들보다 뒤처진 기분이 들고 미래가 불안하다. 고통을 통한 성장과는 별개로, 손해는 손해고 고통은 고통이다. 


즉 (여전히 이렇게 심란한 것을 보면) 공부를 마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좀 주화입마에 빠져있는데, 회복이 덜 된 건지 새로운 주화입마가 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억울해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는 것을. 주화입마를 다스려 다시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어떤 부조리한 일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말하자면 누가 나를 악의적으로 밀쳐서 넘어지는 바람에 다리를 심하게 다친 것과 비슷하다. 내 잘못이 아니지만, 보상은 받을 수도 못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 고통과 회복은 내 몫인 거지. 


다쳤다가 회복하면 다치기 전보다 다리가 더 튼튼해지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노력하면 완전히 회복될 수 있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누가 알아주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 그럼에도 재활을 하는 것이 좋겠는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원인이 무엇이었든, 이게 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만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글을 '박사과정 주화입마 재활일지'라고 부르기로 했다. 




다시 최종 발표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내 재활 과정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가 최종 발표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 as no flower blooms without wavering, 
… 어떤 꽃도 흔들리지 않고 피지는 않기에, 



발표 막바지에 다다르자 아침에 새로 만들어 넣은 발표 자료가 나왔다. 이런 발표 끝에는 보통 연구 내용을 쉬운 말로 정리하면서 지도 교수와 동료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게 마련이다. 나는 내 박사 최종 발표를 이렇게 마쳤다. 


"제 연구의 중요한 키워드가 불확실성이었는데, 겪어 보니 삶에도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더군요. 그러나 어느 한국 시인이 썼듯,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습니까? 흔들리고 넘어져도 계속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것도, 저는 박사 공부를 하며 배웠습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심사위원 분들, 제 지도교수 B 교수님과 S 교수님, R 대학과 H 대학의 동료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옴부즈(ombuds)* 오피스, R 대학 내 상담 센터, 그리고 젠더 기반 차별 및 폭력 피해 지원 센터**의 도움에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도움 없이는 해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으로 제 박사 학위 발표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주화입마 상태로 인해 안 해도 될 소리를 괜히 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순간이 내 회복의 어떤 상징적인 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말을 해야 했고, 그래서 했다. 얼마 후 나는 최종 학위 논문을 제출했고 박사가 되었다. 할 말을 했더니 주화입마가 좀 줄어들긴 했는데 없어지진 않았다. 하긴 회복이 그렇게 한 순간에 무 자르듯 일어날 리도 없다. 


* 옴부즈 퍼슨 (ombuds person): 단체 안에서 생긴 문제를 상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듣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도와준다. 관련 부서에서는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도움이 될 만한 학칙이나 행정 과정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정보를 제공하며, 직접적인 중재자 역할을 맡기도 한다. 비밀 보장, 중립성,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것 등을 원칙으로 하며, 대학에서는 주로 총장 직속으로 운영하는 것 같다. 

** 젠더 기반 차별 및 폭력 피해 지원 센터: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젠더를 기반으로 한 학교 내 차별 및 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부서이다. 상담 센터나 윤리/징계 위원회 등과 연계하기도 하나, 운영 목적과 업무의 범위가 구분되어 있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권력 불균형 및 불평등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직원이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두고 일한다는 것이 다른 부서와의 차별점인 것 같았다. 나는 직접적인 차별 문제뿐만 아니라 지도교수-대학원생 사이의 권력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일러두기: 글쓴이와 주변 친구들의 대학원 경험에 기반한 글이지만,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하여 구체적인 사건, 시기, 인물 관계, 명칭 등은 실제와 다르게 변형되었습니다. 글에 나오는 인물과 현실의 누군가가 반드시 1:1로 대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