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곧 Feb 13. 2024

스스로를 산책시킬 책임

인간이나 강아지나 마찬가지다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성찰해 보니 나는 책임감이 강하고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엄격한 편이다. 이런 성향은 나의 훌륭한 점들과도 연결되어 있지만,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는 괴로움을 키우기도 했던 것 같다. 훨씬 일찍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을 부조리를 오래 참고 있었던 것도 어쩌면 상대의 몫까지 내가 노력하고 있었던 탓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범위까지 노력하느라 비틀거리다가 무기력의 늪에 빠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의 책임감을 스스로를 돕는 방향으로 돌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번 글은 그런 노력 중 하나로, 친구와의 대화에서 배운 '스스로를 산책시킬 책임'에 관한 이야기다.




무기력하고 우울하던 어느 날, 그날따라 문득 체력이 조금 돌아왔기 때문일까? 이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는 심리 상담을 알아보았고, 몇몇 친구들에게도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그러다 고시 공부를 하고 있던 친구 생각이 났다. 전화 통화를 하다가 내가 친구에게 물었다.


"나 요즘 많이 무기력하고 힘든데, 주로 집에 혼자 있는 것도 문제인 것 같고, 연구라는 게 성취감이 자주 느껴지지는 않는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 생각하다 보니 네 생각이 났어. 너도 혼자 지내면서 공부하는 게 많이 힘들 때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 너는 힘들지 않아? 어떻게 지내고 있어?"


친구는 자신도 특히 공부를 시작한 초반에 많이 힘들었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방송 프로그램 본 적 있어? 거기 보면 강아지 문제 행동은 대부분 산책과 연관돼 있거든. 다른 원인도 섞여 있을 때도 있지만,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강아지도, 공격적인 강아지도, 무기력한 강아지도 적절한 산책을 통해 행동이 나아지더라고. 산책 시간이 모자랐거나, 빈도가 적절하지 않거나, 산책 갈 때 강아지가 스트레스를 받는 요소가 있거나……. 그런 걸 고쳐주면 강아지들이 많이 나아지는 거지. 그런데 내가 해보니까 인간도 강아나 다름없다. 스스로를 데리고 나가서 산책시켜야 해."


너무나 옳은 말이었다.


강아지가 집안을 물어뜯고 어지럽힌다고 해서 쫓아다니면서 혼내는 것이 답은 아니다. 그보다는 산책이나 놀이를 통해 강아지에게 필요한 만큼의 하루 활동량을 채워주는 것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있다.


인생의 수렁에 빠져서 문제 행동을 하는 인간도 강아지와 마찬가지다. 밥을 안 먹거나 너무 많이 먹거나, 잠을 안 자거나 너무 많이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하거나 너무 많이 하거나, 자신을 공격하거나 남을 공격하거나. 일단 데리고 나가서 제대로 산책을 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내 경험에서도 느끼고 감정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도 느끼는 건데, 마음이 힘들거나 우울할 때 가만히 앉아서 기분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대체로 좋지 않은 방법이다. 스스로가 힘든 이유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힘든 상태에 매몰되어 있는다고 해서 힘들지 않아 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할 때에는 특히 바깥에 나가는 것, 햇빛을 쬐는 것, 자연 속에 있는 것, 몸을 움직이는 것, 규칙적인 리듬 속에 있는 등이 도움이 된다고 배웠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만족되는 것이 산책이다.


저녁 산책길에 자주 만났던 동네 고양이




'스스로를 산책시키라'는 원칙의 훌륭한 점 중 하나는 그 논리의 단순성에 있다.


미래가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고? 산책을 해라.

무기력하고 우울하다고? 산책을 해라.

연구가 안 된다? 산책을 해라.

산책을 해도 마음이 힘들다? 산책을 더 해라.

산책무새냐고? 산책을 해라.


산책을 시켰는데도 강아지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 문제 행동을 한다면? 그냥 산책이 더 많이 필요한 강아지가 아닐까? 양치기 개의 혈통을 타고났다거나 하는 어떤 강아지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채워야 할 활동량이 아주 많다고 하지 않나. 어쩌면 사람도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산책을 좀 해봤는데도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산책을 좀 더 해보자.


그리고 산책을 해도 우울하고 안 해도 우울하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산책을 해야 한다. 적어도 산책을 했고 우울한 하루가 아무것도 안 하고 우울한 하루보다는 낫지 않나.




너 자신을 산책시키라는 친구의 말을 곱씹다 보니까 거기에는 더 큰 가르침이 있었다. 바로 스스로를 보호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강아지나 어린아이라고 생각해 보자. 동시에 나는 그들의 보호자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내가 스스로에게 얼마나 못되게 대하고 있었는지 새삼 알게 된다.


예를 들어 나는, 일이 바쁘거나 걱정이 많고 불안할 때면 잠을 제 때 안 자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돌보는 어린이나 강아지에게, '내가 바쁜 일 끝낼 때까지 넌 잠도 자지 마.'라고 할 수 있나? 내가 바쁜 건 바쁜 거고 잠은 재워야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많이 먹는 사람이 있고 덜 먹는 사람이 있다던데 나는 후자다. 배가 고프기는 한데 허기짐을 쉽게 무시한다. 제대로 된 음식을 챙겨 먹기도 귀찮아한다. 그런데 나 자신을, 내가 돌보는 어린 아이나 강아지라고 생각한다면 그럴 수는 없다. '나 지금 신경 쓸 일이 많으니까 넌 배 고파도 기다려. 건강에 나쁜 거라도 아무 거나 대충 먹고 때워.' 하고 말하며 굶길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슬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몇 날 며칠 집에서 울거나 울적해하며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돌봐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나 기분 나쁘니까 너는 집 안 구석진 데 가만히 앉아 있어. 밖에 날씨가 좋든, 네가 며칠이나 못 나갔든 무슨 상관이야? 내가 이렇게 괴로운데.'라고 할 것인가? 내가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강아지는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할까?


책임감이 강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나는, 어린 아이나 강아지, 약자, 타인에 대해서는 그렇게 못되게 굴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이 괴롭더라도, 바쁘거나 힘든 일이 있더라도 보호자로서 최소한의 도리는 할 것이다. 잠을 제 때 재우고 건강한 밥을 제 때 먹이고 산책을 가는 것 같은 일들 말이다.


그렇다면 왜 스스로는 돌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우울해서, 무기력해서, 부조리한 일을 겪어서, 이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중 어느 것도 스스로를 못되게 대할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나는 수렁에 빠진 다른 대학원생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꽤 해주었다. 우리는 틈틈이 서로에게 'walk your dog! (네 강아지 산책시켜!)'라고 말해주곤 했다.


저녁 시간에 산책을 나가면 종종 풀어놓고 키우는 동네 고양이들과 비버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어린 아이나 강아지가 밖에 산책을 나갔다가 동물을 만나면 아주 좋아하지 않겠는가? 어른인 나도 그렇다. 자주 데리고 나가서 바람도 쐬게 해 주고 동물도 보게 해주어야 한다.


나뭇가지를 갉고 있는 비버


이전 03화 연구자에게 시간의 자유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