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장의 악당들과 그들의 반대편
오랜만에 학회에 갔더니 내가 좋아했던 것들과 싫어했던 것들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학회를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다양한 관점과 관심사, 전공,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과학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 좋았다. 질문과 토론, 논쟁도 좋았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내 발표를 들은 사람이 와서 자기 생각을 들려주는 것도 좋았다.
누군가의 고유한 지성과 직관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을 좋아했다. 그런 것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학계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사람의 지성이 성큼성큼 걸어 나가 길을 개척하는 것을 본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뻗어온 길들이 서로 연결되는 순간은 더 소중했다.
타오르는 야망은 내게 딱히 없었지만 이런 반짝이는 것들을 이따금 마주칠 수 있다면 학자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디에나 그렇듯 학계의 밝은 면 뒤에는 그림자도 있었고, 방황하던 이 당시 내게는 그림자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대체로 화기애애해 보이는 학회에도 미묘한 권력관계가 있고 차별이 있고 치사하고 유치하고 음침한 면도 있었다. 이를테면 학회에 생전 처음 온 어린 대학원생을 원로 교수가 별로 정당해 보이지도 않는 논리로 찍어 누르는 경우 같은 것. 몇 년을 매진한 연구가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거라는 비난을, 여러 학계 사람들 앞에서, 그 분야의 대가에게, 창피를 당하는 방식으로 듣는 것은 꽤 타격이 큰 일이다.
꼭 연구의 과학적 방법론이 틀렸기 때문도 아니었다. ‘몹시 중요한 기존 연구와 다른 결과를 가져와놓고 그걸 언급도 안 하다니, 네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 아니냐’며 비판하는데 그 중요한 기존 연구라는 게 교수 자신의 연구였던 경우도 있었고, 학생의 발표를 끊고는 대뜸 ‘자기 생각은 다르다’고 해놓고선 설명은 뭉갠 경우도 있었고, ‘네가 발표한 내용은 내가 이미 10년도 더 전에 한 건데?’라면서 정작 그 내용을 학계에 발표한 적은 없다고 한 경우도 있었다. (어쩌라고……)
이런 못난 행동의 숨겨진 동기가 자기 자존심이나 에고를 지키기 위한 거라면, 그들의 에고와 자존심은 얼마나 연약하고 섬세한 물건이라는 말인가. 학회를 포함해 대학원과 학계가, 더 나아가 사회가, 저마다 반짝거리고 귀한, 그러나 분명히 아직 취약한 어린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는지 지켜보다 보면 거의 무서울 지경이다.
외부에서는 사람 좋아 보이는 교수님들도 연구실 내부에서는 대학원생들을 못 살게 구는 ―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착취하거나 정서적으로 학대하는 것 같은 ― 경우도 종종 본다. 학회장에서 모 유명한 교수님과 여럿이 웃고 떠들다가 숙소에 들어왔는데, 바로 그 연구실 학생이 지도 교수 때문에 울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지도 학생은 고통을 겪고 있는데도 학회에서는 세상 친절한 호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고 그들을 받아주고 계속 교류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이게 도대체 뭔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절이 싫어졌으면 싫은 사람이 떠나는 게 맞는 걸까. 떠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선한 사람들은 다 떠나니까 세상이 이런 꼴인 걸까.
사실 내가 머물고 싶다고 해서 머물 수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여전히 박사 후 연구원 채용 결정도 안 났고, 학위에 걸린 시간에 비해 실적도 모자란 것 같고, 내 이력에는 다소 설명이나 변명이 필요한 것 같았다. ‘정석적인' 연구자 커리어는 이미 물 건너간 것만 같아서 씁쓸하고 억울하고 불안했다.
오랜만에 참석한 학회장에서 발표를 듣다 보면 이따금 반짝반짝한 것들이 보였다. 내가 한때 좋아했던 것들인데 이제는 초라하고 시시한 것 같기도 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 방에 돌아가면 시차와 불안으로 잠이 오지 않아서 어둠 속에서 오래 깨어 있었다.
이번 학회에서 처음 만난 어떤 박사 과정 여학생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내게 와서 대뜸 우리 사이엔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자기 랩 친구에게서 내가 연구실을 옮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 이야기가 어떻게 전해졌는지, 어디까지 퍼졌는지 다 파악하지는 못했기에 덜컥 겁도 났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어려움을 겪는 동안 내가 외로웠기에 일단 적어도 이야기를 들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꽤 긴 이야기를 여러 번 나눴다. 지도교수가 학생을 얼마나 다양한 방면으로 상하게 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경험이 학생에게 얼마나 장기적인 타격으로 돌아오는지, 그런데도 우리는 이 안에 좀 더 머물고 싶은 건지.
그 친구는 연구실을 두 번이나 옮겼다고 했다. 도대체 회의 중에 지도교수가 학생에게, 그것도 임신한 여성에게, 상대가 진심으로 위협을 느낄 정도로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지를 일이 뭐였을까. 상상력을 동원해도 그럴 사정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휴, 내가 제일 말도 안 되는 꼴을 당한 줄 알았는데 너도 만만치 않은걸.’ 하며 깔깔 웃었다.
칼릴 지브란은 ‘고통이란 자신의 이해를 감싸고 있던 껍질이 깨지는 것’이라 했고 루미는 ‘상처를 통해 빛이 안으로 들어와 닿는다’고 했다. 이해의 껍질이 터져나간 아픈 자리로 빛이 스며들던가. 내 상처로도 빛이 스며들었다면 그건 어떤 색채였을까.
이번 학회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조금 긴 발표를 맡은 발표자 U가 자기 연구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옮겨보자면 이렇다.
이번 달은 정신 건강 인식의 달입니다. 우리 삶에는 예측할 수 없는 여러 일이 생깁니다. 우울증 같은 정신 건강 문제는 생각보다 흔하고, 누군가에게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도, 우울증과 만성 질환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정신 건강에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그리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하세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면 저도 여기 있습니다.
학회장이 고요해졌고, 잠깐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딱히 거부감은 없어 보였지만 순간적으로 좀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고 발표자는 짐짓 아무 일 아니었다는 듯 연구 발표로 넘어가려는 것 같았다. 그 때의 당혹스러운 정적과 혼자 서있는 발표자를 보자 나는 문득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혼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곧 더 큰 박수가 보태졌다. 박수를 치며 희미하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은 되지 못했지만 대신 이런 사람이 된 거구나, 하고.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맞이한 새벽, 숙소를 나가 혼자 바닷가를 걸었다. 하늘은 분홍으로 물들고 바다 위로 햇빛이 금빛으로 어룽졌다. 해 뜨는 바다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명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오전 W 교수님을 만나 박사 후 연구원 채용에 대한 확답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