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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Mar 16. 2022

그녀를 울렸던 잠옷 선물

커피 한 잔의 여유, 마음 나눔 그리고 행복

아기를 낳고 한참 동안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 보니 혼자서 커피 한 잔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다른 집 얘기를 들어보면 아기가 밤잠이 들면 남편에게 맡기고 혼자서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한다는데.. 제겐 그저 딴 세상 얘기였습니다.


엄마가 곁에 없으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엄마를 찾는 아이라 혼자 두고 어디 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에 다니던 회사의 우리 사주 배당금이 나온단 안내문을 받았습니다.


직접 창구로 가서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어머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아이를 맡기고 볼 일을 보러 갔습니다. 창구 볼일을 마치고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 잠시 들렀습니다.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었던가~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혼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다니.. 비록 30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날 느꼈던 행복은 아직까지도 생생합니다.^^


화창한 봄날, 카페 실외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그때 마침 불어왔던 봄바람. 눈을 감고 흘러나오는 재즈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며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어찌나 날아갈 것 같던지.^^(그래도 엄마 혼자 자유를 느끼는 것 같아 괜히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문득 생각나기도 해서 아기 동영상을 보면서~^^)

< 커피 한 잔의 여유와 행복 >




신혼집과 시댁이 가깝다 보니 출산 후 왔다 갔다 하다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시댁에서 1년여를 함께 살았습니다. 새 아파트로 입주하게 되면 거리가 멀어지니 자주 못 보게 되기도 하고 겸사겸사. 물론 마음 맞는 어머님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 전까지 10분 거리의 신혼집엔 가끔씩 청소를 하거나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만 갔습니다. 사실 그렇게 지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댁 앞집에 살고 있는 이웃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시댁 앞집엔 딸보다 3개월 빠른, 저보다 네 살 적은 아기 엄마가 살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아기 친구 엄마다 보니 둘 다 초보 엄마로서 공감 가는 것들이 생기다 보니 금방 친해졌습니다.


비록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양가라 어렵게 신혼을 시작했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이 참으로 예쁘고 대견해 보였습니다. 양가 어머님이 일을 하시다 보니 산후조리도 잘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으니 애잔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살던 집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남편은 직장을 다녀야 하니 혼자서 아기를 데리고 부동산중개소를 이리저리 다녀야 했던 그녀. 삶이 고달파 아기를 재워 놓고 부부가 많은 날들을 소리 죽여 함께 울었던 힘겨운 상황들.


같이 아기를 키우는 엄마로서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기 돌보느라 밥도 잘 못 챙겨 먹을 그녀를 위해 어머님이 해주신 음식을 몇 번 날라주고 하다 보니 어느새 좋은 이웃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 사주 배당금으로 70여 만원을 받았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용돈이 생긴 거라 바람도 쐴 겸 그녀에게 점심을 사주고 싶어 아기를 데리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그녀가 먹고 싶어 했던 샤부샤부를 먹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대형마트 앞 길거리 가판대 위에 있는 잠옷을 보며 잠시 만지작거리는 그녀. 아이 낳고 키우느라 정신없다 보니 매일 후줄근하게만 입게 된다며 예쁜 잠옷 입어본 지가 언제인지 모른다며 아쉬워했습니다.  




많이 힘들고 지친 아내의 마음을 잘 알지만 그래도 전과 같지 않은 아내의 모습에 남편도 많이 서운했던가 봅니다. 어느 날, 남편이 그녀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여보, 난 아기 키우는 힘겨움을 잘 알기에 당신의 부스스한 머리도 괜찮고 목이 늘어난 옷을 입어도 아름답다고 생각해. 하지만, 전보다 애교도 없어지고 항상 예민해져 있는 당신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그래."


그런 남편의 말에 그녀는 내가 애교가 있었냐 되물으니 남편은 적어도 요즘처럼 직설적으로 말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고. 아내가 육아에 지쳐 힘들까 봐 퇴근해도 참치와 김, 김치만 있어도 맛있게 식사하는 누구보다 착한 남편인 걸 알기에 그녀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배당금을 찾은 후 30여 분의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맘껏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침에 고장 난 어머님 댁 헤어드라이어가 생각나 새로 하나 사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간식과 함께 그녀에게 선물할 잠옷을 하나 샀습니다.


그냥 문득 생각이 나서 하나 샀다고.. 별로 비싸지 않은 것이니 부담 가지지 말라고 했더니 포장을 뜯어 잠옷을 손에 들며 좋아서 함박웃음을 짓던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언니, 고마워요.
내가 했던 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걸 기억하고 이렇게 선물해 줘서..

그렇게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의 남편이 퇴근을 했습니다. 그는 종일 육아에 힘들었을 아내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공차 한 잔을 사들고 왔습니다. 그걸 본 그녀는 어린아이 마냥 좋아하며 또 한 번 환히 웃었습니다.


어머, 여보~ 웬 일이야~!
나 오늘 계 타는 날인가 봐요~
언니가 선물도 해줬는데 당신도~!



두 사람이 함께 그 기분 그대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얼른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재우고 그녀에게 메시지 한 통을 보냈습니다. 마음이 담긴 한 장의 사진과 함께..

"OO 씨~*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때론 힘들고 고되고 지쳐
삶이 고달프다 싶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느끼고 깨닫게 되는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으로 인해
그런 순간들을 견뎌 내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결혼을 하고 보니 때론
내 맘과 같지 않은 배우자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이해해야 할 사람이
또 바로 배우자인 것 같아요~^^
 
육아에 지쳐 힘든 우리 엄마들이지만,
전쟁 같은 회사에서 밥벌이의 고단함에
힘겨운 아빠들이기에
그런 측은지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앞으로의 삶이 그래도 더
충만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싶어요~^^   

OO아빠에게도 지금
OO 씨의 따뜻한 말과 위로가 필요할 거예요~
지금도 물론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지만,
좀 더 사랑하고 이해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더 큰 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고른 선물이에요~^^
 
그 마음이 전해져 잠시라도 두 사람이
작은 행복의 시간을 보낸다면
나 또한 참으로 행복할 것 같아요~
잠옷 입고 남편을 위해서
고이 접어두기만 했던 애교도 한 번~^^"  


잠시 후 도착한 그녀의 메시지..


"언니~
제가 지금 남편과 결혼을 마음먹은 이유 중 하나가
말솜씨는 없는데 글 솜씨가 좋아 반해서
결혼하게 되었어요~
근데 언니는 글 솜씨뿐만 아니라  
말도 마음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네요♥
고마워요~  
언니가 나를 생각하며
잠옷을 고르는 모습을 그려보니  
감동받아 눈물이 났네요..
이 선물의 무게는 금처럼 귀해요!^^
기분이 너무 좋아 신랑에게
애교를 과하게 부릴까 걱정이..ㅋㅋ"  

 

비록 직접 보진 않았지만, 그날 밤 그 두 사람은 지치고 힘든 일상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대신

함께하기에 더없이 소중한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며 잠시나마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잠시 후 그녀의 카톡 메인 사진이 바뀌었습니다. 제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으로. 고맙습니다..♥라는 글귀와 함께.. 작은 마음 나눔으로 인해 더욱더 따뜻하고 행복했던 어느 봄날의 기억이었습니다.^^

        

< 당신의 고단한 삶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

        


written by 초원의 빛

illustrated by 순종

그림 속 사귐 - Daum 카페 :  '그림 속 사귐'에서 순종님의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정인 님의 '오르막길'

https://youtu.be/HwC3KGJKZIg


이승철 님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https://youtu.be/aT_qcT69v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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