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4월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출근해 사무실 제 방 문을 열었는데 은은한 꽃향기가 가득했습니다. 테이블 위에는 예쁜 꽃이 꽃병에 꽂혀 있었습니다.
< 내 생애 가장 특별하고 감동적인 꽃 선물 >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직원 중 한 명이 꽂아 놓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보다 일찍 출근한 직원이 두 명뿐이라 둘 중 한 명이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가서 물어보니 둘 다 아니라고..
전날 제가 마지막에 퇴근했으니 누가 일부러 와서 선물했을 리 만무했습니다. '누구지?'라고 잠시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우리 사무실 청소를 해주시는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분이 일하신 지가 1년 여가 되는 동안 그런 일은 전무했지만, 짐작 가는 사람은 그분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싶어 전화를 드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제 짐작이 맞았습니다. 집에 꽃을 사둘 일이 있었는데 평소 꽃을 좋아하는 제 생각이 났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조금 가져와서 꽂아 두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쑥스러워하시는 기색이 전화기 너머로 느껴졌습니다. 평소 청소하실 때 제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꽃이 눈에 들어오셨던가 봅니다. (그날 기분이 어땠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상이 가시지요?^^)
그리고 다음날 출근을 했는데, 전날에 본 것과는 다른 꽃 한 송이를 더 꽂아 두셨습니다. 전날 통화하며 너무나 좋아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던 영향인 듯합니다.
사실 직원들이 출근을 하기 전에 청소를 하시는 지라 가끔씩 제가 이른 출근을 했을 때 얼굴을 마주친 네다섯 번의 기억이 전부였습니다. 50대 중후반, 선한 얼굴에 웃는 모습이 무척 보기 좋은 분이셨습니다. 제가 한 것이라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몇 번 음료수를 챙겨준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5월 어느 날이었습니다. 출근을 하니 키보드 위에 정성스러운 글씨로 쓴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감사의 마음을 담은 인사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청소 아주머니가 남기신 메모였습니다. 건강이 나빠져 사정상 갑자기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내용이 담긴..
급한 일을 얼른 처리하고 전화를 드려야지 생각했는데, 그사이 직원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주머니가 저를 바꿔달라 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를 하려 했다고 건강 상태를 물어보니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 휴식을 취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면서 아쉬워하셨습니다.
누군가와 이별을 고하는 마음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 법이겠지요. 사실 특별히 잘해 드린 것도 없는데 너무나 좋게 봐주셔서 감사했고, 좀 더 신경 써 드리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꽃을 보면서 제 생각이 났다던 그분에게 제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거라 추측되었던 일이 순간 떠올랐습니다. 아마 그로 인해 그랬을 듯합니다. 그분에게 그토록 특별한 무언가로 가슴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분에게 꽃 선물을 받았던 전해 12월 직장 송년회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전 어느영어교육전문기업의 직영 캠퍼스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천여 명의 직원이 참석한 자리였는데 그해 처음으로 청소해 주시는 분들도 대상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시간이 되면 참석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깜짝 놀라시며 정말 가도 되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자리라 불편해하실 듯해서 저와 같은 테이블에 앉으면 되니 걱정 마시고 식사도 할 겸 구경하고 가시라고 했더니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그 당시 천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지만, 나중에 다른 원장님들에게 들어보니 청소해 주시는 분들이 참석한 경우는 없었던 듯합니다. 아무래도 알고 지내는 사람 한 명 없는 자리라 다들 불편하셔서 그러셨을 듯합니다.
하지만 엄연히 대상자 명단에 있었고 우리가 일하는데 도움을 주시는 분이라 저는 참석하셔서 식사라도 하시고 가라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마침 너무나도 좋아하셨고 참석 의사를 밝히셔서 자세히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당일 송년회에 참석하셨던 아주머니는 처음에 많이 당황하신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날 의상 콘셉트가 파티 의상이다 보니 화려한 의상과 메이컵으로 한껏 멋을 부린 젊은 사람들로 가득한 낯선 환경 속에서 당혹감을 느끼셨을 듯합니다.(사실 저도 드레스를 사기 위해 몇몇 친한 직원들과 서울 DDP를 돌아다녔는데 그녀들의 적극 추천으로 과감한 드레스를 선택했습니다.^^;)
< 송년회 때 입었던 파격적인(?) 드레스 >
그 마음이 전해져 그 자리가 조금이라도 덜 불편할 수 있게 같은 테이블 제 옆자리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하고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대화 상대가 되어 드렸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이런 행사 초대는 태어나서 처음이라며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듯합니다.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던 것뿐인데 그 한 번의 기억으로 인해 생각지도 못했던 꽃 선물과 마음이 담긴 편지 선물을 받았던 것은..
살아오면서 많은 선물을 주기도 혹은 받기도 했지만, 그때 그분에게 받은 꽃 선물은 제 생애 유난히 특별한 선물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고 지친 순간을 보내고 있던 제게 일상의 작은 여유와 웃음을 주었던.. 그리고 힘을 낼 수 있게 해 주었던 고마운 인연이었습니다. ^^
지난 연말, 한 해를 돌아보며 지난 인연들을 떠올리다 문득 그분이 생각났습니다. 가끔씩 카톡 프사가 바뀌는 걸 보니 전화번호는 그대로인 듯했습니다.
어느덧 10년이 지나고 프사의 모든 사진들은 얼굴의 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그 당시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시던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안부 문자를 보냈습니다.
< 우리가 만나는 인연들은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
서로 많은 말은 나누지 않았지만, 마음은 마음을 알아보는 법. 10년 전 서로의 가슴에 소중하고 특별하게 남았던 그 기억으로 인해 오랜만에 나눈 문자 한 통에 우린 좋은 날 식사 한 번 하자는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습니다.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번엔 그분을 만나러 가는 길에 예쁜 꽃 한 다발을 준비해서 갈까 생각 중입니다. 10년 전 제가 그랬듯이 그분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감동의 기억으로 남을 꽃 선물이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