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결혼기념일에 장미100송이를 선물한 아흔 넘은 아버지의 사랑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뭐가 그토록 중요하기에
그 시선을 옮기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뒤를 돌아보면 거기,
삶의 선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돌아보면 거기,
생의 꽃다발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데..
- 송정림님의 '감동의 습관' 중
[ 장미 백 송이 ]
장인어른은 허리가 굽고, 말소리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한 장인어른이 연분홍 장미를 백 송이나 사 들고 우리 집에 왔다. 같은 값이면 많은 꽃을 살 수 있는 도매 상가에 들렀다고 했다. 장인어른은 어렵게 꽃값을 흥정했을 것이다. 그 묵직한 꽃바구니를 든 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왔다.
어느 해에는 꽃을 가져오던 장인어른이 버스에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아내가 걱정하며 "꽃 사지 말고 택시를 타고 다니세요." 해도 장인어른은 고집을 부렸다. 장인어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것을 당신의 상처처럼 아파했다.
다른 자식들의 결혼기념일은 그냥 보내면서도 막내딸 내외의 결혼기념일에는 꽃바구니와 앞날을 비는 덕담의 글을 손수 마련했다. 우리 내외가 장인어른에게 이제 안 챙겨도 된다고 하면 장인어른은 말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이게 마지막이지."
어느 해에는 웬일인지 장인어른으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이제 걸음조차 힘들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 올해는 그냥 넘기나 보다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여기 파출소입니다. 박 아무개 씨라고 아십니까?"
장인어른을 아느냐는 전화였다. '무슨 일로 장인어른이 우리 동네 파출소에 와 있을까? 무슨 변이라도 당했나?' 아찔했다. 경찰관은 어르신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파출소를 찾아왔으니,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일 났다. 집에 계시지, 어쩌려고 길도 잘 모르는데 나오셨대?"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니 곧 경찰차가 도착했다. 장인어른과 어떤 할머니가 차에서 내렸다. 장인어른은 꽃바구니가 아닌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다. 함께 내린 할머니가 말했다.
"이분이 지하철역에서 젊은이에게 젊은이에게 길을 물어보더라고."
할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장인어른과 동네를 헤매고 다녔단다. 알고 보니 장인어른은 우리 집 주소를 잘못 알고 있었다. 얼마나 속이 탔을까. 장인어른을 두고 갈 수 없었던 할머니는 고민 끝에 파출소를 찾았다. 그렇게 파출소에서 내게 전화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고마웠다.
"내 구십 평생에 백차 타 본 일은 처음이다."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장인어른에게 화가 나면서도, 어렵게 찾아온 그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흔이 넘은 장인어른의 걸음은 마치 아기의 걸음마처럼 위태로웠다. 아마 꽃 시장에 갈 기력도 없었을 것이다. 장미꽃 대신 내민 케이크는 장인어른의 마음 그대로였다.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서 삼 년. 나는 해마다 결혼기념일에 장인어른 대신 빨간 장미 열 송이를 아내에게 준다. 우리는 장인어른이 바라는 대로 사이좋게 살아왔다. 지금 아내와 나는 행복하다.
우리는 장인어른이 바라는 대로 사이좋게 살아왔다.
지금 아내와 나는 행복하다.
인생이란 거창한 무엇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결국 내 인생의 내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그들이 바로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니까요.
-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