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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May 20. 2021

치킨 가게에서 날 울린 글, 그리고 나의 인생책

딸의 결혼기념일에 장미100송이를 선물한 아흔 넘은 아버지의 사랑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요?
뭐가 그토록 중요하기에
그 시선을 옮기지 못하고 있는 걸까요?
뒤를 돌아보면 거기,
삶의 선물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돌아보면 거기,
생의 꽃다발이 놓여 있을지도 모르는데..

- 송정림님의 '감동의 습관' 중




 요즘 남편은 뭐라 하지 않아도 휴일이 다가오면 혼자 뭘 할지 미리 스케줄을 짜 놓습니다. 코로나 시국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1년여를 외식은 물론 여행을 자제해 왔던 FM 아내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그러다가 최근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조심하는 선에서 움직이자는 OK 사인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맘 편히 놀러 다니지 못해 시들어가는 화초처럼 생기가 없던 남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습니다. 석가탄신일인 휴일, 남편이 아이와 함께 놀 곳을 찾았다며 둘이 놀 테니 제게 바로 근처 카페에 가서 책 읽고 글도 쓰며 노트북을 챙기라 합니다.


 그동안 맘 편히 다니지 못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다닐 수 있게 되니 남편에게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마음의 여유도 생겼나 봅니다.  땡큐 쏘 머치를 외치고 남편과 아이를 향해 함박웃음을 날려 줬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놀다 이따가 보자고 손 한 번 흔들어 주고 근처 카페에서 자유 부인 놀이를 즐겼습니.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겐 언제나 자유 시간은 그립고 소중한 법. 그러하기에 그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져 아쉽기만 합니다. 아이 손을 잡고 돌아온 부녀를 위해 아이스크림 크로플을 주문해서 먹고, 딸이 저녁으로 치킨과 누룽지를 먹고 싶다고 해 집으로 오는 길 미리 주문 전화를 했습니다.


 주말이라 막힐 것을 예상해서 시간 여유를 두고 전화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혼자 매장에 가서 '좋은생각'을 읽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글 한 편을 읽다가 그만 마음이 울컥해서 두 눈에 금세 눈물이 고이고 말았습니다. 막내딸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글이었습니다.


[ 장미 백 송이 ]

 장인어른은 허리가 굽고, 말소리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한 장인어른이 연분홍 장미를 백 송이나 사 들고 우리 집에 왔다. 같은 값이면 많은 꽃을 살 수 있는 도매 상가에 들렀다고 했다. 장인어른은 어렵게 꽃값을 흥정했을 것이다. 그 묵직한 꽃바구니를 든 채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왔다.

 어느 해에는 꽃을 가져오던 장인어른이 버스에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아내가 걱정하며 "꽃 사지 말고 택시를 타고 다니세요." 해도 장인어른은 고집을 부렸다. 장인어른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것을 당신의 상처처럼 아파했다.

 다른 자식들의 결혼기념일은 그냥 보내면서도 막내딸 내외의 결혼기념일에는 꽃바구니와 앞날을 비는 덕담의 글을 손수 마련했다. 우리 내외가 장인어른에게 이제 안 챙겨도 된다고 하면 장인어른은 말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이게 마지막이지."

 어느 해에는 웬일인지 장인어른으로부터 소식이 없었다. 이제 걸음조차 힘들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 올해는 그냥 넘기나 보다 했다. 그때 전화가 왔다.

"여기 파출소입니다. 박 아무개 씨라고 아십니까?"

 장인어른을 아느냐는 전화였다. '무슨 일로 장인어른이 우리 동네 파출소에 와 있을까? 무슨 변이라도 당했나?' 아찔했다. 경찰관은 어르신이 길을 잃고 헤매다가 파출소를 찾아왔으니,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일 났다. 집에 계시지, 어쩌려고 길도 잘 모르는데 나오셨대?"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니 곧 경찰차가 도착했다. 장인어른과 어떤 할머니가 차에서 내렸다. 장인어른은 꽃바구니가 아닌 케이크 상자를 들고 있었다. 함께 내린 할머니가 말했다.

"이분이 지하철역에서 젊은이에게 젊은이에게 길을 물어보더라고."

 할머니는 안타까운 마음에 장인어른과 동네를 헤매고 다녔단다. 알고 보니 장인어른은 우리 집 주소를 잘못 알고 있었다. 얼마나 속이 탔을까. 장인어른을 두고 갈 수 없었던 할머니는 고민 끝에 파출소를 찾았다. 그렇게 파출소에서 내게 전화한 것이다. 할머니에게 고마웠다.

"내 구십 평생에 백차 타 본 일은 처음이다."

 마치 남의 일인 양 말하는 장인어른에게 화가 나면서도, 어렵게 찾아온 그 마음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흔이 넘은 장인어른의 걸음은 마치 아기의 걸음마처럼 위태로웠다. 아마 꽃 시장에 갈 기력도 없었을 것이다. 장미꽃 대신 내민 케이크는 장인어른의 마음 그대로였다.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서 삼 년. 나는 해마다 결혼기념일에 장인어른 대신 빨간 장미 열 송이를 아내에게 준다. 우리는 장인어른이 바라는 대로 사이좋게 살아왔다. 지금 아내와 나는 행복하다.




 주문이 많이 밀려서 그런지 통화로 약속한 시간보다 대기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이야기 속 장인어른과 막내딸, 그리고 글쓴이인 사위의 마음이 그려져 한 번 붉어진 눈시울은 쉬이 식지 않았습니다. 냅킨으로 콕콕 눈물을 찍어 닦고 있는데 그제야 준비되었다고 해서 잘 먹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따끈따끈한 치킨을 들고 차로 갔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남편과 딸에게 좀 전의 상황을 말하며 글을 읽어주다가 또다시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났습니다.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 부모가 되어 보니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서 그런 것인지, 이야기 속 장인어른처럼 우리 아버지도 아흔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 것인지, 내가 막내딸이어서 그런 것인지, 지난 주말 고향에 갔다가 아버지가 주셨던 10만 원의 용돈이 생각나서 그런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얼른 누룽지를 끓여 치킨과 함께 조금 늦은 저녁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이를 재우려 누웠는데 문득 사연 속 아버지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글을 읽을 땐 사연에 울컥해져서 그저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막내딸을 생각하는 늙은 아버지의 모습에만 마음이 갔을 뿐 다른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다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 마음이 닿았습니다. 많고 많은 날들 중에서 왜 하필 막내딸의 결혼기념일에 장미 백 송이를 사들고 찾아갔을까. 그것도 한 번도 아닌 장미꽃을 사러 갈 기력이 없어 케이크를 대신 사들고 가야 했던 아흔이 넘어서까지.


 순간 사위가 썼던 마지막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장인어른이 바라는 대로 사이좋게 살아왔다.
지금 아내와 나는 행복하다.


 당신은 장애를 갖게 된 막내딸을 향한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막내딸 부부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듯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의 몸 하나도 건사하기 힘든 걸음걸이조차도 위태로워 보이는 고령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결혼기념일마다 백 송이의 장미꽃을 사들고 찾아오는 장인어른의 부성애를 오랜 시간 동안 지켜봤던 사위. 이제 고인이 된 장인어른의 막내딸을 향한 부성애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던 사위는 지금은 물론 죽는 날까지도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살겠구나..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인생 책 중 하나는 바로 매월 발행되는 '좋은생각'입니다.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의 삶, 그 속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이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크고 작은 감동들과 깨달음들. 그것이 바로 제 생각과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지금의 제 모습을 있게 한 마중물이 되어주었습니다.


 필력이 부족해 늘 아쉬워하는 저를 보며 남편이 언젠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신 글을 읽으면 '좋은생각'을 읽는 것 같아요.

당신의 삶이 '좋은생각' 그 자체 같아요."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아내를 위한 위로와 응원이 담긴 남편의 접대성 멘트일 수도 있음을 잘 압니다. 그래도 연애 포함해 10여 년을 함께한 남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삶을 살기 위한 나의 노력들이 그저 헛된 것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생각하는 쪽으로 삶은 스며드는 것이기에 오늘도 좋은생각을 펼쳐 봅니다.('좋은생각' 관계자 절대 아닙니다.^^)


ps. To. 사랑하는 나의 둘째 언니

지금 이 글도 보고 있겠지?^^

언니의 존재도 내 삶에 많은 영향을 줬지.

그래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엄마가 부재하면 내가 너의 엄마 같은 존재라

생각한다고 말하며 나를 감동시켰던

소중하디 소중한 나의 사랑하는 둘째 언니.

사랑하는 막내 동생을 위해 수년 동안

 '좋은생각' 정기구독 신청해 줘서 정말 고마워~

 앞으로도 쭉?!^^





인생이란 거창한 무엇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결국 내 인생의 내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곁에 있는 이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그들이 바로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되니까요.

- 혜민 스님의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중 -



written by 초원의빛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Mascagni 'Intermezzo from Cavalleria Rusticana'

https://youtu.be/BIQ2D6AIy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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