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이 일이 많아 저녁 먹고 야근 후 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대충 먹지 말고 맛있는 걸로 사 먹으라 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래서 아이와 단둘이 식사 후 저녁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재우다 피곤했던지 그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잠이 깼는데 밖에서 부스럭 소리와 함께 전기포트에서 물 끓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사람이 저녁을 못 먹고 왔나?'
시간을 보니 9시 50분.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남편이 주방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녁 못 먹었어요?"
"네, 바빠서 못 먹었어요."
아내가 늦게 온 남편 저녁 챙기는 것이 번거로울까 봐 남편은 먹을 걸 사 왔던 모양이었습니다. 비닐봉지에서 김밥 두 줄을 꺼내더니 접시에 아주 심혈을 기울여 차곡차곡 놓고 있었습니다.
< 석가탑, 다보탑도 이렇듯 심혈을 기울여 쌓았을까 >
그걸 본 순간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평소 테이크 아웃해 온 음식을 먹더라도 항상 그냥 먹지 않고 접시에 담아서 줬더니.. 배고파서 그냥 대충 먹을 만도 한데 그걸 또..^^
한 번 터진 웃음은 그치질 않았습니다.
"당신 참 귀엽네요. 그걸 또 그렇게 담아 먹고."
"그럼요. 예쁘게 차려 먹어야지요. 집에 오면서 어떻게 먹을지 상상하면서 왔단 말이에요."
김밥 접시 세팅이 끝나자 남편은 다 끓은 전기 포트 쪽으로 가더니 사발면에 물을 부었습니다.
"사발면 지난번 언니가 준 거예요."
"안 그래도 지난번 과자 찾아 먹을 때 보니 있더라고요. 없었으면 편의점에서 물까지 부어 와서 먹으려 했어요."--;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 사발면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지난번 언니 집에 갔더니 휴대폰 새로 개통할 때 라면을 많이 줬는데 언니네는 잘 안 먹는다고 하면서 언니가 라면 대여섯 개와 사발면 두 개를 챙겨줬던 터였습니다.
'언니야, 고마워. 언니 덕분에 이 사람 편의점에서 물 부어 오는 수고는 면했어.ㅡㅡ;'
< 사발면아, 네가 우리 피곤한 남편을 구했구나 >
그렇게 자신을 위해 남편이 차린 밥상이 완성되었습니다. 이렇게..
< 남편이 직접(? ) 차린 밥상 >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습관이 무섭다더니 제가 라면 끓여줄 때 항상 저 그릇에 담아주는데 그걸 또 찾아 꺼내서.. 아고야. 콜라까지 정말 완벽한(?) 조합이구나.
사실 김밥을 담은 저 접시도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준비했던 남편 전용 접시입니다.
< 이건 내 꺼! - 이 O O - >
늦게까지 일하느라 고생했는데 제 때 못 먹었으면 회사 근처에서 든든하게 먹고 오면 좋으련만... 퇴근 길도 먼데 고픈 배를 달래며 혼자서 저런 밥상을 상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왔다니..
남편의 예상 밖의 행동에 귀여워 한참을 웃다가 가만히 남편 앞에 앉아서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깨끗하고 맑고 하얬던 피부는 모두 어디로 갔는지..
밥벌이의 고단함으로 상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애잔한 마음과 늦게 퇴근한 남편의 밥상을 준비해야 하는 아내의 수고로움을 덜고자 혼자서 저렇게 차려 먹는 고마운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그날 남편에게 하지 못했던 말 오늘 이렇게 전해 봅니다.
"남편아~! 고생이 많아요. 우리 처음 만났던 것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내년이면 10년이 되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늦은 나이에 결혼해 올해 결혼 60주년인 우리 친정 부모님, 올해 50주년인 시부모님처럼 오랜 시간 함께하긴 어려울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하늘이 허락하는 날까지 우리 지금처럼 서로 아끼고 위하며, 우리 린이도 잘 키우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삽시다요. 사랑합니다.^^"
< 우리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죠?^^ >
ps. 남편아~ 지금처럼 이렇게 따뜻한 밥상은 차려 줄게요. 그런데 요즘 남편들 중 요리 곧잘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내 그것까진 바라지 않을 테니 나중 생각해서 간단 요리는 하나씩 배워 봅시다요~ 물론 다 내 탓이긴 하지만 아무리 광파오븐이라도 그렇지 우리 집 전자레인지 작동법도 가끔씩 버벅대는 건 너무 하잖아요.--; 알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