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우연히 접한 기사를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사연 속 주인공들의 행동에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환자를 싣고 병원으로 향하던 119 구급차가 급작스런 사고로 전복되자 주위에 있던 시민들이 열일 제쳐두고 모여들어 환자를 들 것에 싣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다는 기사였습니다.
구급대원 2명과 운전을 하던 구급대원은 사고로 다리를 다친 와중에도 시민들과 끝까지 환자를 챙겼다고 합니다. 다행히 119 대원분들의 부상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고, 후송 당시 머리를 다쳐 의식이 없는 상태였던 환자는 의식을 되찾은 뒤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운전을 하다 보면 종종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급히 운전하는 119 구급차량들을 만나곤 합니다. 세상에 힘들고 귀하지 않은 일이 없다지만 그렇듯 위급한 상황에서 목숨을 담보로 운전하는 119 구급차를 만날 때면 감사한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잠시나마 그분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곤 했습니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문득 오래전 추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보금자리로 이사하고 일주일 정도가 지났던 어느 겨울 초입이었습니다. 그 당시 아직 아이가 어려서 새집증후군이 신경 쓰여 이사만 가끔씩 왔다 갔다 하며 3~4개월 후에 올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 아파트라 하자 보수할 것들을 꼼꼼히 챙겨야 했기에 그날 어머님에게 아이를 맡기고 새집으로 향하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시댁 근처에 단골 한우곰탕집을 지나가는데 식당 앞에 119구급차량이 주차하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아침 10시 50분경. 늦은 아침인지 이른 점심인지 식사를 하려나 보다 싶었는데 그날따라 웬일인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평소 그분들의 수고로움과 고마움을 인터넷으로 많이 접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분들이 식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식당 앞 유리로 식당 안을 두리번두리번 살폈습니다. 식사 시간이 아니라 그런지 손님들이라고는 그분들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기웃기웃거리다가 슬그머니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장님이 식당 저쪽에 계시길래 조용히 웃으며 인사를 한 후 카운터 앞에 서있었습니다. 사장님이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저분들 식사값을 대신해서 계산하고 싶다 말씀드렸습니다.
사장님은 의아해하시면서 관계되는 분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고생 많이 하시는 분들이라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한 끼 대접하고 싶다고 했더니 사장님이 환히 웃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메뉴를 고르시는 동안 전 카운터에 잠시 서 있었습니다.
"곰탕 세 그릇 주세요~!"
그 소리를 듣고 곰탕 값을 계산하면서 사장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혹시나 추가로 주문을 할 수 있으니 그건 볼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계산할게요.^^"
그렇게 식당 밖으로 나오는데 왠지 모르게 무거웠던 발걸음이 그제야 가벼워졌습니다. 전 1시가 하자보수 약속 시간이라 남은 시간이 빠듯해 김밥 한 줄을 사서 급히 가던 걸음을 재촉했습니다.(그런데 대식가인 제가 왜 하필 김밥 두 줄이 아닌 한 줄만 사 왔던지 후회를 했던 기억이~^^)
그날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사람의 온기가 없는 빈 집에서 먹는 차가워진 김밥 한 줄이었지만, 뜨끈한 한우곰탕 한 그릇을 먹은 듯 맛있고 배부르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잠시 흩날리다 말았지만, 거실 창 밖으로 보이는 그 해 첫눈을 바라보면서...^^
ps. 돌아오는 길에 사장님에게 추가로 뭐 드신 건 없는지 물어보려고 식당으로 다시 갔습니다. 사장님은 더 드신 건 없고 그분들에게 상황을 말씀드리자 잠시 어리둥절해하시다가 웃으며 인사 후 가셨다고 합니다.^^
이사할 때 아이가 2살이라 이사만 해놓고 천천히 정리하며 조금씩 꾸미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 당시 시댁에 결로가 있어 단열벽지를 사서 직접 붙여 드렸는데 어머님이 참으로 좋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주방 베란다에도 단열 벽지도 바르고 차가운 타일 바닥을 나무 타일로 바꿔 차가운 공간이 포근한 공간으로 바뀌었습니다.
< 곰탕 한 그릇 같은 김밥, 그리고 즐거운 나의 집 >
비록 그 당시 어린 아기가 있어 더 많이 신경 쓰진 못했지만, 애정 어린 손길로 나름대로 조금씩 꾸민 집에서 산지 어느덧 6년, 그 어린 아기는 자라서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늦은 밤, 고요한 적막 속에서 남편과 아이의 숨소리가 참으로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수많은 추억이 담긴 이곳에서 지나온 추억과 또 앞으로 만들어 갈 추억들을 상상하며 미소 짓는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합니다. 행복은 우리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순간순간의 삶 속에서 그 소중한 의미를 깨닫고, 발견해 가는 산책길 같은 것이기에...
< 내 삶의 여백을 채우듯 조금씩 채운 이 공간 >
타인의 행복을 내 것인 듯 흉내 내며 좇던 날들에는 보이지 않던 나의 행복이 지나간 시간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행복'이란 내가 이미 숱하게 겪어본 감정이었습니다. 아직 맛보지 못한,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더 큰 행복을 좇느라 잠시 나의 마음을 잃었을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