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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Aug 15. 2021

발로 사진 찍는 남자(feat. 프로필 사진의 비밀)

내 남편은 마이너스의 손

어린 시절부터 쑥스럽고 어색하다는 이유로 사진 찍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결혼 전까지 찍은 사진이 많이 없습니다. 지나고 보니 후회가 남는 것 중 하나입니다. 나이 들어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데 제 삶의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으니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뒤늦게 중요한 사실을 깨달은 전 그때부터 제 삶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작가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한 번의 삶을 더 사는 것과 같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삶의 흔적을 글로 쓰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그 안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기도 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좀 더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또한 삶의 기록인 만큼 행복에 대한 기여도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행복했던 순간, 아름다운 날들을 기록해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습니다.


바로 그 사진을 찍어줄 사람, 즉 남편이 자신의 입으로도 인정하는 발사남 or 발찍남(발로 사진 찍는 남자)이었던 것입니다.ㅠㅠ(이번 휴가 때 이런 신세를 한탄하는 아내를 보며 자신이 제목까지 정해서 글을 한번 써보라며  아주 좋아라~ 웃으면서 대놓고 요청을 하는 일도..--;)




< 작가 초원의빛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걸로 고른다는 골랐는데.. >

이 사진 어디서 많이 보셨지요? 네, 맞습니다. 제 프로필 사진입니다. 브런치 작가 승인 신청이 난 후 프로필을 작성할 때 다른 작가님들은 어떻게 써놓으셨나 많이 둘러봤습니다.


프로필은 간단하게 작성해 놓긴 했는데 사진 부분에서 잠시 멈칫했습니다. 처음엔 익명의 공간이니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려면 얼굴을 노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둘러보니 얼굴을 공개한 작가님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나름 고심한 끝에 적당히 가린(?) 사진을 올리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초원의빛 필명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이 사진을 선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Green~ green~ grass가 있고, 마침 또 글을 쓰고 있는 사진이었으니 필명 분위기로는 딱이겠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 분위기 있는(?) 원본 사진에는 비밀(?)이 숨어 있었습니다. 흡사 숨바꼭질할 때 타조가 자신의 머리만 숨기면 되는 줄 아는 것과 같은 자세의 딸과 돗자리 위의 저 어수선한 것들...--;


네, 맞습니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발로 사진 찍는 남자 일명 발사남 or 발찍남 남편의 작품입니다.--;

< 아빠~ 나 어디 있게요~ 찾아 보세요~--; >


사진을 많이 남겨놓지 못한 아내를 생각하며 나름대로는 기꺼이 그 역할을 자처해 열심히 찍어줍니다. 그런데, 열심히만 찍을 뿐 잘 찍지 못합니다.--; 마치 열심히 공부는 하는데 성적은 나오지 않는 학생과 같습니다.


모녀가 함께 있으면 투샷을 찍어야 하는데 딸 얼굴은 손톱만큼 나오고 그마저도 예쁜 딸 얼굴을 이상하게 오징어로 만들어 버리는 희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엄마~! 아빠가 나 이상하게 찍었어요.ㅠㅠ >


머물렀던 숙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 했더니 숙소는 구석으로 밀고 저와 숙소 사이를 장애물(?)로 막아놓는 센스는 기본입니다.(여보야, 구도를 보고 이상하면 위치를 옮기라 말을 해줘야지요.--;)


찍은 사진을 보면서 장애물 좀 없게 찍어달라 하면 자신의 입으로 허리가 비정상적인(?) 위치에 있다고 말할 만큼 하체가 긴 편인 저를 상하체 비율 1:1로 만들어 놓기도 합니다.--;


몇 번의 조언 끝에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내가 도대체 누구와 대화를 했던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뭐 괜찮습니다. 잘라내기 기능이 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습니다. 발찍남과 살아야 하는 운명이니 그나마 쓸만한 사진들을 골라 잘라내기 하는 일은 그냥 숙명이다 진작에 받아들였습니다.

< 나도 장애물 없이 탁 트인 잘라내기 없는 와이드형 사진을 갖고 싶다! >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일찍 퇴근해 식사를 하며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아빠 방에서 화상으로 중요한 교육 들어야 하니 교육 마칠 때까지 들어오면 안 된다. 알았지?"


무슨 회의 있는 거냐 물어보니 사진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사진 잘 찍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라고 합니다. 아니, 이거 말로만 듣던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 아닌가. 사진 좀 잘 찍어 달라고 했을 뿐인데 뭐라 하지 않아도 교육까지 받을 생각을 하다니.


'아~ 이젠 나도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것인가?'라는 기대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에 밥은 더 부족하지 않냐 물어보며 아주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며 아이에게 절대 아빠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하루 교육 시간은 3시간여. 2회에 걸쳐 진행된다고 했습니다. 퇴근 후 그렇게 또 컴퓨터에 앉아 가만히 들으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아이가 잠든 후 교육받느라 고생했다 엉덩이를 두드려 주며 뽀뽀에 포옹까지 해줬습니다.


2주간의 교육을 마친 후 전 내심 기대했습니다.


'그래, 아무리 발찍남이라지만 교육을 받았으니 화보처럼은 아니더라도 남들처럼 보통 수준으로는 나올 수 있겠지!'


그런데, 그런데.. 이 사람은 교육 시간에 졸았던 것일까요. 아데, 분명 내 눈으로 초롱초롱한 눈으로 열심히 보는 걸 봤는데. 그렇게 나름 전문가의 강의로 교육 좀 받았다 하는 남편의 솜씨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바다 사진을 찍을 때 인물은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바다가 수평이 되게 하는 건 기본이잖아요.ㅠㅠ 제가 깜빡하고 중간 점검이라도 하지 않으면 바다 사진은 모두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수평을 신경 써 달라고 는데도 이 사람 마음이 이상한 것인지 눈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사진 찍을 때만 영혼이 잠시 놀러 나가 있는 것인지..--;

< 바다야, 미안해. 시력도 엄청 좋은 남편이라 안과 가도 소용이 없어..ㅠㅠ >


고소공포증이 있는 아내가 아이와의 추억을 위해 나름 용기 내어 올라가 사진을 찍은 것인데..  저 계단 사이로 보이는 저분은 남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요. 우리가 내려왔을 때도 친구 사진 찍어 준다고 왔다 갔다 하고 있는 것을 분명 제 눈으로 봤는데..

< 엄마, 여기 봐요. 사진 속에 다른 사람이 있어요. >


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사진 속 또 다른 주인공(?) 그녀는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했나 봅니다.  같은 장소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 중 운 좋게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순간 포착이 된 사진이 있었으니..

< 엄마, 이제 우리 단둘만 있어 다행이에요. >


뭐 괜찮습니다. 사진에 누가 좀 있으면 어떻습니까. 제겐 잘라내기 능력은 이제 전문가 수준인 것을...


그런데 남편님, 이건 아니잖아요. 어머님과 아내, 그리고 딸 삼대가 다정하게 나란히 있는 모습을 좀 담아 달라고 했더니 이 실루엣은 무엇인가요.ㅠㅠ


포커싱을 사람에 맞추고 바다는 배경으로 해야 누가 누군지 알지. 당신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저 사람처럼 하늘을 날고 싶었던 것인가요? 아니면 바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던 것인가요?ㅠㅠ

< 여보~ 여보~ 저 사람 바다에 빠지는 건 아니겠죠? 저 깊은 바다에.. (여보야, 저 사람 말고 우리를 봐야죠..ㅠㅠ) >





아.. 이번 생엔 틀렸구나. 발찍남과 살아야 하는 운명을 지녔으니 그냥 멋진 사진 욕심내지 말고, 흔적만 남기는 것에 의의를 두자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하늘은 무심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휴가 때 8살 아이가 찍은 사진을 보며 마치 귀인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빠가 찍은 사진을 보던 아이가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던지 자기가 직접 찍어 주겠노라 나섰습니다. 사실 가능하면 아이에게 핸드폰을 늦게 사용하게 하려고 핸드폰을 잘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많이 찍은 경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8살 아이가 그냥 무심코 찍은 사진들이 나름 교육까지 받은 아빠 솜씨보다 훨씬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이라 키가 작아 굳이 앉지 않아도 되거늘 들은 건 있어서 엄마 늘씬하게 나오게 하려고 앉아서 사진도 찍고, 바다도 수평 반듯하게 잘 찍었습니다.

< 엄마, 내가 아빠보다 낫죠? >
< 난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


별생각 없이 연속으로 마구마구 찍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런 기막힌 순간 포착을 봤나. 바람에 날리는 엄마의 옷을 사진으로 보니 그 사진이 마치 엄마의 마음을 나타내는 듯하구나. 바다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하늘을 날아갈 것처럼 좋았는데, 그런 엄마의 마음을 알고 날개를 달아 주었구나.

<  이번 생은 틀렸는 줄 알았더니 내가 귀인을 만났구나~! >


최근 우리 가족이 함께 갔다가 마음에 들어 남편 없이 가까이 사는 첫째 언니를 데리고 며칠 전 다시 방문했던 갤러리 카페가 있습니다. 지난번 엄마의 칭찬에 으쓱해졌던지 이젠 자기가 먼저 사진을 찍겠다고 핸드폰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 역시 네가 아빠보다 낫구나. 그만 찍어도 된다고 말한 후 돌아서서 자리로 돌아오는 엄마의 흔들리는 모습조차도 아빠가 정성 들여 찍은 사진보다 낫구나. 이제 엄마의 사진은 네가 찍어 주렴.'


< 엄마~ 앞으로는 사진 아빠 대신 내가 찍어 줄게요~♥ >




네, 남편은 자신도 인정하는 자칭 타칭 마이너스의 손을 가진 사람입니다. 비단 사진뿐만이 아닙니다. 이상하게 남편 손만 닿으면 고장도 탈도 많습니다.--;


분명 조금 전 제가 사용했던 멀쩡하던 수도꼭지인데 남편이 사용할 때 뻑뻑하고 소리가 난다고 고장이 났다고 하질 않나, 딸과 제가 체중을 잰 후 남편에게도 올라가 보라고 해 올라가는 순간 체중계는 그 기능을 상실해버리고 맙니다.--;


이사 후 주방 베란다 바깥쪽에 열기 편하게 손잡이를 좀 달아달라고 직접 제가 구입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냥 간단히 나사만 돌려 끼우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시키는 대로 열심히는 했습니다. 그런데 뭘 어찌한 건지 결국 새집 베란다 창문이 닫힐 때마다 잘 안 맞아 소리까지 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실 그건 애교 수준입니다.--; 진정한 마이너스 손은 따로 있지만, 그건 할말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뭐 그건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 바로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아마 그것이 맞을 겁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하늘이 점지해 주신 제 짝꿍인 것을.. 이걸 음양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제로이라고 해야 할까요...--; 다행히 제가 일찍부터 '미다스의 손(마이스의 손이라고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장 난 것들 뚝딱 뚝딱 잘 고치고, 당첨운도 좋은 편입니다. 각종 라디오 사연 선물은 물론 식당 무료 시식권 당첨까지... 직장에서 회의 끝난 후 15명이 점심 식사 후 나갈 때 무료 시식권 이벤트가 있어 명함을 넣었는데, 저만 번 당첨된 적이 있습니다.(물론 운 좋다고 한 턱 내라 해서 커피값이 더 나가는..--;)


한 번은 인터넷이 잘 되지 않아 결국 컴퓨터 A/S 기사님도 고치지 못하고 돌아갔던 컴퓨터를 어설픈 지식으로 인터넷 보고 따라 하며 이것저것 만져보다 고친 적도 있습니다.


금은 하지 않고 있긴 하지만, 과거 펀드며 주식도 어설프게 흉내 내며 했는데도 수익이 많이 나 자산 증식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이 제게 마이너스 손인 사람을 옆에 둬도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겠다 싶었는지 그런 남편을 제 짝꿍으로 점지해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 저의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며 남들처럼 알콩달콩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생에 이 사람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지시만 하는 양반, 모든 일 도맡아 하는 전 필시 몸종이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내 운명은 왜 이런가~ 생각하지 마시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사시면 저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지수 1%의 비밀이기도 한 듯합니다.--;


여봉주르~ 고마워요~!
당신은 내게
'진정한 내려놓음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아주 크나큰 깨달음을 선물해 주었어요~!
나 죽으면 분명 사리 나올 거예요~--;




ps. 어느 날 남편이 진지하게 제게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여봉주르~ 내가 당신보다 잘하거나 나은 점이 뭐가 있을까요?"

" 음... 뭐가 있을까요... 가만히 생각 좀 해보자..
음.............................(한참 생각 중)
외모, 길찾기, 아이랑 놀아주기요."
(그래도 적어도 세 가지 구색은 맞춰 줘야겠기에..)

"맞아요~ 그건 내가 당신보다 나은 것 같아요~^________^(실제로 활짝 웃음--;)"

뭐 그 정도면 된 거죠? 누가 그랬잖아요.
배우자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먼저 내가 채워 주라고..
(제가 원래 책에서 하라는 건 잘 따라 하고 실천합니다...--;)

< 오늘 글은 오매불망 발찍남 글을 기다리고 있는 내 남편, 당신위해 바칩니다! Especially for you~♥ >


< 여봉주르~ 나 정말 아이랑 놀아주는 건 최고죠? >




지난 글에 많은 분들이 생일 축하 인사와 함께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분들을 위한 응원과 감사의 메시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https://brunch.co.kr/@alwaysbehappy/89


그 어떤 마음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정성스럽게 작가님의 브런치에 시로 남겨주셨던 '마님의 남편' 작가님과 '소향' 작가님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 다시 한번 더 전하고 싶습니다.


모든 작가님들이 보내주셨던 귀한 마음 잘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생하고 계신 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듯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ps. 혹시 그 뜻에 재능 기부로 동참해 주실 작가님들 계시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16일(월)까지입니다~♥


https://brunch.co.kr/@413150cb692446e/60


https://brunch.co.kr/@mfeou/510



written by 초원의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 오늘의 추천곡 *


김동률님의 '여름의 끝자락'

https://youtu.be/YVB8vL7rBjY


김정원&대니 구님의 '여름의 끝자락'

https://youtu.be/Ubog_jScL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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