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포토그라피100
스토리 57 - 극도로 피곤하다
오래전부터 노트에 아이디어를 메모해두는 습관이 있었던 덕에 몇 년 전 노트를 뒤적여보면 재미난 글들을 꽤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아이고 이런 생각도 했었나! 하하' 하면서 반나절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뀐 글들도 있고, 뭐 아직까지도 그렇지- 그렇지-하는 글들도 있다.
그중에 하나 20대 초반쯤에 쓴 '극도로 피곤하다'라는 짧은 글이 있는데 잠깐 공유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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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나 지하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르신들께 자리 양보하는 것에 대해, 미덕으로 따뜻한 것으로 배워왔지만..
대체 왜 지금의 내 몸은 꿈쩍하지 않는 걸까..?
서있기 귀찮아서? 음 뭐 그것도 이유 중 하나 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양보 후 밀려오는 그 훈훈한 분위기마저 피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뭔가 대중교통에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얽히는 것에도 왠지 모르게 피곤함을 느낀다.
그리고 지금 이 버스 안.
자리 안 비켜주는 젊은이들에 대해 양심도 못 느낀다며
말세라고 열변을 토하는 저 할머니 때문에 오히려 더 피곤함을 느끼는 것 같아서
나는 더-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 사실... 저 할머니는 저번에 버스 안에서 두 번이나 봤다.
게다가... 저번에도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그래 그래-
일일이 이런 고민하는 것도 피곤하니까 이제부턴 그냥 서서 가자.
하아-
극도로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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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보다 조금은 어른이 돼서 읽어보니 20대 초반엔 마음에 상당히 여유가 없었구나~하는 게 보인다. 하하.
@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곳의 사장님이 '1만 5000개의 영어단어를 외웠지만 굳이 쓸 곳이 없다'는 것을 다 외우고 나서야 깨달았다고 합니다. 물론 상관없는 얘기지만요 =)
2시간 남짓의 근교로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전철안. 마침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나가서 그냥 멍-하니 창밖의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만 보고 있는데 음-? 그런데 열차 안에 아무도 없이 나 혼자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왼쪽 시야부터 오른쪽 시야까지- 쭈욱 이어진 빈 좌석을 보고는, 자주 오지 않는 풍경에 오랜만에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든다. 이렇게 열차 내에서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즐거운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