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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an 13. 2023

단순하고 명료한 하루하루

내 선택으로 구성된 내 세계가 보다 편안하기를

 연말의 휴가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보내고 돌아와 일상을 시작했다. 새해를 맞아 작년을 돌아보고 올해의 계획들을 세웠다. 새해의 계획조차도 이전과 많이 달라져있다. 새해의 계획들을 대하는 내 마음도 많이 달라져있음을 느낀다. 꼭 하고자 하는 계획은 구체적으로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현재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지 - 주로는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 함께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덜어낼 것들을 많이 덜어내고 나니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에너지와 시간이 생긴다. 


 덕분에 새해에도 작년 말처럼 바쁘지만 여유로운 하루하루를 산다.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너무 단순해 일상이. 평일엔 일 끝나고 요가 가고, 책 읽고, 차 마시고, 주말엔 춤추고." 그러고 보니 예전 같으면 '내 인생이 너무 재미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생길만한 일상이지만, 이 별 것 없고 단순한 일상에 큰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이 확실해졌다. 


 아침엔 일찍 일어나는 편이니, 적어도 5시에는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다.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핸드폰에 깔려있지만 앱을 바로 볼 수 없도록 잠가 두었더니 핸드폰을 보면서 하루를 시작하지 않게 되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몸에 익고 나서는 알람을 맞출 필요도 없으니 듣고 싶지 않은 알람소리에 저항감을 느끼며 일어날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 창문을 열고 침대를 정리한다. 빠르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요가를 가는 날은 아침부터 요가복을 입고 있는다. 저녁이 되면 또 문 밖을 나가는 것이 힘들어질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레깅스가 아닌 하렘팬츠를 입으니 몸도 편하고 좋다. 요가가 없는 날에는 편안하지만 너무 편안하지는 않은 재택근무용 옷을 입고 식탁에 앉는다. 40-50분 정도 차를 마신다. 아침엔 녹차를 마신다. 물을 끓이고 다기를 모조리 꺼내고, 천천히 차를 우려서 마신다. 차를 마시는 동안에 핸드폰을 쓰지도, 음악을 듣지도, 글을 쓰지도 않는다. 충분히 차를 다 마신 후에 간단히 일기를 쓴다. 그리고 난 뒤 간단히 아침을 차려 먹는다. 뭘 먹는지는 매일 다르다. 아침의 이 시간을 충분히 만끽하고 나면 일을 시작하거나 심지어 출근을 하는 날도 하루 종일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침의 루틴을 잘 지키는 반면 저녁의 루틴은 늘 제각각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저녁에 뭘 할지가 정해지는 날이 많다. 바이오리듬이 가라앉는 아침형 인간에게 저녁 시간은 오롯이 휴식을 원한다. 예전엔 어떻게 그렇게 매일 저녁마다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술을 마셨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 저녁에 남들이 뭘 하며 보내는 지도 관심이 없어지고, 오롯이 '얼른 집에 가서 쑥차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해진다. 10시면 잠에 드니, 저녁에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짧기도 하다. 이 시간을 더 재밌게, 남들 하는 것 다 하면서 보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으니 온전한 휴식이 주어졌다. 일주일에 두, 세 번 요가를 가고, 그렇지 않은 날엔 별 것 없이 책을 읽다 잔다. 가끔 옷에 수를 놓으며 옷을 고치기도 한다. 2주에 한 번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날에는 11시까지 독서모임을 하기도 한다. 2월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분석 강의를 듣게 되니, 저녁 일정이 하나 더 늘었다. 지난주부터는 자기 전에 새로운 명상을 하게 됐는데, 몰입도가 아주 많이 높아졌다. 덕분에 울다 자는 날도 많아졌다. 


 주말은 춤을 추며 보낸다. 올해부터는 작년에 비해 4배 정도 춤추는 시간이 늘었다. 토요일엔 3시간, 일요일에 1시간 반정도 춤을 춘다.  온몸이 - 특히 앞 허벅지와 엉덩이가 반으로 쩍! 하고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안고 주말을 보낸다. 춤을 추고 나서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날엔 집으로 돌아와 평일에 먹을 것들을 준비한다. 국을 하나 끓이고, 수프도 하나 끓인다. 나머지는 굽거나 썰어서 먹기만 하면 되는 재료들을 씻어서 넣어둔다. 주말이라고 특별히 대단한 파티를 하는 날도 거의 없어졌다. 


 연애가 사라진 일상, 술이 사라진 일상, SNS가 사라진 일상, 밖에서 재미를 찾는 일상, 연예, 성형, 결혼, 내가 제일 잘 나가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모임이 사라진 일상으로 이토록 단순한 일상이 채워졌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런 고요 속에서 나를 더 들여다 보라는 의미인가 보다' 생각하니 이 단순한 일상이 그 어떤 때보다 현란하고 변화무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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