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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an 25. 2023

하와이 노래를 듣다가 니 생각이 났어.

꽃이 예쁘고, 향기가 좋고, 하와이는 아름답고

꽃이 예쁘고, 향기가 좋고, 하와이는 아름답고꽃이 예쁘고, 향기가 좋고, 하와이는 아름답고

 훌라는 손으로 메시지를 표현해 전달하는 수화 같은 춤이다. 골반을 계속해서 좌우로 움직이기도 하고, 발을 번갈아가며 앞으로 뻗기도 하고, 골반으로 원을 그리기도 하는 등 하반신이 스텝을 열심히 밟는 동안 상반신은 가사를 표현해야 한다. 지역에 따라, 춤을 만들어낸 원작자에 따라 여러 가지 변형들이 있지만 가사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은 비슷한 손의 표현들로 이루어진다. 달, 산, 별, 하늘, 비, 꽃, 레이(꽃 목걸이), 향기를 맡다, 사랑하다, 보다, 말하다, 땅, 바다, 파도, 아름답다 같은 표현들이 그렇다.


 그래서 훌라에서는 가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첫 훌라 선생님은 시간을 충분히 내서 곡의 가사를 풀이해 주고 이와 관련된 신화 같은 것들을 설명해 주셨다. 그땐 그게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얼른 춤이나 췄으면'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 시간이 선생님의 훌라에 대한 진심을 전하는 가장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나는 그때 선생님께 '왜 훌라 멜레(노래)엔 슬픔이나 분노가 없느냐'라고 물은 적이 있다. 희로애락이 모두 있는 것이 인생이고 특히 우리나라 노래의 가사들이 세상 풍파를 다 그려내고 있는 것들에 비해 하와이 멜레의 가사들은 너무 단순하다고 느꼈었다. 모든 노래의 가사가 '꽃 향기가 너무 좋다', '옆집 여인이/저 달이/저 꽃이 너무 아름답다', '하와이의 아름다움에 감사한다'같은 가사가 전부인 것 같았다. 그때 선생님의 답변은 아주 가끔 슬픔에 대해 노래한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가사는 사랑과 감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좋은데 살아서 그런가 되게 긍정적이네...'라고 괜스레 샘통을 부리다가도 평일의 고단함과 스트레스를 푸는데 이런 무한 긍정적인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지지고 볶고 볶이고 달리다가 주말이 되면 머리에 꽃을 달고, 또 큰 꽃들이 그려진 풍성한 치마를 입고 '아름답다' '감사하다' 노래하는 나른한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기엔 충분했다.


 최근에 배웠던 'Waikahuli'라는 곡은 오리 타히티(타히티의 전통춤) 선생님이 대만에서 훌라 공연을 위해 배웠던 곡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음악이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쉬었던 훌라를 다시 춰보기로 결심했다. 춤은 아직 다 배우지도 못했지만, 이 멜레만큼은 내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해 두고 어딜 가든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통해 듣고 있다.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귀를 덮고 주변의 소음을 낮춘 뒤 듣는 이 멜레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안의 무엇이 얼어붙어있든 녹여주기에 충분했다.


 문득 이 곡의 가사도 궁금하고, 이 곡의 배경도 궁금해 찾아봤다. 이 곡을 쓴 'Kuana Torres'는 이 곡을 사랑하는 사람과 이탈리아 여행 중에 영감을 받아 썼다고 했다. 가사는 하와이의 아름다움과 'waikahuli'라는 작은 꽃-데이지와 비슷하다고 한다-에 대해 쓴 것이지만 곡을 쓰고자 하는 영감은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에서 얻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가 너무 아름다워 그에 대해 감탄하다, 하와이의 아름다움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는 그런 뒷 이야기였다. 기승전 하와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결론은 같지만, 그 마중물이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점이 재미있었다. 어쩐지 가사에 '베네치아'가 나온다 했다.


 나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열병을 앓게 한 이탈리아의 아름다움을 함께 느껴준 것만 같아 반가웠다. 내 열병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Rita에게 이 노래를 보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와 함께, 이 노래가 만들어진 이야기와 함께, 언젠가 Rita네 집 마당에서 동네 사람들을 모아 두고 이 음악에 훌라를 추며 재롱잔치를 하겠다는 깜찍한 메시지를 보냈다.


**Rita를 만난 이야기들은 아래 글들에서.

https://brunch.co.kr/@alwayscurious/13

https://brunch.co.kr/@alwayscurious/23




 어쩐 일인지 며칠 동안 Rita는 메시지를 읽고도 답장이 없었다. 많이 바쁜지, 새해를 맞아 어디 여행을 간 것인지,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답장이 없는 날이 길어질수록 걱정이 더해졌다. 몇 년 전 어렴풋이 Rita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그 소식조차 듣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본인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소식을 전해줄 사람이 나에게 없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하고도 슬프게 느껴졌었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기저 질환으로 계속 약을 먹으면서 디스크 때문에 누워 지내느라 난로도 떼지 못하고 보내고 있다는 안부 메시지들을 주고받으며 나는 혼자 있는 Rita의 안부를 간절히 바랐었다. Rita 역시 내 수술과정과 그 이후의 아픔에 대해 따뜻이 위로해 주었다.


 사흘이 지나고서야 답장이 왔다. 내가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면서 심장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었다고 한다. 대동맥 판막 치환술을 받고 이제 안정을 찾았다며, 'now everything is good!'이라며 걱정을 말라고 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내가 Rita를 생각한 그 순간에 Rita도 그 무서운 상황을 혼자 마주하며 내 메시지 덕분에 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내가 놀러 가겠다고 말할 때마다 전형적인 할머니의 멘트로 '세상에 좋은 데가 얼마나 많은데, 더 좋은데 가지 뭣하러 이렇게 시골을 고생스럽게 오냐'라고 하던 사람이 웬일로 '꼭 다시 보고 싶다'고도했다.


 혼자서 그 무서운 시간들을 견뎌냈을 Rita가 가여운 마음도, 앞으로 식단도 좀 관리하고 운동도 좀 했으면 좋겠지만 절대 안 할 것 같아서 답답한 마음도 다 내 이기적인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멀리 있는, 만난 횟수로 따지면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마음을 쓰는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어떤 사람들은 늘 가까이에 있지만 끝끝내 마음을 열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마음을 다 내어주고 싶어지는 걸까.


 'Waikahuli'를 열심히 연습해서 꼭 앞마당에서 포모도로 아저씨와 와이너리 부부, 매년 여름에 놀러 오는 밀라노 가족들을 다 모아 두고 Rita를 위한 춤을 춰야지.


 


** 그나저나 어떻게든 'Waikahuli' 가사를 구글 통역기로 '일본어-한국어', '하와이어-영어', '하와이어-한국어'를 다 돌려서라도 멋지게 해석해 놓고 싶었는데, 세 개가 다 다른 결괏값이 나와 당황스럽네. 내 버전의 'waikahuli'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원작자의 의도와 다를 수 있지만, 어쨌든 하와이가 아름답고 하와이의 전통 꽃인 'waikahuli'의 향기가 좋다는 뜻. 아마도 이 앨범 커버에 있는 저 노란 작은 꽃이 waikahuli인 것 같다. 데이지 같은 작은 하와이의 꽃이라고 하니.



길게 자랐네

하늘의 그늘 아래

진짜로 꽃이 있네

추위를 피하고 있어


대답해줘 산에 사는 새야

레후아 나무 위에

향기로운 레후아의 물을

마실 준비가 되었네


사랑이 깨어나네

단단히 땅에 뿌리를 두고

베네치아의 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이 아름다운 비에 비하면


피어나는 아름다움

아름다운 호포에 꽃

내 꽃 와이카훌리

소중하고 향기로운 레이



https://youtu.be/WnbePBNFc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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