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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an 29. 2023

머리서기에 복근은 필요 없다고?

평생을 발을 딛고 서있어서 어색할 뿐이라는...

 하타요가 입문 한 달 차. 지금까지 얻은 것은 내 몸이 얼마나 굳어있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대충 어깨와 목이 굳어있는 줄은 알았지만, 햄스트링이 짧은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아니 이렇게까지 굳어있다고? 싶을 정도로 온몸이 굳어 수업을 따라가기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촛불 하나 켜 놓고 깜깜한 곳에서 하는 수련 공간에서 156cm의 몸 구석구석에 어디가 더 굳어있나 살펴보는 한 시간이 지나면 집에 돌아오는 길엔 정말이지...


아무 생각이 없다


 최근에 다니고 있는 요가 수업뿐 아니라 다른 곳들에서 체험 수업을 들을 때마다 꼭 한참을 머리에 남는 말들이 있다. 몇 주가 지나도 가끔 생각나는 그 말들을 떠올리면서 '이래서 요가가 요가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 이 자세가 너무 고통스러운가요? 그러면 보내주세요. 그만하세요. 여러분이 그만하면 고통스러울 일이 아닙니다. 


 작년에 인요가를 몇 달 다녔던 이유는 다친 팔을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요가였기 때문이다. 아프면 아픈 대로, 그곳에 호흡을 불어넣어 천천히 에너지를 돌게 만들면 된다는 선생님의 말이 좋았다. 큰 움직임 없이 정적인 동작들을 이어가면서 내 호흡을 의도를 가지고 몸의 특정 부위까지 내려 보는 연습들을 이어나갔다. 요가쿠션(볼스터)에 몸을 기댄 채 호흡을 날개뼈까지, 갈비뼈까지, 그리고 꼬리뼈까지 살이 살짝 볼록해질 정도로 차례대로 호흡을 했다. 삐끗한 뒤 완전히 굳어버린 팔은 1cm씩도 안 되는 범위로 살살 돌려가며 풀어나갔다. 


 일정이 더 이상 맞지 않기도 했고 하타요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요가원을 바꾸고 나서도 이때의 선생님의 온화한 가이드와 에너지가 가끔 기억난다. 아무튼, 인요가는 그야말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것에 집중하며 수련했었다. 제주도에서 체험 수업을 갔던 인요가 수업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를 한 단계 더 나가 가이드해 주신 말이었다. "고통스러운가요? 보내주세요. 그만하세요. 여러분이 그만하면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사실 이걸 잘 해내는 게 쉽지 않다. 흘려보내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잡아둔 말과 상처, 감정과 생각이 얼마나 많은지, 이걸 인지해 내는 것도 안되기 때문에.


 머리서기는 왜 안되냐고요? 평생 발을 디디고 서있었으니까, 그냥 그 반대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하타요가에서 잘 빠지지 않는 수련 자세 중 하나는 머리 서기라고 한다. 손날부터 팔꿈치까지를 바닥에 대고 이마와 정수리 사이를 바닥에 댄 다음 허리를 세우고 다리를 곧게 세워 거꾸로 서는 자세다. 바닥에 대는 머리의 부위가 '제3의 눈' - 지혜의 차크라의 위치를 자극해 열리게 하는 자세라고 한다. 당연히 안된다. 안 되는 것뿐 아니라 너무 무섭다. 생각만 해도 무섭다. 그래서 머리를 바닥에 대고 발도 바닥에 댄 채로 삼각형을 만든 다음 가만히 있기만 한다. 자전거를 처음 독학할 때처럼 자전거 위에 한참을 앉아있다 보면 어느 날 페달을 밟을 용기가 생기겠지 하는 희망만 가지고. 이렇게라도 하면 어떻게 지혜의 실눈 정도는 뜨지 않겠냐고 하는 얄팍한 기대로.


 머리서기에 대한 실낱의 희망을 본 것은 머리서기 자세가 대단한 근육이나 힘을 요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씀 때문이었다. 머리서기 뒤에 다시 활처럼 몸을 구부려 내려가는 자세는 근육이 필요하지만, 머리서기 자체는 '힘'보다는 '균형'에 기대는 자세라고 했다. 언젠가는 할 수도 있겠다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섭고 힘들까. "머리서기가 왜 안되냐고? 평생 발로 바닥을 딛고 서있었으니까. 그냥 그게 익숙해서. 안 하던걸 하려니, 반대로 하려니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어색하고 힘들고. 바로 서있을 때 배에 힘세게 주고 안 서있잖아요. 그냥 편하게 서 있듯이 머리서기도 그렇게 편하게 있는 자세예요. 그냥 평생 안 하던걸 하려니 이상하다 느끼는 것뿐이에요."


 이 수업을 같이 들은 친구와 수업을 듣고 나서 요즘 우리의 화두인 '내면아이'를 만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책으로 읽을 때는, 남에게 얘기를 해 줄 때는 쉬운데, 막상 내 일이 되면 '난 괜찮아!'를 외치며 외면하는 내 감정과, 그 감정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온 '내면아이'를 못 본 체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 얘기했다. 


 "평생 외면하고 살아왔으니까. 머리서기처럼 들여다보는 것도 어색하고 이상한 일인가 봐. 그래서 잘 안되고." 


 몸에게 기회를 주세요. 몸은 준비되어 있어요. 몸은 다 할 수 있어요.

 

 하타요가 선생님 지금까지 세 명을 만났는데, 세 분이 공통적으로 한 말이었다. "안되긴 뭐가 안돼. 다 되게 되어있어요. 하면 돼."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를 외치던 바와 또 다른 바이브의 '할 수 있다!' 모드의 말이다. "거기까지만 하면 그냥 거기까지만 계속하는 거예요. 조금만 더 해봐요. 몸은 준비 돼 있어요. 몸에게 기회를 주세요. 몸이 하고 싶은데 내가 기회를 안 주는 거야." 그런 걸까? 이렇게 굳어버린 등짝도 준비가 된 걸까? 제발 풀어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것일까? 


 의도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의도대로 내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의도대로 몸이 움직이게 하도록 수련하는 것처럼 의도대로 내 마음이 자유롭도록 수련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아사나의 완성이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을 감각하는 것인 것처럼, 중요한 것은 뻑적지근한 명상 후기가 아니라 내면의 상태를 감각하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하타요가 한 달 차. 몸 쓰며 수련하는 시간보다 요가에 대해 읽고 쓰는 시간이 더 길었던 것 같다. 등짝의 신호를 수신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걸리더라도 잘 달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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