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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May 18. 2021

이태리 시골을 좋아하세요?

이태리 덕후의시골 산책1편 - mola di bari

내가 다니던 첫 직장은 팀 별로 분위기가 다르긴 했지만, 적어도 우리 팀에서 만큼은 여름휴가와 겨울 휴가만큼은 잘 다녀올 수 있도록 팀원들이 서로 챙겨주고, 부재 시 업무를 서로 맡아 주는 분위기가 있었다. 쉴 때 잘 쉬어야 돌아와서 또 반년을 열심히 달린다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여행경비로 쓴 카드값을 남은 반년 간 갚아 나감으로써 회사에 조금 더 충성하게 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건 수년이 지나서다.


선배들과 동료들의 배려 덕분에, 나는 주니어 때의 첫여름휴가로 이탈리아를 다녀올 수 있었다. 이탈리아를 고른 이유는 취업 전 대학교 때 다녀온 긴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큰 도시들도 좋았지만, 시골 구석구석을 다닐 때 이탈리아의 매력을 듬뿍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맛보기로만 보고 돌아왔던지라 큰 아쉬움이 있었다. 사회생활의 첫여름 휴가지로 나는 남부 이탈리아를 다시 한번 다녀왔다. 로마로 입국해 아말피해안을 돌고, 풀리아 지역을 조금 보고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풀리아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탈리아의 경상북도 정도 되는 지역이다. 북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대신 물가가 싸고 덜 붐비는 장점이 있는 곳이다. 풀리아주의 주도는 '바리(Bari)'라는 항구도시로, 영국의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를 통해 알게 됐다. 항구도시니 만큼 각종 신선한 해산물 요리가 유명하기도 한데, 제이미 올리버는 이 지역 할머니들이 집 앞 길가에 앉아 하루 종일 손으로 빚어내는 '오레기에떼'라는 생면 파스타를 소개하기도 했다. 생면 파스타는 보통 계란을 넣어 반죽하는 것이 정석인데, 풀리아 지역의 것은 세몰라 밀가루와 물만으로 단단하게 반죽한다. 오레기에떼는 귀를 닮은 모양의 작은 숏파스타인데, 바리의 어떤 골목으로 들어서면 할머니들이 나란히 줄지어 앉아 보지도 않고 쉴 새 없이 손으로 파스타를 성형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이 유명한 장면을 직접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레기에떼를 포함한 풀리아 지역의 파스타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다. 'mola di bari'를 알게 된 건 그때였다. Bari에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들어가야 나오는 아주 작은 시골인 mola di bari 마을에는 Rita가 운영하는 따뜻한 b&b가 있었다. <Masseria Serra dell'Isola>는 잠도 재워주고 밥도 주면서 요리를 가르쳐주는 곳이었다. 망설임 없이 예약했다.


Rita의 집에 방문한 한국인은 내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탈리아에 멋지고 좋은 곳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국이라는 먼 곳에서 여기를 와 주었냐고, Rita는 연신 반복해서 고맙다고 했다. 기차역에서 만나 짐도 풀지 않고 우리는 시장부터 갔다. 그 날 아침에 잡은 생선이며 문어, 치즈가게, 야채가게를 돌면서 Rita는 동네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한국에서 왔데요. 그 먼 데서!! 이름은 리!!!"

어부 아저씨며 치즈 아저씨며 동네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반기며 양 볼에 입을 맞춰 주었다. 나는 그 작고 귀여운 동네를 Rita와 함께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바빴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자란 Rita는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나도 연신 사람들의 양 볼에 열심히 입을 맞추었다.


야채가게에는 당일 판매 야채를 문 앞에 전시해 둔다.

Rita의 집은 역사 그 자체다. Rita 가 이 집에서 태어나 자라기도 했지만, 그의 부모님도, 그 부모님도, 그 부모님도 모두 이 지역에서, 이 집에서 살았다. Rita는 할머니의 할머니, 그 할머니가 쓰시던 냄비며 모카포트, 가구들을 그대로 닦아 쓴다. 그 할머니의 할머니들이 써 두신 레시피 메모들을 모아 액자에 걸어두었다. Rita의 어머니는 Rita가 부엌일을 하지 않고 공부에 매진해 큰 일을 하는 여성이 되길 바라셨다고 한다. Rita는 젊은 시절 기자로도, 문화기획자로도 일을 하다 결국 이 곳에서 요리를 가르치게 됐다.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 할머니의 레시피들을 모으며 요리에 대한 열정을 혼자서 감춰오다 결국에는 이 길로 돌아왔다고. 나는 9살 때 엄마 몰래 김치전을 부쳐먹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웃었다.

다이닝룸에만 앉아 있어도 13시간 비행의 여독이 풀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Rita는 이 주방 한편에 앉아 눈을 감고! 커피를 마시며 아침인사를 했다. 아침형 인간인 젊은 나와, 저녁형 인간인 Rita.


본격적으로 시작된 Rita의 쿠킹클래스는 생각보다 일정이 빡빡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만을 위한 아침상을 한가득! 차려주는데, 커피와 과일, 그리고 갓 튀겨낸 도넛들과 빵, 치즈를 한 가득 먹고 나면 본격적으로 오전 수업을 시작한다. 밀가루를 직접 반죽해 풀리아 지역의 파스타를 만드는 것은 물론, 문어나 해물요리들, 포카치아 굽는 방법, 그리고 바바오럼 같은 디저트를 만드는 것도 배웠다. 하나같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요리들은 아니었지만, 신선하고 좋은 재료들로 가볍게 조리한 요리들은 낯설지만 익숙하고 맛있었다. 오전에 열심히 만든 것들을 먹고 나면 오후 2시쯤. 잠시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나면 4시부터 또 저녁 준비 겸 오후 수업을 받았다. 매일 이어지는 이 수업 스케줄은 체력이 바닥이었던 나에게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지치지 않고 열정적으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하는 Rita를 실망시킬 수 없어 열심히 배웠다. 치즈가게를 운영하는 아저씨가 직접 방문해 풀리아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치즈인 모차렐라와 부라타 치즈를 함께 만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몇 년 사이 유명해진 부라타 치즈를 그때 처음으로 먹어보고 나는 진심으로 외쳤다. "맘마미아!!!!"



"올리브유 적당히" = "올리브유를 이래도 되나 싶게"
토마토 파스타를 만드는 Rita와 영혼의 단짝 Vittoria
신선한 앤초비는 뼈를 갈라 빵가루를 얹어 구워 먹었다.
풀리아 지역의 명물 'panzzerotti'.  튀기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막 튀겨져 나오는 것을 후후 불어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


저녁 식사 메뉴를 열심히 만들고 나면, 동네 사람들과 쿠킹클래스를 듣지는 않지만 Rita의 집에 머무는 다른 투숙객들이 모두 모인다. 바다로 해수욕을 갔다 오는 사람들, 토마토 농사를 짓는 사람들, 와이너리를 하는 주민들 모두 모여 Rita네 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식사는 8시 정도부터 자정까지 이어졌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그랬다. 한국에서 온 '리'가 이것들을 다 만들었다고 나를 소개하면 아닌 줄 알면서도 사람들은 친절하게 나에게 감사를 표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투숙객 중에 이 곳을 처음 찾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매년 여름이면 늘 이 곳을 방문하는 밀라노에 사는 가족들과 로마에서 찾아온 Rita의 친구가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밀라노에서 온 아저씨의 건강이었다가, 오늘 해변가에서 있었던 웃긴 얘기였다가, 내년에 다 같이 브라질로 여행을 가보자는 농담 반, 진담 반이 이어졌다. 그곳에 이방인은 나 한 명이었지만, 아무도 나를 이방인으로 대하지 않았다.

식사의 마무리는 Rita가 담근 독주로 피날레를 장식한다. 나는 시나몬 맛이 제일 맛있었고, 한 입 털어 넣자마자 바로 방으로 올라가 깊은 잠에 빠졌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되어 Rita는 나를 기차역에 데려다주었다. 그동안 너무 즐거웠다는, 배운 레시피들은 한국에 돌아가 꼭 복습해 보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Rita의 눈이 촉촉해졌다.

"oh my dearest friend Lee! 이렇게 멀리까지 와줘서 너무 고마워. 너는 정말 따뜻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야. 왜 이탈리아 사람들이 너를 'solare(태양)'이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돼. 따뜻하고 열정적인 내 친구 Lee!!"

나는 그녀와 4박 5일을 함께했을 뿐인데, 그 누구보다 큰 지지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Rita, 또 올게요."

"이태리에 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여길 또 와. 그래도 꼭 다음에 온다고 하면 나는 친구한테는 돈은 안 받아."


마지막으로 Rita의 집을 찾은 것은 2019년이었다. 9월에 추석 연휴를 포함해 2주의 시간을 내어 이탈리아 남부와 사르데냐를 여행했다. (사르데냐 시골에 대한 이야기는 2편에서 써 볼 예정이다.) Rita는 여전히 나를 따뜻하게 반겨줬고, 우리는 Rita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젤라토 집과 바비큐집, 해변가에 있는 해산물 요릿집과 trulli가 유명한 alberobello마을 등을 함께 여행했다. 그리고 내년에 또 오겠다고 인사를 하고 떠났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3년 전 발리에서 들은 명상 수업에서 나를 조건 없이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떠올리라고 할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Rita를 떠올렸다. 그것이 부모님이 아니었던 것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지만, Rita와의 짧았던 만남과 우정은 내 마음속에 그만큼 강력하게 자리 잡았다. 올해 초, 자궁적출술을 받고 나는 Rita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결국 나는 수술을 받았어요. 일은 쉬고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코로나가 끝나고 돈을 벌어야 Rita 보러 갈 텐데"

"oh my dearest friend Lee! 신이 너의 모든 것을 만들었고, 그중 일부를 가져갔구나. 신은 그걸로 감사해하며 앞으로 너의 앞길을 지켜줄 거야. 열정적이고 따뜻한 친구, 앞으로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기던 너의 에너지로 이겨낼 거야.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지 나에게 와. 맛있는 음식과 쉴 곳은 언제든 있어! 난 친구한테 돈은 안 받아!"


관계의 깊이와 농도가 그 시간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내 인생에서 세 번 만난, 같이 보낸 시간이 다 합쳐도 한 달이 안 되는 사람에게 이렇게 의지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이론'처럼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 내 마음을 다 보여주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든 낯선 사람에게 내 세계를 보여주고 의지하지 않았고, 그것이 꼭 Rita였던 데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로 관광객에게는 문을 닫은 Rita의 집에는 Rita와 고양이 약 10마리쯤.. (매년 늘어서 이제 정확히도 모르겠다.)이 함께 책을 쓰고 있다. 일을 할 수 없게돼 답답한 Rita는 책을 쓰느라 바쁘게 지내기로, 그리고 나는 그 책이 출판되고, 영어 번역본이 출판되는 그 날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볼 것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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