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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May 26. 2021

나는 핑크색 바다가 보고 싶었을 뿐

이태리 덕후의 시골 산책 4- Sicilia Marsala

인생에 계획이라는 걸 딱히 크게 세워두지 않는다.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호기심이 많고 관심사가 다양한 성격이라 계획을 세우고 그 길만 쫓아가는 것이 몹시 답답하게 느껴진다. 여행을 할 때는 더욱 그렇다. 목적지를 정하고 숙소만 대충 잡아둔다. 아주 성수기가 아니면 가는 날,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숙소도 예약하지 않을 때도 있다. 가는 지역의 맛집이 어디인지,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그때그때 알아본다. 이러다 언제 한번 크게 곤란한 일이 일어나면 그때는 계획형 인간이 되려나 싶지만, 또 천성이 어디 가겠나 싶기도 하다. 


시칠리아 여행을 할 때도 그랬다. 휴가에 시칠리아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바로 서울에서 팔레르모로 가는 비행기를 결제했다. 여행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서 숙소를 예약하려고 검색을 시작했다. 구글에 '시칠리아 여행'을 영문으로 검색했다. 많은 관광지 사진 틈에서 특이한 사진을 발견했다. 핑크색 바다 사진이었다. 사진을 보자마자 나는 매료됐다. 그 지역은 시칠리아 서쪽의 '마르살라(Marsala)'였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싶었는데 주정강화 와인인 마르살라 와인이 이 지역의 독특한 와인이었던 것. 핑크색 바다를 구경하고 마르살라 와인도 맛보고 오면 되겠다 싶었다. 'Agriturismo' 라는 이탈리아 시골의 B&B들의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예약까지 가능한 사이트에서 숙소를 찾아봤다. 마르살라 지역에 숙소가 많지 않았다. 고민을 덜어줘서 좋았다. 야외수영장과 레스토랑이 있고, 와이너리를 함께 운영하는 작은 리조트가 있었다. 그곳으로 예약했다. 


팔레르모 공항에서 마르살라로 어떻게 갈지는 팔레르모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때는 야근이 정말 많은 직장을 다닐 때라, 출국일 전날까지 새벽 야근을 했다. 정말이지 내 성격도 성격이지만, 교통편까지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실제로 없기도 했다. 팔레르모에 도착해 숙소 주인에게 마르살라까지 가는 교통편을 물었다. 단호하게 얘기했다. 

"대중교통은 없어요. 차를 빌려야지." 

나와 친구는 둘 다 면허가 없었다. 어쩐다. 다시 구글 검색을 시작했고, '블라블라카'라는 서비스를 발견했다. 우버와 비슷한 서비스인데 유럽에서는 우버보다 더 많이 쓰는 것 같았다. 팔레르모에서 마르살라로 가는 운전자를 구한다고 신청했다. 20분쯤 지나 차량 한 대가 매치됐다. 역시 난 임기응변으로 또 위기를 넘기나 싶었다. 


언제 어디에서 만날 지를 정하려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운전자는 중년 남성이었는데, 영어가 서투른 것 같았다. 몇 마디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 여긴 마피아의 고장 시칠리아. 우리는 작은 동양 여자 둘. 목적지는 대중교통도 안 다니는 작은 소도시. 이거 큰일인데 싶었다. 우리 아빠는 리암 니슨이 아닌데, 어쩌지. 다시 프로필을 봤다. 후기가 4.9점, 블라블라카 서비스를 이용한 지 오래됐다고 나왔다. 이걸 믿고 안심해야 되나 고민됐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핑크색 바다를 보고 싶었고, 숙소는 완불해둔 상태였다. 우리는 둘이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테이큰도 친구랑 둘이 갔지만 나쁜 일이 일어났지 않은가? 또 걱정이 밀려오려고 하는 사이에 아저씨가 우리를 데리러 왔다. 큰 덩치의 아저씨가 작은 피아트를 타고 왔다. 차 안에는 우리 말고도 블라블라카를 이용하는 두 명의 젊은 여성이 더 있었다. 그래, 네 명이면 괜찮지 않을까. 


한 시간쯤 달려 다른 일행 두 명이 내렸다. 즐겁게 여행하라고 인사하고 난 뒤 내내 침묵이 흘렀다. 블라블라카를 이용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뒷자리에 앉아 연신 눈알을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차가 꽉 막혔다. 갑자기 아저씨는 창문을 내리더니 알 수 없는 언어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구글 번역 앱의 음성인식 모드를 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구에게, 뭐라고 욕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번역 앱으로 아저씨에게 우리는 언제 도착해도 괜찮으니 천천히 운전하라고 했다. 아저씨는 절대 막힐 리가 없는 도로인데 사고가 나서 차가 막히는 거라고, 우리에게 되려 미안하다고 했다. 화가 난 아저씨에게 더 어쩌지도 못하고 우리는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더 달려 마르살라에 도착했다. 사막같이 먼지가 날리는 땅에 황톳빛 건물들이 듬성듬성 올라서 있었다. 선인장이 가로수처럼 많았고, 카페나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제 마르살라죠? 얼마나 더 가면 되나요?"

"알려준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했더니 여기라고 나오는데, 여기 아무것도 없잖아요?"

맙소사. 한시라도 빨리 이 좁은 차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리조트 같은 건물은 없었다. 나는 숙소에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받지 않았다. 시에스타 타임이었고, 한적한 시골이었다. 우리는 주변 골목을 모두 들어가 봤지만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는 마르살라에 20년을 넘게 살아 잘 아는데, 여기에 그런 숙소가 있는 것은 못 봤다고 했다.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좁은 골목에서 빠져나와 속도를 내며 어디론가 달렸다. 아... 이제 시작인 건가? 호랑이 굴에 이제 우리가 들어온 거고, 정신을 차려야 하는 타이밍인 건가 싶었다. 

"저희 어디로 가는 거예요..?" 용기를 내 물었다. 

"우리 집."


갑자기 우리더러 짐을 두고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황량한 도심을 벗어나 주택가 골목에 들어왔다. 우리는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차에서 내렸다. 아저씨는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집 안에는 아저씨의 아내와 앳되 보이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아내와 딸 앞에서 우리에게 해를 가할 것 같지 않았다. 아저씨는 우리를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가족들에게 소개해줬다. 

"우리는 루마니아 사람입니다." 

루마니아라니... 테이큰의 그 악당들도 루마니아 사람인데! 순간적으로 아저씨 팔목에 문신이 있는지 살폈다. 별모양 문신이 있으면 안 되는데! 허튼 상상을 하고 있는 사이 아내분이 분주히 커피와 다과를 내왔다. 에스프레소를 연거푸 두 잔을 들이킨 아저씨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눈만 꿈뻑이고 있으니 아저씨가 커피를 권한다. 담배 한 대만 피우고 다시 가보자고 했다. 우리는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아저씨는 담배 두대를 연거푸 피우고 갑자기 일어섰다. 

"숙소에 다시 전화해봐요."

제발, 받아주세요. 제발... 

"프론토!(Pronto!)"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너무 반가워 눈물을 흘릴 뻔했다. 수화기를 건네받은 아저씨는 자세한 숙소의 위치를 파악했다. 아저씨 집에서 10분 정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인지 숙소가 보이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아저씨, 저희 때문에 오늘 너무 고생 많이 하셨죠. 너무 죄송합니다. 카드결제된 거 알고 있지만 사과의 뜻으로 이걸 받아주세요." 

나는 20유로를 더 내밀었다. 아저씨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먼 곳까지 온 손님한테 그렇게 할 수 없지! 그런데, 내일은 어쩔 셈 이에 요? 여기 버스도 없고 주변에 식당도 없는데! 밥은 어떻게 먹으려고? 놀러는 안 나가요?" 

'그러게요, 아저씨. 저는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는 부끄러운 말을 삼키고 숙소 안에 레스토랑이 있고 수영장과 와이너리가 있어서 쉬면 된다고 했다. 

"말도 안 돼요. 내일 아침에 밥 먹고 메시지 해요. 15분 뒤에 내가 여기 올게요. 딸 데리고 와도 되죠? 여긴 너무 시골이라 딸이랑 같이 놀아주면 아주 좋아할 텐데. 나는 나중에 우리 딸이 한국 같이 먼 곳에 여행도 가면 좋겠거든요. 이런 언니들을 보면 자기도 그런 꿈을 꾸지 않을까 싶어요."

"아, 물론이에요. 근데 너무 죄송해서... 내일 그럼 저희가 점심을 대접할게요. 좋은 식당으로 같이 가요!" 

"내일 메시지 해요. 15분 뒤에 올게요."


다음날 아침을 먹고 아저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바쁘지 않으세요? 저희가 꼭 점심을 대접하고 싶어요.'

'15분'

짧은 답장을 받았다. 나는 진짜 아저씨가 오는 건가 싶어 문 앞으로 쪼르르 나가 기다렸다. 아저씨는 딸과 함께 정말 15분 뒤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진짜 오는 걸까. 목을 쭉 빼고 기다렸다 


아저씨는 우리를 데리고 해변으로 갔다. 모래사장에 능숙하게 파라솔과 릴랙스 체어 3개를 설치해 주셨다. 

"왜 3개예요? 아저씨는 의자가 없나요? 저는 모래에 그냥 누워도 돼요. 아저씨 의자 쓰세요."

"아... 말을 안 했구나. 우리가 믿는 종교는 매우 보수적이에요. 아내가 아닌 여자와 즐거운 일을 하면 안돼요. 위험에 처했을 때 구하거나 할 수는 있지만, 꼭 필요한 일이 아닌 즐거운 일(having fun)을 같이 하면 안돼요. 나는 저기 있을 테니까 여기 음료수 마시고 놀고 있어요.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거나 배가 고프면 저기 보이죠? 나는 저기 있을테니 불러요." 

아저씨는 정말 멀찍이 떨어져 우리가 노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저씨의 딸과 우리는 아저씨가 준비해주신 음료수를 먹고 해변에서 수영을 하고 선탠도 하며 한참을 놀았다. 물에 들어갔다 나오면 우리 테이블에 아이스크림이 준비돼 있고, 그다음에 들어갔다 나오면 피자 같은 먹을거리들이 놓여있기도 했다. 아저씨는 여전히 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 뿐이었다. 


마르살라는 한적하다. 해변도 한적하다. 바다에 파도도 없어 한적하다. 이 한적한 곳에서 우리는 호사스럽게 아저씨가 차려준 피크닉을 즐겼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 물놀이에 지친 우리는 아저씨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아저씨가 안내한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아저씨는 우리 셋을 테이블에 앉히고 본인은 옆 테이블에 가 앉았다. 

"식사도 따로 하는 게 규칙이라.."

"드시고 싶으신 거 다 시키세요. 저희가 살게요."

"돈 낼 필요 없어요. 저기 보이죠? 우리 아내. 여기 우리 아내의 식당이에요. 마음껏 먹어요."

아뿔싸. 이러려고 점심을 먹자고 한 게 아닌데.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내분은 웃으며 우리에게 시칠리아 가정식 음식과 피자를 내주셨다. 별 것 아닌 토마토 샐러드와 피자도, 아란치니도 모두 맛있었다. 

시칠리아에서 먹은 토마토는 지금까지 먹어본 것과 비교도 안되게 진하고 향긋했다. 알고 보니 물을 주지 않고 키우는 것이라고. 치즈 없이도 너무 맛있었던 브루쉬게타!


"어디 더 가고 싶은데 없어요? 말만 해요. 다 데려다 줄게요."

식사를 마친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사실 이곳에 온 이유가 분명했다. 핑크색 바다가 보고 싶었다. 

"저기 사실은... 이거 어딘지 아세요? 마르살라라고 하던데.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시면 저희가 찾아갈게요... 구글 지도 상으로는 여기에요."

"이게 마르살라라고요? 나는 20년 넘게 여기 살면서 이런 핑크 바다를 본 적이 없는데? 잘못 안거 아니에요?"

"분명 이 사람이랑 이 사람이 마르살라 여행에서 여기를 왔었다고 했는데... 아닐까요..?"

아저씨는 벌떡 일어나 차로 갔다. 우리는 말없이 아저씨를 따라갔다. 차로 5분쯤 이동해 해변가에 있는 요트 선착장에 도착했다. 아저씨는 그 근처의 카페와 바들을 가리키며 '여기는 마피아가 하는데, 여기도 마피아가 하는데, 여기는 내 친구가 하는데. 그리고 여기는 내 친구가 하는 요트스쿨'이라고 안내했다. 아저씨는 친구에게 내가 보여준 사진과 구글 지도를 보여줬다. 친구분이 설명을 듣고 '아~~~'하는 것을 보니 어딘지를 알고 있는 듯했다. 아저씨가 여기는 차로 못 가고 요트를 타야만 갈 수 있다고 했다. 생각할 틈도 없이 우리는 요트를 타고 있었다. 아저씨와 딸도 즐거워 보였다. 15분 남짓 요트를 타고 들어가니 핑크빛 바다가 펼쳐졌다. 

"와... 이게 진짜 있었구나!!!"

"나는 여기 살면서도 이런데가 있는 줄 몰랐어요!! 너무 예쁘다."

갑자기 예정에 없던 요트를 타게 됐다.
사진은 실제의 반의 반도 못담는다. 태어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이런데가 있는지도 몰랐던 핑크색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칠리아의 서쪽에 있는 트라파니는 유럽에서도 유명한 염전지역이다. 트라파니 바로 옆에 있는 마르살라 지역의 소금도 유명한 편이다. 핑크색 바다인 그곳은 염전이었다. 핑크색을 만드는 것은 소금에 있는 특정한 미네랄과 박테리아물질로 인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프랑스나 남미, 동남아에도 이런 핑크 염전들이 있다. 바닷물에 손을 넣으면 커다란 소금 덩어리가 잡혔다. 꽤 넓게 펼쳐진 핑크색 염전을 걸으며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다시 못 볼 풍경이었다. 염전의 반대편에는 얕은 바다가 펼쳐졌다. 한참을 구경하고 수영하다 요트를 타고 돌아왔다. 


아저씨는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주었다. 요트를 탄 값도, 점심값도 받지를 않으셔서 우리는 마음이 불편했다. 친구와 나는 각자 50유로를 꺼내 딸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학교 다니면서 필요한 거 사서 써요. 아빠한텐 비밀이에요."

딸은 우리의 귓속말에 손사래를 저으며 돈을 돌려줬다. 우리는 용돈을 드리면 두 번까지 마다하다 받는 부모님들을 겪어왔기에 능숙하게 다시 바지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줬다. 

"내일은 어떻게 할 거예요? 혹시 여기 지역에서 쇼핑하고 싶었던 게 있으면 내일 상점에 데려다 줄게요. 내가 오후에는 일이 있는데, 오전에는 괜찮아요."

"아, 내일은 저희가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로 해서 다시 블라 블라카를 예약해뒀어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음날 조식을 먹고 리조트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는데, 리조트 직원이 우리를 불렀다. 

"저기 정문에서 어떤 남자분이 미스 리를 찾으세요."

아저씨였다. 피아트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 우리가 차에 뭘 두고 내렸나? 아저씨는 양 손에 무겁게 뭔가를 들고 찾아왔다. 

"여기 소금이 유명한데, 요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기념품으로."

소금을 출국할 때 공항에서 사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그 마음을 어찌 알았는지 양손 가득 사 왔다. 다만, 기념품 용 작은 병이 아닌 친구와 나 각자 2킬로씩 총 4킬로의 소금을 들고. 멋쩍게 웃는 아저씨가 너무 고맙기도, 웃기기도 했다. 

"아 너무 감사해요. 진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해요."

"아, 그리고 이거. 이렇게 먼 시골을 찾아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이런 걸 주면 어떡해요. 이걸 받으면 내 친절이 돈 때문에 한 게 되잖아요. 나는 그냥 정말 여기까지 와준 게 고마워서 한 건데."

아저씨는 한사코 100유로를 우리에게 돌려줬다. 

"아니 따님이 너무 귀여워서 드린 건데..."

우리말을 듣지도 않고 아저씨는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다시 올랐다. 

"이따가 잘 가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혹시 시칠리에 있는 동안 뭐 교통에 문제가 있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해요!!"

아저씨가 탄 오토바이가 먼지를 뿜으며 멀어졌다.  


시칠리아는 제주보다 훨씬 더 큰 섬이다. 대중교통이 발달되지 않아 차 없이 다니기에 매우 불편하다. 섬의 동쪽인 타오르미나(Taormina)나 칸타니아(Cantania)는 기차나 버스로 이동이 가능하고, 시칠리아의 상징인 에트나 화산 투어 프로그램도 많다. 삼사일에 걸쳐 주요 도시들을 둘러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다만 나는 그냥 핑크색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 생각 하나로 마르살라에 갔고, 세상 둘도 없을 착하고 친절한 가족을 만났다. 팔레르모에서 마르살라로, 그리고 체팔루와 타오르미나, 칸타니아, 아그리첸토까지 유명한 관광지역들을 둘러보고 왔지만 나에게 시칠리아는 핑크색 염전으로 남아있다. 하고 싶었던 쿠킹클래스는 적당한 프로그램을 예약하지 못했고, 에트나 화산에도 올라가 보지 못했으며, 시라쿠사와 라구사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페에서 깐놀리를 먹어보고싶다. 시칠리아 주변의 작은 섬들도 가보고 싶다. 시칠리아를 다시 여행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제일 먼저 아저씨에게 연락할 것이다. 문구류와 예쁜 옷들을 사서 딸에게 선물하고, 아저씨에게도 한국의 과자와 내가 만든 그래놀라를 선물해야지. 허락하신다면 당면과 간장, 참기름을 챙겨가 잡채를 한 바가지 무쳐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먹고 싶다. 

아그리첸토의 특이한 지형. 바다와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바위가 절경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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