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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Jul 14. 2021

엄마 아들과의 동침

최악의 최악의 최악을 떠올려봐. 그게 바로 수술동의서야.

"두 분은 어떤 관계시죠?"

"형제입니다."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입 맞춰 대답했다. 간호사분이 바뀔 때마다, 의사가 바뀔 때마다 물어보는 질문에 같은 대답을 했다. 


수술을 결정하고 오빠에게 보호자로서 동행해달라고 부탁했다. 철천지 원수지간은 아니었지만 애틋함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평범한 대한민국의 경상도 남매지간이었다. 오빠가 대학을 간 뒤로, 그리고 결혼을 한 뒤로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를 묻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거나 서로의 안부를 먼저 전하지도 않았다. 그저 소식이 없으면 잘 지내겠거니 했다. 오빠가 결혼을 하고 조카가 생긴 뒤로는 조카를 핑계로 연락의 횟수가 잦아졌다. 여전히 오빠가 어떻게 지내는지, 회사생활이 힘들지는 않은지, 사는 게 재미는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오빠는 '밥 먹었나?' '언제 내려오니?' 말고는 나에게 궁금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수술 당일이라도 반드시 법정 보호자 자격이 있는 사람이 입원실에 대기해야 한다는 병원의 지침에 따라 오빠에게 하룻밤만 병원에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했다. 오빠는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겠다고 했다. 나는 부모님에게는 비밀로 해달라고도 덧붙였다. 오빠는 이 부탁에도 안된다는 말도, 왜 그러냐는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짐작컨데 서로 애틋한 사이는 아니더라도 오빠는 내가 부모님, 특히 엄마와의 관계에서 얼마나 독립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지, 그리고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또 얼마나 뒷목을 잡고 쓰러질지를 너무나도 잘 알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연로한 엄마나 아빠가 병실에서 쪼그려 잠을 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오빠도 짐작했을 터. 우리는 짧은 대화로 비밀 동맹을 맺었다. 


수술 하루 전, 오빠를 병원 입구에서 만나 입원실로 같이 올라갔다. 코로나19로 인해 병실에 출입이 가능한 보호자는 1명으로 제한이 되고, 그 보호자는 입원 3일 이내에 코로나 검사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이어야 했다. 오빠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는 수고를 기꺼이 해줬다. 

"면봉을 뇌까지 막 쑤시더라. 으으"

엄살을 잊지도 않았다. 


입원실로 올라가 짐을 풀었다.  나는 나름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에 기반해 챙긴다고 챙겨 왔는데, 워낙 짐 싸는 데는 소질이 없는터라 또 챙기지 못한 물건들이 자꾸 생각났다. 오빠가 짊어지고 온 배낭에는 내가 챙기지 못한 것들이 들어있었다. 

"이거 너 읽으라고 주라더라."

"새언니가?"

"응."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를 건네받았다. 이미 읽었던 책이지만, 새언니가 읽으라고 챙겨준 책이 있다는 것도, 그게 <시선으로부터>라는 것도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주래."

오빠는 쿠키며 우유, 초콜릿 같은 간식들을 잔뜩 꺼내놨다. 

"나 금식이야. 오빠 먹어."

짐을 하나하나 풀어 정리하고 병원 주변의 편의시설 위치를 다 파악하고 나자 급격히 우리 둘의 말 수가 줄었다. 

"혹 생긴 거 때문에?"

"응."

"그런 건 와 생기는 거고."

"이유가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어. 여자들은 아플 가능성이 너무 높아."

한참의 침묵 끝에 드디어 오빠는 내가 왜 수술을 받는지 물었다. 나는 아직 어린 여자 조카의 앞으로가 걱정됐다. 부디 초경을 시작한 이후에는 본인 스스로 몸 상태를 잘 살피고, 통증이 심하거나 생리주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미리 병원에 갈 수 있도록 교육해주길 당부했다. 첫 생리를 시작하면 '어머 여자가 된 걸 축하해!'보다는 현실적으로 이제부터 본인의 몸이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인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 교육이 잘 돼었으면 좋겠다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엄마 아들'로만 여겼던 오빠와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계기가 무엇이든 이런 얘기를 나눠볼 수 있게 된 것이 뿌듯하기도 하고, 생경스럽기도 했다. 


"환자분, 수술동의서 서명받으러 왔습니다."

처음 보는 의사가 들어왔다. 밤이 깊어 깜깜한데 수술동의서를 받겠다고 온 의사의 얼굴에 피곤이 쌓이고 쌓여있는 듯했다. 

"지금부터 수술 동의서 내용을 제가 설명드릴 거고, 환자분과 보호자분 같이 들으시고 환자분 본인 서명하시면 됩니다. 환자분은 자궁내막하 거대 근종으로 진단되셨고 내일 난소를 제외한 자궁 적출술 내일 진행하실 거고요......"

아뿔싸. 내가 자궁 수술을 한다고는 했는데, 자궁 적출을 한다고 오빠한테 얘기했던가? 슬쩍 오빠 눈치를 보니 웃음기가 가시고 어딜 한대 세게 얻어맞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수술은 복강경으로 진행할 거고요, 복강경은 의료보험 해당사항이 아니어서 본인부담 100퍼센트 발생하실 거고, 전신마취 수술이기 때문에 수술 후 마취가 깨지 않을 경우 호흡이 어렵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고요...."

오빠의 얼굴은 점점 시멘트색이 되어갔다. 

"복강경으로 진행할 거지만 워낙 거대 근종이어서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에 개복 진행할 예정입니다. 개복할 경우에 입원기간 더 늘어날 거고요, 회복하는데 시간 두 달에서 세 달 보셔야 합니다. MRI상으로 근종과 선근증 확인되어 수술 진행하지만, 복강경으로 봤을 때 추가 이상소견 있을 시 수술 진행 예정이고, 특히 난소를 복강경으로 자세히 봤을 때 문제가 있다 판단되면 같이 적출 예정입니다. "

피곤에 찌든 의사는 음계의 변화 없이 모노톤으로 수술동의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피아노의 제일 오른쪽 페달을 밟은 채로 건반 하나만 쭉 누르고 있는 듯한 의사의 말을 들으며 함께 공포에 질려가고 있었다. 

"수술 후 입원 하루 더 하시는 것으로 우선 예상하시면 되고, 수술 진행 상태에 따라서 입원기간은 담당 교수님께서 다시 판단하실 예정입니다. 수술 후에 마취가 깨지 않거나,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기타 다른 상황으로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를 포함해 모든 변동 사항에 대해서는 보호자분께 연락드릴 예정입니다. 수술 후에 무통주사 맞으실 수 있는데 동의하시겠습니까? 무통주사는 100퍼센트 본인부담금으로 청구되고, 이상반응 설명드리자면..."

들을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여기까지 들으시고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없으시면 서명해주세요."

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얼른 볼펜을 건네받고 사인을 했다. 내가 빨리 사인을 해야 이 무서운 소리를 그만 들을 것 같았다. 수술을 결정하기 전에 수없이 찾아봤기 때문에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막상 내 면전에 대고 여러 페이지가 되는 동의서 내용을 읽어 내려가는 것을 듣고 있는 것은 또 다른 공포였다. 

"개복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나요?"

오빠가 물었다.

"그건 저희도 열어봐야 알아요. 더 궁금한 거 없으시면 여기에 서명..."


길고 긴 동의서 서명 작업을 마치고 의사는 홀연히 입원실에서 나갔다. 괜스레 피곤한 척을 하며 잠자리를 정리했다. 

"야. 니 혹만 떼는 게 아니라 자궁을 떼는 거였다고?"

"아... 어... 혹만 뗄 수가 없는 상태래. 너무 크고 위치가 이상해 가지고."

"엄마한테 말하자. 이건 아니야. 엄마한테 말하고 너 집에서 엄마랑 같이 있어라. 혼자서 뭐 어쩔라고."

"아니 나 친구들한테 부탁도 해 놨고, 20일 동안 데워먹기만 하면 되게 다 음식도 해놓고 왔어. 어차피 누워만 있을 건데 뭐. 엄마 괜히 신경 쓰면 또 병나."

"어쩌려고 그러냐 너는 진짜."

"괜찮아. 엄마한테는 나중에 다 괜찮아지고 나서 말할게. 어서 자자. 컨디션 유지하려면 자야 돼."

"근데 저 의사는 무슨 말을 저렇게 하냐. 진짜."

"원래 수술동의서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최악의 상황을 설명하는 거야. 복강경으로 하면 회복도 금방 할 거고, MRI에서 안 잡히는 게 뭐 또 있겠어? 걱정 말고 어서 자."



나는 그날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수술 시간은 당일 오전에 결정됐다. 다행히 오전에 수술을 받게 됐다. 보호자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해서 나는 드라마에서처럼 오빠가 내 침대를 같이 끌고 가면서 응원이나 해줄까 했더니, 코로나19 때문에 입원실에서 대기해야 했다. 아니 이럴 거면 뭣허러 굳이 보호자가 꼭 있어야 한다는 걸까 싶었지만, 그런 잡다한 생각은 이내 접어버렸다.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길을 굳이 침대에 누워서 실려가노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지나고, 병동을 옮겨 수술실 대기실로 들어갔다. 약물 알레르기가 있는지, 전신마취 경험이 있는지, 치아는 멀쩡한지, 무슨 수술을 받는지 알고는 왔는지... 몇 번이나 반복해 대답했던 것들을 또 반복해서 대답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아늑했다. 누워있는 환자들을 배려해 천장에 하늘을 그려놨다.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그려져 있었다. 기독교 학교 병원이라 그런지, 수술실로 입장하는 문 앞에 크게 문구가 쓰여 있었다.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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