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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별 거 있나?

계절의 즐거움을 즐기며 채식하기

by 망원동 바히네

여름의 시장 풍경 중 인상 깊은 것은 시장에서 야채를 파시는 분들이 열심히 고구마순 껍질을 까고 있는 모습이다. 고구마 껍질의 색보다 짙은 보라색의 줄기에 푸른 잎사귀가 달린 고구마순을 가져와 장갑을 끼지도 않은 손으로 하루 종일 껍질을 까신다. 자리는 하나만 깔았는데 할머니 세 분이 붙어 앉아 고구마순을 까는 곳도 있다. 한 분은 휠체어에 앉아 하루 종일 손 밑이 까매지도록 고구마순 껍질을 벗긴다. 한참을 까도 한 소쿠리가 나올까 말까인데, 두 줌이 넘는 깐 고구마순을 삼천원을 달라 신다. 고구마를 길러낸 시간부터 이 순을 가져와 까는 시간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의 노동이 깃든 것인지 가늠도 안되는데, 내가 지불하는 돈은 커피 한잔 값이 안된다.


엄마는 고구마순에 간장을 조금 넣고 푹 익혔다가 마지막에 들깨를 듬뿍 넣고 지짐 반찬을 만들곤 했다. 엄마는 아직도 장을 직접 담근다. 아파트 베란다지만 볕을 쪼이고 비를 피하는 정성으로 담근 장은 단순하지만 깊은 맛이 난다. 장독에서 장을 거르고 간장을 따로 담아 두었다가 일 년에 세네 번씩 작은 병에 담아 보내주신다. 그 간장을 넣으면 모든 음식의 맛이 우아하게 피어오르는 느낌이다. 망원역에서 집으로 오는 길 길에 앉아 하루 종일 깐 고구마순을 파시는 할머니에게 삼천 원을 드리고 고구마순을 사 왔다. 반은 김치를 담그고 반은 지져먹겠다 했더니, 이걸 가져가서 뭔 김치까지 담그냐 하신다.

“혼자 살면 조금씩 먹게 돼요.”

할머니는 구태여 괜찮다는데도 덤을 한 무더기 넣어주신다. 혼자 먹기에 많은 양이다.


집에 돌아와 고구마순을 데친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데친 고구마순은 찬물에 헹궈둔다. 반은 김치 양념을 해서 넣어두고, 반은 들깨 지짐을 한다. 날이 더워 불 앞에 서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다 오랜만에 가스불에 음식을 하는 느낌이다. 양파를 채 썰고, 찹쌀풀을 쑤고, 고춧가루를 풀고, 마늘과 생강, 쪽파를 몇 가닥 넣고 양념을 해두고,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 고구마순에 무치기만 하면 된다. 해보면 별 것 아닌 김치 담그기. 특히나 여름김치는 손이 덜 간다. 고구마순을 까 둔 걸 사 오면 샐러드만큼이나 간단하다. 양을 줄여 조금만 하는 것도 하다 보면 익숙해진다.

깨를 뿌리는 건 일종의 의식 같은 것. 내가 이걸 완성했다! 하는 의미.

현미에 귀리, 율무, 보리를 조금씩 섞어 밥을 한다. 아직 소화가 잘 되니 먹는 밥은 좀 거칠지만 영양을 생각해서 짓는다. 가끔은 샐러드를 해 먹고 남은 퀴노아도 밥에 넣는다. 통곡물을 그대로 익히기만 한 밥. 어렵지 않게 건강한 채식을 할 수 있는 기본이다. 하루 익힌 고구마순 지짐을 꺼내고, 엄마가 담근 된장을 풀고 야채와 두부를 듬뿍 넣은 국을 담아내고, 살짝 쪄둔 브로콜리에 깨소금을 무쳐낸다. 살짝 콧잔등에 땀이 맺히도록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고 편안하다. 저녁엔 남은 밥에 고구마순 김치를 넣고 통깨와 참기름을 조금 더해 비벼먹는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


고구마를 거두고 그 줄기까지 먹는 것. 마찬가지로 마늘 쫑을 먹고, 당근 잎을 먹는 것. 나도 모르게 스르륵 할 수 있는 제로웨이스트의 방법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사는 게 또 돌아보면 그다지 어려울 일이 없는데, 자꾸만 어렵게 생각하다 보니 어렵게만 살아온 것도 같다. 코넬대학교 채식 영양 수업 중 실제로 어떤 것을 구매하고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미국을 기준으로 한 수업이니, 당연히 한국의 실정에 맞지 않았다. 치아씨드며 코코넛 오일, 그렇게 좋아하는 올리브유와 파스타들도 물 건너오느라 생긴 탄소발자국을 생각하면 조금 줄여야 할 때인 것 같기도 하다. 일 년에 내가 먹는 올리브유의 양을 따지면 머리가 아찔해진다. 영양 수업에서 내 식단에 어떤 것들이 얼마나 포함되어야 하는지를 듣다보면 한국 사람이 한식으로 차려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에게 고구마순 김치를 담갔다고 자랑을 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한식 Plant-based diet를 두고 뭘 그렇게 멀리까지 갔다 왔나 싶다고 농을 쳐본다. 진담이 많이 묻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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