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원동 바히네 Aug 18. 2021

거 참 돌고돌아 어렵게도 왔다.

거대자궁근종과 자궁선근증, 그리고 자궁적출 그 이후의 삶.

질병의 발생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아직 이 과정이 끝난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이야 내 마음이 안정되어있지만 언젠가 또 '내 몸을 망친 과거의 나'라는 생각이 불쑥 올라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다시 올라오는 틈새가 생긴 것은 그것이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불안할 때, 무슨 이유로든 나 스스로를 원망하고 싶어질 때 좋은 구실을 찾을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두 걸음을 앞섰다가 한 걸음을 후퇴하고, 또 한걸음을 내디뎠다가 세 걸음쯤 후퇴하기를 반복하다 여기까지 잘 왔다.


나는 질병의 탓을 내가 잘못 살아온 것으로 돌리지 않으면서도,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대한 의학적 관점에서의 조언을 구하기 위해 많은 질문을 의사들에게 해 왔다. 수술을 담당한 대학병원의 의사는 이러한 질문에 충실히 답변하지 못했고, 나는 그것이 그 의사가 내 주치의가 아닌 수술을 담당한 바쁜 의사이기 때문이라고 알아서 이해했다. 이후에 페미니즘 관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완전히 내가 원하는 답변을 듣기는 어려웠다. 유방암이 걱정되면 유방 초음파라도 정기적으로 찍고, 갑상선이 걱정되면 갑상선을 검사하고, 원하면 호르몬과 난소 검사를 주기적으로 해도 되지만 비용 대비 효과를 따졌을 때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는 답변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처음으로 나는 의사로부터 내가 걱정하는 부분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앞으로 생활습관을 더 건강히 하면 좋겠다는 조언 정도를 들을 수 있었다. 구체적인 가이드는 없었다.


나는 우리나라 병원 진료실에서 의사로부터 더 조언을 듣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닥치는 대로 책과 논문을 찾아 읽으며 나름의 결론을 내보려 노력했다. 처음엔 내 질문에 답을 해주지 않는 것에 반박이라도 하려는 심산으로 아득바득 읽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이 과정은 모종의 '힐링' 그 언저리쯤의 과정이 되어있었다. 나의 여성건강에 대한 염려증이 최고조에 달았을 때, 내 불안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으로만 해소할 수 있었다. 책과 자료를 읽는 과정에서 나는 분노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경험했다.


어떤 행위가 어떤 질병의 위험을 특정 비율만큼 높이거나 낮춘다는 연구결과들을 보면서 억울함을 느낄 때도 많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흡연은 만병의 원인이 된다고 할 정도로 여러 질병의 위험을 높인다. 하지만 내 주변의 흡연자 중 '우리 할아버지는 90세까지 담배를 놓지 않으시지만 여전히 매우 건강하게 살고 계시다'는 말로 확인된 연구들을 거부해버리는 것이다. 물론 그의 할아버지는 실제로도 건강하시고, 그도 특별히 문제 될만한 질병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사례들로 특정 질병의 발생 위험을 섣불리 결론짓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의학논문에서도 사례연구(Case study)는 문헌 중 가장 낮은 신뢰도를 보이는 것으로 분류된다.


이 세상 누구도 질병의 위험요인(Risk factor)을 완전히 컨트롤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특정 위험요인에 과하게 노출되더라도 절대로 그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내 몸을 다정하게 돌봐주는 것뿐이다.


몇 달 동안 읽은 책과 논문을 바탕으로 내린 몇 가지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1. 여성호르몬으로 인한 질환 중에는 에스트로겐 우세로 생기거나 악화될 수 있는 질환들이 많다. 에스트로겐 우세는 산업화 이후에 많이 보이는 현상이며, 때문에 산업화가 고도로 빠르게 진행되었거나 성숙한 곳의 여성들에게서도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에스트로겐 우세일 경우 발생하거나 악화될 수 있는 질환은 아래와 같다.

섬유낭성 유방질환(fibrocystic breasts; 섬유 낭포성 유방질환), 월경 전 편두통, 유산, 골다공증, 월경전 증후군, 갑상선 기능 저하증과 유사한 갑상선 기능장애, 자궁내막암, 자궁내막증, 자궁내막 폴립, 자궁유섬유종(자궁근종), 부종 유방통증, 유방암, 우울증.

나는 에스트로겐 우세가 이런 질병들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수술 이후에도 유방이나 갑상선 질환의 발생을 더 세심하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는지가 궁금했었다. 자궁근종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나 자궁내막증, 유방 섬유종 등을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수술 후에도 에스트로겐 수치가 여전히 높은 상태라면 마찬가지로 이런 질환의 위험 또한 높지 않을지 궁금했다. 의사들의 답변은 질환의 위험요인이 에스트로겐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고 했다. <아프지만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쓴 조한진희 작가도 책에서 자궁근종과 갑상선암의 상관관계가 있는지 의사들에게 질문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연관성이 없다로 일괄되어 좌절감을 느낀 것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나는 책에서 이 구절을 읽으며, 내가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며 질문하고 답변을 얻지 못해 실망했던 날들을 떠올렸다.


나는 <아프지만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구글과 pubmed에 'thyroid cancer, fibroids uterus, relationship'을 검색했다. 자궁근종과 갑상선 결절, 갑상선암, 유방암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논문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직까지 두 질병이 직접적으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불확실(unclear)'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각자 맡은 전문분과에 고도의 전문성만 가지고, 협진이 잘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특성이나 주치의제가 없는 시스템 때문일까.  


같은 위험요소로 인해 발생 위험이 높아지는 질병에 대해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는 이유가 '나는 반드시 저런 병에 걸리고야 말 거야'하는 좌절이나 저주가 아니다. 수술 전에 매년 하는 건강검진에서 내가 어떤 부분에 취약한지, 작년보다 올해 혈압이 높아지지는 않았는지, 피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는지를 궁금해하는 차원과 같은 맥락일 뿐이다.


2. 에스트로겐 우세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식단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책과 논문을 살펴본 후에 내린 마지막 결론이었다. 대부분의 여성질환 발생의 원인과 성장의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때문에 후향적으로 이런 질병을 가진 사람들의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위험요인을 알아낼 수 있는데, 공통적으로 가족력이나 유전적 요인과 같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바꿀 수 없는 요인을 제외하면 에스트로겐 우세와, 비만, 육식, 유제품, 환경호르몬에 노출되는 것과 같이 에스트로겐 우세를 부추기는 것들이 있다. 체내에서 에스트로겐과 같은 역할을 하거나 에스트로겐의 과다 분비에 영향을 주는 요소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식단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다.


공장식 축산을 통해 길러지는 가축들은 유전자 재조합 곡물이나 콩을 사료로 먹고 성장촉진제를 맞으며 자라게 된다. 특히 붉은 고기나 가공육은 암뿐만 아니라 여성질환의 위험과도 강력한 상관관계를 보인다. 닭이 계란을 낳게 하는 것도 수탁과의 자연스러운 교미가 아닌 인공적인 호르몬의 투여를 통해 지속적으로 알을 낳게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안전할  없다. 유제품은 말할 것도 없다. 젖소가 젖을 만들려면 계속 임신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호르몬과 항생제 등을 이용하게 된다. 많은 책에서 호르몬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끊어야  것으로 유제품을 꼽기도 한다.


화학 제초제나 비료, 살충제 중 다수는 에스트로겐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체내에 흡수되었을 때 에스트로겐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가능하면 유기농 농산물을 섭취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껍질채 먹는 과일이나 채소의 경우 더욱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튀긴 음식, 정제탄수화물, 질 좋은 올리브 오일이나 현미유가 아닌 식물성 오일들의 섭취를 줄이고 알코올의 섭취도 절제하는 것이 좋다.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하고 피토케미컬이 함유된 식품을 많이 먹으며, 비타민과 미네랄이 부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공식품의 대부분에는 유화제, 향미료, 방부제, 경화유 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피한다.


미디어나 책에서 '서구화된 식습관' 질병의 원인이라는 문구를 자주   있다. 최근에  책들에서도  문구가 종종 나오는데,  문구가 '서구' 사람이 썼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특히 <여자가 우유를 끊어야 하는 이유>  제인 플랜트는 한식을 포함한 건강한 아시아 식단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제인 플랜트가 다섯 번의 유방암 재발 끝에 식단에서 우유를 제외하게  것은 콜린 캠벨 박사의 '중국 연구(The China Study)'에서 시작됐는데, 이는 내가 수업을 들은 코넬대학교 식물기반 영양 수업을 만든 교수의 가장 큰 업적이다. 나는 수업 내내 '중국 연구'내용을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들어야 했는데, 돌고 돌아 결국 비슷한 결론을 내린 책까지 읽고 나니 아주 약간의 허무함과 동시에 모종의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있는 것이 아닌데, 자꾸  데서 어렵게 찾았던  같다.


사실 식단과 생활습관을 개선하려고 여러 자료를 찾고, 책을 읽고, 수업을 듣고 정리한 결론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일반적인 원론이었다. 우유와 고기를 먹는 것을 제외하면 좋은 품질의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과 같은, 누구나   있는 이야기이자 오히려   아닌  같은 이야기들. 그래서 오히려 가치가 절하되는 이야기들이다. 나도 지금까지 그랬으니까. 제인 플랜트는  마지막 부분에서 <십계명> 제시하는데 나는  10가지 중에서 3번이 가장 와닿았다. 직장여성이 시간에 쫓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남은 여가시간을 활용하는데 있어 우선순위에 무엇을  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끼니때가 되면 건강에 좋은 영양가가 풍부한 식사를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세련된 생활방식을 과시하는 물건을 가지려고 돈을 아끼고 경력개발을 위해 시간을 아끼는 것은 직장여성들에게 유방암이 생기는 두 가지 근본 원인일 것이다.


3.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 모르지만, 화학물질  에스트로겐에 영향을   있는 것들을 피해 본다. 비닐과 플라스틱의 사용을 최소화한다. 더불어 매니큐어와 화장품, 비누 등에 있는 유화제나 왁스를 피하고 천연 제품을 사용한다. 향수를 사용하지 는다. 최대한 드라이클리닝을 맡기지 않고 천연 세제로 집에서 해결할  있는 옷들을 입는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 진짜로 (마케팅을 위해 일부 천연제품이 함유된 것을 천연제품 자체로 포장하는  말고) 천연제품들을 모아 파는 가게들도 생겨나고 있어 제품을 선택하는데 예전보다는 수월해진 느낌이다. 무엇보다 사용하지 않을 것들을 제하고 나니 별로 고민을 오래 해서 구매해야  것도 많지 않은 느낌이다.


서울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이런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자동차 배기가스에도 제노에스트로겐이 포함돼 있는데, 내가 향수를 안 뿌리고 샴푸 대신 샴푸바를 사용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생각할 수 도 있다. 당장 시골에 내려가 전원생활을 할 것이 아니라면 이게 다 불가능하고 소용이 없거나 과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뭔가 유기농이거나 천연제품인 것은 우선 비싸다. 주춤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능한 선에서 이런 생활습관을 지키며 사는 지인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영 못할 일은 아니다'라는 생각도 든다. 서울에서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도 그들의 생활습관은 나의 과거의 것과 다르다. 20대의 나는 언제나 뭐든 '완벽하게'하지 않으면 아예 그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이를 평가 절하하거나 콧방귀를 뀌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불안함과 거만함이 섞이면 그런 태도로 발현됐다. 앞서간 언니들을 보며 용기를 내고, 완전하지 않아도 해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 내 몸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결론에 아주 돌고 돌아 어렵게도 이르렀다.









References.

1. 여성 호르몬의 진실 (What your doctor may not tell you about menopause), John R.Lee 지음

2. 질의 응답, 니나브로크만, 엘렌 스퇴켄 달 지음

3. 엄청나게 시끄럽고 지독하게 위태로운 나의 자궁, 에비 노먼 지음

4. 닥터 페미니스트 여자의 몸을 말하다. 문현주 지음

5. 여자가 우유를 끊어야 하는 이유. 제인 플랜트 지음

6.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조한진희 지음

7. 치유와 억압의 집. 여성병원의 탄생. 디어드러 쿠퍼 오언스 지음

8. Grosse H, Hohlbein R, Suffert D, Feiste V. Cancer hazards in females with uterine myoma. [Article in German]. Zentralbl Gynakol. 1978; 100:642–9.

9. Lindegård B. Breast cancer among women from Gothenburg with regard to age, mortality and coexisting benign breast disease or leiomyoma uteri. Oncology. 1990; 47:369−75.

10. Chuang SC, Wu GJ, Lu YS, Lin CH, Hsiung CA. Associations between medical conditions and breast cancer risk in Asians: a nationwide population-based study in Taiwan. PLoS One. 2015; 10:e0143410.

11. Lee MS, et al. Uterine Fibroids Increase the Risk of Thyroid Cancer. Int J Environ Res Public Health. 2020 May 28;17(11):3821. doi: 10.3390/ijerph17113821.

12. Johannes Ott. et al. Overt hypothyroidism is associated with the presence of uterine leiomyoma: a retrospective analysis. Eur J Obstet Gynecol Reprod Biol. 2014 Jun;177:19-22. doi: 10.1016/j.ejogrb.2014.03.003. Epub 2014 Mar 13.

13. Saisai Li, et al. Relationship between thyroid disorders and uterine €broids among reproductive-age women. doi:10.1507/endocrj.EJ20-0340

14. Chuang S-C, Wu G-J, Lu Y-S, Lin C-H, Hsiung CA (2015) Associations between Medical Conditions and Breast Cancer Risk in Asians: A Nationwide Population-Based Study in Taiwan. PLoS ONE 10(11): e0143410. https://doi.org/10.1371/journal.pone.0143410

15. Shen TC, Hsia TC, Hsiao CL, et al. Patients with uterine leiomyoma exhibit a high incidence but low mortality rate for breast cancer. Oncotarget. 2017;8(20):33014-33023. doi:10.18632/oncotarget.16520





        

이전 17화 착륙하는 법을 알고 있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