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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Aug 24. 2021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들

나는낯선 사람들로부터위로를 받았다.

<비포 선라이즈>의 두 주인공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다. 부부싸움을 하는 커플을 피해 기차 안의 식당칸으로 옮겨 이야기를 시작한다. 처음 만난 남녀가 나눈 대화였지만 주제가 다양하고 심도 깊었다. 마당의 수도 호스로 장난을 치다 무지개 사이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본다는 이야기, 매일 죽음을 두려워해서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둘은 서로를 알아갔다. 결국 제시와 줄리는 기차에서 같이 내려 하룻밤을 보낸다. 둘이 처음 만나 헤어지기까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는 서로의 과거 이야기이기도, 새로운 도시에서 본 어떤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같이 경험한 어떤 이벤트이기도, 갑자기 생각난 어떤 감정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매일같이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부모님보다 처음 기차에서 만난 서로에게 더 많은 이야기들을 더 솔직하게 했을 것이다. 제시와 줄리는 결국 아이 문제로 격렬한 부부싸움을 하다 칼로 물을 베듯 다시 화해하는 <비포 미드나잇>의 중년 부부가 되었다. 


일을 하다 만난 사람들이 나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쏟아냈던 적이 종종 있었다. 내가 물어본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있었던 일들 정도였지만, 답변하는 사람들은 그때 가족들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했으며, 얼마나 배신감에 치를 떨었는지, 또는 얼마나 미안한 감정을 느꼈는지와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아마도 그들이 처음 보는 나에게까지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는 이유는 내가 진지하게 들어주고 판단 없이 맞장구를 쳐주다 적당히 공감하고 결국에는 다시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일 것이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Rubin이 처음 기술한 이 심리학 용어는, 전혀 모르는 낯선 인물에게 자신의 깊은 속마음이나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설명한다. 핵심은 나의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이후에도 모를 사람들에 대해 털어놓는다는 것. 이는 대답이나 조언을 기대하지 않는 독백이라는 것이다.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에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은 나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편견이나 판단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이런 목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판단이나 편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이 이야기가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없다는 신뢰가 주는 안전함은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술술 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두 번의 연이은 수술은 내가 이방인을 찾는 계기가 됐다. 첫 수술 후에 나는 일상으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두 번째 수술을 받고 나서 나는 모든 것을 멈추지 않으면 안 된 다는 것을 알았다. 몸은 금방 회복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묻어두었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터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넘어갔다가는 큰 후폭풍을 맞을 것이라는 걸 직감으로 알고 있었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라는 몸의 신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니던 직장을 아무 대책 없이 그만뒀고, 친구들의 연락도 대충 다 나으면 보자는 식으로 뭉개버렸다. 그동안 나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이 나를 지탱하던 것이었는지, 아니면 흔들리는 나를 더 흔들고 있었던 바람이었는지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됐다. 무엇보다 지칠 대로 지쳐버려 펑 터져버린 타이어 같은 몸과 정신을 가지고 출세한 친구의 친구 이야기를 듣거나, 알고 보니 행복해 보이는 결혼생활이 다 가식인 것 같다는 남 이야기를 듣거나, 다이어트나 성형수술 이야기, 연예인 커플의 이혼사유가 누구의 귀책이냐는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 싫었다.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됐다. 가족과 소수의 친구들만 남았다. 그때 나는 팟캐스트 <비혼세>의 청취자 모임 <한줌단>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입원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시간은 더디갔다. 오빠와는 할 얘기가 많지 않았고, TV를 보는 것은 더욱 싫었다. 가져온 책은 한 권뿐이라, 금세 다 읽어버렸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틀어도 다 지겹게만 느껴졌다. 인스타그램에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물건을 사는 이야기들이 타임라인을 타고 넘쳐흘렀다. 트위터를 켜면 혐오범죄에 대한 분노와 지구 멸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간호사 선생님이 하루에 여덟 번씩 주사를 놓으러 왔다. 내 혈관은 오랜 빈혈치료로 인해 약해질 데로 약해져 있었는데, 잡히지 않는 정맥을 억지로 잡아 바늘을 찔러두니 통증으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나는 그냥 발에다 주사를 놓아주면 안 되겠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화장실을 오갈 때 힘들 것이라고 했다. 별 것 아닌 주사 맞는 일에 이렇게 아프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 지겨워 나는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내 혈관이 약한 것이 본인의 탓인 양 연신 난처해하며 사과를 했다. 특히 밤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주사를 놓으러 오시면, 그 고요함 속에서 진땀 흘리는 소리가 다 들리는 듯했다. 


잠이 오지 않으니 밤새 팟캐스트를 들었다. 멍하니 누워 그동안 구독해두고 미뤄둔 팟캐스트를 하나씩 찾아들었다. 김하나 작가가 진행하는 <책읽아웃>편들을 듣고,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을 들었다. <듣똑라>를 듣다가 <큰일여>를 듣고, 이반지하님이 나오는 <영노자>편들을 다시 듣기도 했다. 그러다 <비혼세>를 다시 들었다.  작년 12월쯤부터 듣기 시작한 <비혼세>는 곽민지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다. 아주 크게 성공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혼자 사는 여성이 잘 사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방송이라고 해서 듣기 시작했다. 물론 비혼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지만, 가끔 망한 구연애 이야기나 가족 이야기, 밥 잘해먹는 이야기, 좋아하는 아이돌 이야기 등 주제를 가리지 않는다. 방송작가 출신이셔서 그런지 프로의 향기가 물씬 나기도 하고, 워낙 조리 있게 말을 잘 하시니 듣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 그간 아침을 차리면서 주로 방송을 듣느라 흘려들었던 편 들 중 재미있다고 소문난 에피소드들을 다시 들었다. 새벽 2시, 5시에 주사를 놓으러 오신 간호사 선생님들은 내가 침대 위에 누워 혼자 슬며시 웃고 있는 모습에 당황하시기도 했다. 


수술을 받기 일주일 전쯤 대화방에서 자궁근종 이야기가 나와서 '저도 곧 수술받아요. 얼른 끝났으면 좋겠어요. 이제 생리를 안 한다 야호!'라고 가볍게 메시지를 남겼었다. 정말 친한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자궁적출 수술을 받는다는 얘기도 한 적이 없었고,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수술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었다. 그랬던 내가 얼굴도, 신원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에게 수술 사실을 털어놓고 있는 것이 어이없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은 상상 이상의 위로를 했었다. 수술이 잘 될 것이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들, 수술 후 훨씬 더 건강하게 잘 살 것이니 잘 되었다는 이야기, 수술, 입원과정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꼭 털어놓으라는 이야기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이 수술 같은 일을 맞닥드렸을 때 얼마나 당황스럽고 힘든지에 대한 공감들이 오갔다. 별 기대 없이 던진 말에 많은 위로가 쏟아진 것도 어색하고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억으로 나는 다시 카톡방에 글을 남겼다. 

"저 수술 잘 끝나고, 회복 중이에요."

모르는 사람이 흘리듯 말한 이야기를 누가 기억이나 하겠나 싶으면서도, 한 명이라도 기억해주면 좋겠다는 이상한 기대를 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궁금하던 차였어요. 수술은 잘 끝났어요?"

갑자기 또 위로가 이어졌다. 어디서 말 예쁘게 하는 법들을 다 배우고 다니는 모양인지, 더하고 뺄 것도 없는 적절한 위로의 말들이 쏟아졌다. 참 이상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익명으로 소통하는 공간. 모두 다른 생각과 다른 삶의 지향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분위기였다. '비혼의 삶'을 지지한다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지점들이 많았다. 무슨 말을 해도 응원을 해주고, 무엇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매일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뭔가를 배우면서 사는 사람들이지만 자기가 가진 것을 과시하지 않았고, 무심코 내뱉은 말들에 다른 사람이 상처 받을까 한번 더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앞에서 나는 예민하고 날카로웠던 과거를 회상하며 겸손해졌다. 


수술 후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 끝에 한줌단 안에서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다. 어떤 글이든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 쓴 글들을 보며 응원했다. 그러다 매달 채소 요리를 하는 쿠킹클래스를 하게 됐고, 채식 지향인들을 모은 비건 모임도 만들었다. 내가 만들지 않은 소모임 중에 운동모임, 외국어 공부모임, 무엇이든 공부하는 모임에도 참여했다. 무엇이든 하자고 하면 사람들이 열심히 참여했고, 무엇이든 하자고 하는 사람을 따라 나도 뭐라도 해보려고 했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보며 에너지를 얻고 나른해지기 십상인 백수생활에 긴장도 하게 됐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느슨한 연대'가 이런 건가. 그 많은 사람 중에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된 사람들도, 얼굴을 아는 사람도, 아예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느슨한 연대 안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동력을 얻었다. 뭔지 알 수 없지만 다 조각나고 흩어져 불안했던 마음들이 다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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