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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원동 바히네 Aug 03. 2021

착륙하는 법을 알고 있나요?

When we fall we know how to land

요즘, 특히 아침시간에 BTS의 'Permission to dance'라는 곡을 자주 듣는다. 아미(Army, BTS의 팬덤을 지칭하는 말)가 아니더라도 이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노래를 거부하긴 어렵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인들이 답답함과 우울을 호소하고 있는 데에 청량한 킨사이다를 들이붓는듯한 노래다. 처음 이 곡이 발표된 날 귀에 확 꽂히는 가사 한 줄이 있었다. 


We don't need to worry, 'Cause when we fall we know how to land.
(걱정할 필요 없어, 왜냐하면 우리는 떨어지더라도 착륙하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지 6개월이 넘었다. 그 사이 예상하지 못한 응급수술을 한번 더 받게 됐지만, 자궁적출 수술을 기점으로 내 삶은 괜찮은지를 돌아보고 있다. 나는 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면 괜찮은 척하느라 애쓰고 있는 걸까? 나는 잘 착륙한 것일까? 나는 떨어질 때 내가 잘 착륙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엉겁결에 잘 착륙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 떨어지는 중인 걸까? 


두 번의 수술이 모두 끝나고 난 뒤 거의 4주는 누워서 지냈다. 가끔 한강을 걷기 시작한 것은 4주 차가 지나서부터였다. 6주 차가 지날 때쯤 매일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었고,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했다. 내 삶의 질을 갉아먹던 악성빈혈이 사라지고, 더 이상 일주일이 넘게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생리를 하지 않으니 이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편두통이 사라지고 짜증도 함께 사라졌다. 나를 괴롭혀왔던 것들을 제거하는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고 내 삶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대부분의 것들도 모두 제거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됐다. 매일 몸에 좋은 것들을 스스로 챙겨 먹고, 운동을 하고, 사람 만나는 횟수를 대폭 줄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니 마음이 불안할 틈이 없었다. 섹스 라이프를 정상화하는 데에는 조금 용기가 필요했지만, 결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는 앞으로도 괜찮을 것인가? 지금처럼 이렇게만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한다면, 앞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을까? 의사가 말해주지 않은 수술 후 나의 삶은 어떨지 몹시 궁금해졌다. 손에 잡히는 대로 호르몬과 관련한 책들을 읽고, 논문을 찾아봤다. 그러다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삶의 질 평가, 우울증/우울감과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거나,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들을 분석한 결과들을 주로 살펴봤다. 연구가 많지 않았고, 그마저 최근 연구는 정말 드물었다.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의 결과가 상반되는 것들도 많아, 한 문장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였다. 수술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우울은 살짝 증가하는 추세, 불안은 유효하게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는 결론도 있었다. 수술 자체에 불안감을 느끼다가 회복 후 불안이 줄어드는 것으로 보이고, 우울이 증가하는 이유는 자아정체성의 변화와 상실감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가장 최근의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에 참여한 자궁적출을 받은 사람 전체가 자평하는 삶의 질은 수술을 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낮았고, 상실감이나 자아존중감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각 요소들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면, 상실감, 여성성, 신체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답변한 사람이 자아존중감도 낮게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생활 만족도 부분에 있어서 변화가 없다는 결론도 많았지만,  불만족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 연구들도 있었다. 성생활 만족도를 결정짓는 요인은 남편의 지지가 가장 큰 요인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이어서 의료진으로부터 성생활에 대한 교육 여부, 수술 이전에 생식기에 대한 기초지식이 풍부했던 경우 수술 후의 성생활은 긍정적이거나 변화가 없는 경향을 보이는 듯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찾아볼 수 없었기에, 나는 스스로의 연구 관찰 대상이 되기로 했다. 


이쯤 되자 다른 나라는 어떤지가 궁금해졌다.  미국의 경우 수술 후 3개월 지점에서 우울감에 대한 변화가 수술을 받은 군과 받지 않은 군에서 차이가 없었다. 답변자 중 우울감에 변화가 있는 경우는 수술 결과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기 때문은 것으로 분석됐다. 오히려 수술 후 삶의 질과 성생활 만족도가 더 높아졌다는 연구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집트와 같은 아랍국가에서는 삶의 질이 매우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으며, 중국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연구들에서도 아랍, 아시아 문화권에서 여성의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아이를 낳는 것'으로 구분 지어지는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 있었다. 구글에 '자궁적출 후 섹스 라이프'를 영어로 검색하면, 'never better(이보다 좋을 수 없다)'부터 시작해서 긍정적 연구와 인증이 흘러넘친다. 참 미국답다 생각하면서, 우리나라나 아랍문화권과 결과의 차이가 뚜렷한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자궁적출 수술 이후의 삶의 만족도는 처한 문화적 배경, 배우자의 지지, 의료인의 교육, 그리고 수술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여성상에 대한 인식과 자의식에 따라 달라지는 듯했다. 대부분의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나이가 40대 후반-50대 초반이었던 것, 그리고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상태였다는 점에서 나에게 바로 대입을 시켜볼 사례는 없었다. 하지만 여러 나라의 각기 다른 연구들을 보고 나니, 뭔가 머릿속을 스치는 결론이 내려지는 듯도 했다. 결국 자궁근종 수술 이후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도, 수술을 하지 않은 경우 삶의 질을 좌우하는 것도 나라는 주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지, 그리고 관계들 속에서 내 주체성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았다. 의사가 수술을 결정하고 통보하는 식이 아니라 수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개입했는지, 사전에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 내 주변에 나를 지지해줄 사람들이 있는지, 남편이 있다면 건강과 성생활에 대해 얼마나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이인지 등이 수술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요소들이라는데, 나는 여기서 수술을 덜어내더라도 그 공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의 여성성은 무엇인지, 어떻게 표출되는 것인지, 내가 생각하는 여성의 상징과 의미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비혼, 무자녀의 삶을 택한 터라 가임력이 나 스스로가 여성임을 확신하게 하는 요소가 되지 못했다. 수술 후 삶에 대한 연구의 대다수가 남편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들의 삶의 질이 남편이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보면서 '내가 남편이 없어서 오히려 편향이나 편견 없이 수술 이후의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나를 지켜보던 지인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그게 나이기 때문에 그냥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또 잘 착륙한 것 같다. 어떻게 착륙할지 안다는 것, 그것만큼 사는데 필요한 레슨이 있을까. 20대에 비해 30대의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을 꼽으라면, 언제까지 떨어질 어질지 모르지만 언젠가 착륙을 어떻게든 할 것이라는 걸 아는 것이 아닐까. 


References. 

1. 김영란, 자궁절제술을 받은 여성의 삶의 질과 사회적 서비스 지원, 2010, 한국사회복지학 제15권 4호

2. 박영숙.안영란. 자궁절제술 후 우울 및 관련 요인. 2000, 대한간호학회지, 30(3), 701-719. 

3. 곽영희 외, 자궁적출술 전후 정신, 신체적 변화, 1987, 대한산부인과학회지

4. 고효정 외, 자궁적출술을 받은 중년기 여성의 성생활 만족과 배우자 지지에 관한 연구, 한국모자보건학회지 제8권 제1호(2004년 1월)

5. 김숙남 외, 자궁절제술 여성의 삶의 질 영향요인, 1999, 여성건강간호학회,수록지정보 : KJWHN(여성건강간호학회지) / 4권 2호

5. CORREA-OCHOA, José Luis et al. Impact on quality of life and sexual satisfaction of total abdominal hysterectomy and vaginal hysterectomy in the absence of prolapse. Cohort study, Medellín, 2015. Rev Colomb Obstet Ginecol [online]. 2017, vol.68, n.1, pp.12-24. ISSN 0034-7434

6. X Q Wang 1 et al. Anxiety, depression and coping strategies in post-hysterectomy Chinese women prior to discharge, 2007 Sep;54(3):271-9. 

7. Wallace K et al. Comparative effectiveness of hysterectomy versus myomectomy on 1-year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in women with uterine fibroids.. Fertil Steril. 2020; 113618-626

8. https://www.winchesterhospital.org/health-library/article?id=14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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