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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아니 자주 현타가 옵니다.

제로웨이스트... 이게 맞는 거야? 싶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에요.

by 망원동 바히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삶, 무해한 삶, 지구를 사랑하는 삶에 대해 깊이 고민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채식을 하면서도 환경문제는 나의 마지막 관심사였다. 나는 내 몸 건강하자고 채식을 시작했는데, 이 선택이 동물들을 죽이지 않아도 되고,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니 그저 뿌듯한 정도였을까? 툰베리의 경고를 보면서도, 지구 곳곳에서 산불이 나는 것을 보면서도 쓰레기를 진짜 많이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그룹에 나를 끼워 넣지 않았던 것 같다. 지구환경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강력한 실천인 채식에 일단 발을 걸쳤으니, 적당히 나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진 것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채식을 다시 해보기로 마음먹고 든든한 지원자들을 모집하여 모임을 만들었고 채식 지향의 이유가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 건강을 위해서, 동물권을 위해서, 그리고 환경을 위해서 채식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매일 먹은 것들을 공유하고 서로의 채식 지향을 응원하고 있다. 비난이나 지적은 없고 응원만 있는 안전한 공간이 생긴 지 70일이 넘어간다. 나는 이곳에서 나누는 대화들을 통해 쓰레기를 줄여보자는 결심을 하게 됐다. 특별한 계기가 된 대화는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환경을 위해 채식 지향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똑 부러지게 쓰레기를 최소로 생산하고 물건을 중고로 팔고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자극을 받았다.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것은 키친타월과 물티슈를 줄이는 일이었다. 집에 손님이 자주 오는 편이고, 파티를 하는 날엔 꼭 키친타월의 사용이 많아졌다. 걸레를 빨아 널지 않아도 되는 획기적인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물티슈는 청소 시 가볍게 먼지를 닦아낼 때마다 썼다. 물티슈는 몸에도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고, 키친타월의 사용은 완전히 없애긴 어렵지만 상당 부분을 집에 쌓여있는 키친 크로스와 행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통 키친타월은 그릇의 물기를 당장 없애야 하는데 깨끗한 키친 크로스가 준비돼 있지 않을 때나, 채소나 과일을 씻어 냉장 보관할 때 많이 썼었다. 형광표백제가 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먼지가 묻어나는 키친타월이 몸에 얼마나 무해할지 알 수 없는 부분도 한몫했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쓴 키친타월과 물티슈의 양은 엄청나게 줄었다. 그간 물티슈는 한 장도 쓰지 않았고, 키친타월은 기존에 비해 1/4 정도로 사용량이 줄어든 것 같다. 키친타월 사용을 더 줄이기 위해서는 늘 깨끗하게 소독된 키친 크로스가 준비돼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날들이 있었다. 그리고 기름을 많이 쓴 요리 후 설거지를 하기 전 기름기를 닦아내는 것도 아직은 키친타월을 쓰고 있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점에서 꽤 뿌듯하다. 문제는 다 쓴 행주와 키친 크로스를 삶는 일이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냄비에 세제를 넣고 삶았다가 다시 헹구고 햇볕에 말렸다가 차곡히 개어서 넣는 일이 생각보다 몹시도 귀찮았다. 보통은 일요일 오후 한 주를 마무리하며 주방을 청소하면서 같이 행주도 삶았는데, 냄비에 물만 올리면 되는 이 작은 일이 더해진 것만으로도 귀찮게 느껴지는 것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밥을 차려먹고, 먹고 난 뒤 설거지와 주방 청소를 하는 일을 요즘은 명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술 이후 식단을 바꾸면서 하루 세끼 먹는 일에 더 의미를 두게 됐고, 장을 보고 음식을 차려내고 맛있게 먹고, 이후에 주방 청소를 하는 일까지가 나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려 애쓴다. 행주 삶기도 그런 과정에 속하지만, 여전히 귀찮은 일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평생 물티슈를 돈 주고 사본일이 없고, 매일 저녁엔 주방에서 행주 삶는 냄새가 나던 엄마의 주방에 얼마나 많은 귀찮음과 노고가 녹아들었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다 하고 나면 잠시 뿌듯한데, 대부분의 시간은 몹시 귀찮다. 뿌듯함이 좀 더 이어지도록 SNS에도 올리고, 브런치에도 올려야지.


또 하나의 도전은 대체 유제품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유제품을 끊고 나서 귀리 우유를 주로 먹고, 가끔 두유를 사 먹었다. 주로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거나, 내부가 코팅된 종이팩에 들어있는 제품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귀리 우유는 수입제품인 경우가 많고 가격이 비싸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해외 비건들이 귀리 우유를 몹시도 쉽게 만들어 먹는 영상을 보게 됐고, 그 이후로 오트밀을 이용해 집에서 귀리 우유를 만들어 먹고 있다. 물에 오트밀을 넣고 소금이나 메이플 시럽을 입맛에 맞게 넣은 다음 갈아내고, 고운 천에 거르기만 하면 된다. 시판 제품에 비해 입자가 크고 귀리와 물이 분리되는 현상이 있지만,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착즙기로 두유를 만들어 먹는 영상을 보게 됐다. 만든 두유를 굳혀 두부를 만들기도 하고 발효시켜 비건 요구르트를 만들어 먹기도 하는 앞서가는 사람들! 무엇보다 내 끓어오르는 호기심이 착즙기 구매를 망설이지 못하게 했다. 당장 중고거래로 착즙기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자전거에 싣고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탔다.

'이 돈 주고 이 주방기기를 구매하고, 무려 택시까지 타고 오는 것이 과연 귀리 우유를 사 먹는 것보다 나은 선택인가?'

이미 내 손에 착즙기는 들려 있었지만, 택시 안에서 오만 생각이 다 났다.

'한, 두 번 쓰고 안 쓰면 어쩌지. 작은 쓰레기 면하려다 대형 쓰레기를 생산해버린 것이면 어쩌지.'

틀린 얘기도 아니었다.

'그럼 나도 다시 중고사이트에 팔면 되지 뭐!'

자기 합리화는 착즙기 구매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일어났다.


생협에서 국산 유기농 백태를 구매했다. 사 먹는 두유는 정말 저렴한 것이구나. GMO가 아니라 하더라도 미국산 콩을 먹는 것이 맞는지 고민하던 차였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콩 가격 때문에라도 일어나지 않을 '집에서 두유 만들어 먹기' 프로젝트다. 하룻밤 불린 백태를 착즙기로 착즙하고 콩물을 냄비에 20분 정도 끓여 내면 두유가 완성된다. 물을 좀 덜 넣어서 그런지 농도가 매우 짙고 고소했다. 따뜻하게 마시니 부드러운 식감이 입 전체에 퍼졌다.

35세에 만난 최애 장난감


귀리 우유는 커피와, 짜이는 두유와 더 잘 어울린다고 주장해 오던 바. 이 김에 짜이를 끓이기로 했다. 집에 있던 팔각, 정향, 넛맥, 시나몬, 흑후추, 카다멈, 생강을 마른 팬에 넣고 볶다가 꺼내 빻아준다. 다시 냄비에 넣고 물을 부어 끓인 다음 홍차를 우려내 기본 베이스를 만든다. 마스코바도와 몰라시스를 한 스푼씩 넣어 당도를 맞췄다. 밀크 포머(그렇다. 구 맥시멀 리스트 현 채식 지향인에게 밀크 포머는 당연히 있는 아이템...)에 두유를 넣어 데운 뒤 짜이 베이스와 섞었다. 근사했다. 정말 근사한 짜이였다.

다 좋아하는 향신료지만, 카다멈이 꼭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홈메이드 두유의 정수는 비지에 있다. 착즙기 뒤편으로 콩물을 짜고 남은 건더기가 차곡히 쌓여있다. 이것이 바로 비지인 셈! 500g의 콩을 짰더니 꽤 많은 양의 비지가 생겼다. 소분해서 냉동 보관해 두고, 엄마의 묵은지와 함께 자주 끓여먹고 있다. 들기름에 된장을 조금 볶다가 씻은 묵은지를 같이 볶고, 채수를 넣어 푹 끓이다가 비지와 함께 익히면 완성이다. 매우 쉬운 요리지만 매번 만족감을 준다. 특히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엔 어김없이 생각난다. 먹고 나면 속이 따뜻하고 든든하다. '이 비지 때문에라도 두유를 또 짜겠군'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갈진 모르겠지만.

요즘 최애 반찬은 비지찌개다. 찌개 형태로 끓일 때도 있고, 묵은지 볶음 정도로 만들 때도 있다. 어쨌든 살짝 밍밍한 채식 반찬에 고소함을 더해주는 고마운 재료다.


택배와 새벽 배송을 거의 안 하다시피 줄이고, 키친타월과 물티슈를 줄이고, 집에서 음료를 만들어 먹은 한 달. 정말 쓰레기를 내놓으러 가는 횟수와 양이 혁신적으로 줄었다. 과장을 좀 보태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5층에서 매번 무겁게 쓰레기를 가지고 내려가며 스트레스를 받았던 날들이 아련할 지경이다. 한편으로는 '지금이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지'라는 생각에 불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중에 이렇게 못하면 어떡하지? 또 매번 택배 쓰레기를 아슬아슬 짊어지고 내려가는 스스로에게 화가 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올라올 때도 있다. 다행히도 쉬는 동안 불완전함을 따뜻하게 보듬는 능력치가 생겼다는 점을 떠올려 본다. 다만 한 달이라도 이런 노력을 했던 나를 칭찬하고, 그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실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믿어본다. 흔들릴 때 나를 지지해줄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든든하다.

채식모임을 하는 친구들과 집에서 채식타코 파티를 했다. 타코는 사실 시즈닝 맛. 시즈닝을 만드는 것 부터 하고 싶었지만, 다음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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