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았다 뜨니 좋은 날씨가 사라져 간다는 게 당황스럽긴 하지만...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오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 청명하고 맑은 날이 며칠 가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제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이 깨끗하고 코끝의 공기는 선명하게 스치는 기분 좋은 날씨는 안타깝게도 고작 한 달이 채 안되게 주어진다. 정신을 차리고 부지런히 날씨를 알아채지 않으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고 없을게 분명하다. 기온이 비슷하더라도 봄 보다 가을에 마음이 더 분주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 무렵, 부모님이 시골로 귀향해 농사를 짓는 친구의 집에 방문했었다. 정말 별다른 게 있는 곳은 아니지만, 또 별다른 게 아무것도 없어서 자꾸 그리운 곳이다. 논에 벼가 있고, 친구네 집엔 검은 강아지가 있고, 동네에는 큰 감나무가 있는 곳. 그리고 처음 보는 우리를 그저 반갑게 맞아주시는 친구 부모님이 계시는 곳으로 다시 갔다.
가을 시골의 방문 목적은 밤을 따는 것이었다. 이맘때쯤 운이 좋으면 왕밤도 주울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간 날에 왕밤은 없었다. 도토리만한 밤들을 겨우 주웠다. 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얼마나 큰 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밤을 주우러 올라간 야트막한 뒷산은 소담했고, 떨어진 밤송이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뒤집어 보면서 웃고 떠든 기억만 남았다.
바베큐에 꼭 고기가 필요한 건 아니더라.
작은 밤알들은 집으로 가져가기 위해 따로 챙겨두고, 며칠 숙성을 시켜둔 꽤 큼직한 밤은 숯불에 구워 먹기로 했다. 멀쩡한 집에 편안한 테이블과 의자를 마다하고 마당에 쪼그려 앉아 숯에 불을 붙였다. 노루궁뎅이버섯과 참송이버섯을 올리고, 컬리플라워도 한 구석에 구웠다. 가래떡과 귤도 불에 올렸다. 밭에서 파 몇 뿌리를 뽑아 같이 올렸다. 집에서 준비해 간 잣 소금과 비건 파마산 치즈, 타코 시즈닝을 곁들였다. 구운 버섯은 당연히 너무 맛있고, 컬리플라워도 원래 구우면 제일 맛있으니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겉은 바삭하고 안은 쭉 늘어나는 가래떡구이는 아는 맛이지만 예상보다도 더 쫀득하고 맛있었다. 타닥타닥 밤을 구웠다. 한편에는 귤을 올렸다. 껍질이 까맣게 탄 귤은 잠깐 식혔다가 껍질을 까고 먹는다. 따뜻해진 귤은 굽지 않을 때 보다 더 달고 농익은 맛이 난다. 친구가 가져온 오렌지 와인을 한 병 곁들였다. 굳이 챙겨간 큰 블루투스 스피커로 20세기 음악들을 들었다. 아직 남은 여름의 열기와 은근히 타고 있는 숯불과 오렌지 와인이 합쳐져 나른하게 취했다. 고기를 포함한 동물성 재료를 쓰지 않고도 배 부르고 만족스러운 바베큐였다.
"누가 알았겠어. 고기 없는 바베큐가 이렇게 만족스러울 줄."
제로 웨이스트가 곧 미니멀리즘은 아니더라.
더 추워지기 전에 한강 피크닉을 했다. 사람이 많은 잔디밭을 피해, 인적이 드문 강둑에 앉았다. 물티슈 하나도 쓰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제로 웨이스트' 피크닉을 했다. 먹을거리들은 집에서 싸오고, 키친 크로스나 손수건을 챙겼다. 일회용 수저 대신 가벼운 도시락용 식기를 챙겼고, 음료를 마실 잔도 모두 집에서 챙겨 나왔다. 천천히 싸온 것들을 먹고 마시며 함께 음악을 들었다. 같이 피크닉을 한 친구가 내가 알려준 레시피로 음식을 준비해왔고, 나는 시골에서 가져온 과일과 이웃주민이 선물한 당근 라페를 챙겨갔다.
"내가 안 한 음식은 다 맛있다."
늘 나서서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이는 것이 큰 기쁨이지만, 또 어떤 날은 남이 해주는 음식이 뭐가 됐든 제일 맛있다. 펼친 돗자리 위에 누워 구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구경했다. 노을이 지는 것을 한참 구경하다 집으로 가기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와인병 하나만 버리면 될 정도의 훌륭한 피크닉이었다.
"왜 집에 가는 길에 이렇게 손이 무겁지?"
"매번 배달음식을 시켜서 먹고, 일회용기를 다 버리고 가서 이렇게 무겁게 돌아간 적은 처음이야."
어색한 제로 웨이스트 피크닉. 마음은 몹시도 가볍지만 그렇다고 꼭 손이 가벼운 건 아니었다.
"근데, 제로 웨이스트는 원래 미니멀리즘 아닌가?"
맥시멀 한 사람은 제로 웨이스트 피크닉도 맥시멀 하게 한다. 그놈의 '감성'이 문제다. 그렇다고 감성적이지 않은 피크닉은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강을 코앞에 두고 살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사치다.
채식한다고 외롭지 말아요.
대부분 시간에 집에 있는 나와 달리 회사를 다니면서 채식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각종 어려움에 처한다. 나도 수년 전 열심히 채식 지향을 하다 결정적으로 그만두게 된 이유는 그놈의 '사회생활' 때문이었다. 혼자서 곧잘 도시락을 먹기는 했지만, 부서 회식을 매번 마다할 용기는 없었다. 점심 미팅으로 도시락을 주문할 때 비건 옵션이 있는 도시락집은 거의 없었다. 채식 메뉴를 주장할 수 있었겠지만, 뒤따라져 나오는 설명을 요구하는 '권력'에 지레 지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업무 스트레스는 쌓여갔고, 달리 풀 줄을 몰라 매번 과한 음식에 술을 마셨다. 주말엔 지쳐 다음 주를 준비하지 못한 채 늘어져 잠을 자기 바빴다.
채식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외로운 채식 지향인들이 많다. 날씨도 좋은데, 점심메뉴 고르다가 상처 받지 말고 나와 도시락을 먹자고 청했다. 화려한 메뉴는 아니지만 집에 있던 야채들로 도시락을 쌌다. 반찬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솥밥을 짓고, 들깨 미역국을 끓였다. 묵은지를 씻어 들기름에 볶고 비지를 넣어 푹 익혔다. 간단한 도시락을 싸서 지인의 회사 앞으로 갔다. 서울식물원 앞 공원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준비성이 철저하고 다정한 사람은 손수건을 세 개쯤 들고 나왔다. 벤치에도 깔고, 냅킨 대신 하나씩 쓰기도 하려고 준비했다고 했다. 그중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손수건은 마음에 들면 가지고 가라고 내밀었다.
"어머, 그래도 돼요?"
마다하지 않고 받아왔다. 아무리 제로 웨이스트를 지향해도 맥시멀리스트가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던 2년이었다. 좁은 식당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기도, 그렇다고 밖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어느 하나 마음 편하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잠깐 반짝하고 스쳐 지나가는 맑은 날들을 잡아두고 싶어도 여의치 않은 날들도 많았다. 코로나도 조심, 쓰레기도 조심하면서도 반짝 맑고 깨끗한 날을 충분히 즐긴 2021년 가을이었다. 밖에서 먹으면 뭐든 맛있고,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동물을 먹지 않아도 충분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손은 무거워도 마음은 가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