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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브에 청국장을 먹었다.

배앓이에 청국장과 된장국

by 망원동 바히네

안 먹던 과자를 먹어서인지 추워진 날씨에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그런지 속이 부글거리던 한 주를 보냈다. 한 번 성이난 속은 좀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나는 방귀대장 뿡뿡이가 되어버렸다. 배에 가스가 차고 이를 배출하는 것은 몹시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속이 부글거리면서 빵빵하게 차오르는 정도의 불편감이었다. 이렇게 속이 부글거리는 경험은 몹시도 오랜만이었다. 기름진 음식과 음주, 배달음식을 포함한 자극적인 음식을 주로 먹었던 때에는 언제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었다. 그때는 내 장 안의 환경이 어떤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하루 한 번 배설을 했으니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었다.


채식에 대한 공부를 하며 '제로 콜라 한 캔을 마셨을 때 장내 유익균이 절반으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은 장에서 좋지 않은 미생물이 잘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데, 그중에서도 '제로콜라'처럼 설탕 대체 감미료를 쓰는 것들은 장내 미생물 환경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장은 섭취된 음식에서 영양을 섭취하기도 하고 몸속의 남은 음식 등을 배출하는 본래의 역할뿐 아니라, 피부와 뇌와도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장이 건강하지 못하면 피부가 망가지는 것은 물론, 우울감이 오는 등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다.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쯤 되면 내 장이 편안한지, 유익균과 유해균의 비율이 적절하게 잘 구성이 되어 있는지, 섭취한 음식에서 영양을 잘 흡수하고 있는지, 매일 아침 안부라도 물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 코로나로 인해 외식에 제한이 있지만 여전히 다들 들떠있는 분위기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집에서 작게 홈파티를 하기로 했고, 이브날 저녁에는 공연을 예약해둔 터라 저녁을 길게 먹기도 애매했다. 공연장 근처에서 간단히 간식처럼 먹고 공연을 보려던 차, 애인이 '청국장'을 제안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저녁 메뉴로 청국장이라니.

"자기 속 편하라고."

마주 앉아 2인분의 청국장을 받아 들었다. 청국장과 순두부만 파는, 청국장으로 나름 유명한 식당이었다. 큼지막하게 썬 두부가 잔뜩 들어있는 펄펄 끓는 청국장. 밥 위에 국물과 두부를 자작하게 얹어 먹었다. 부들부들한 두부가 뜨겁고 구수한 국물과 함께 입안으로 들어왔다. 영하 15도의 추위가 녹아내리는 맛이었다.

"뭐야, 맛있어!"

엄마가 청국장을 좋아하지 않은 탓에 나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청국장을 처음 먹어봤다. 그 이후로도 자발적으로 찾지 않는 메뉴였다. 누가 만들어주거나 청국장을 권하면 맛있게 먹었지만, 어릴 때 먹고 자라지 않은 음식은 어쩐지 잘 찾지 않게 된다. 서른다섯, 크리스마스이브에 청국장을 먹게 될 줄 누가 알았던가! 그리고 그 청국장이 이렇게 맛있다니!


다음날 아침 일주일 내내 불편하던 속이 말도 안 되게 편해졌다. 부글부글 거리던 장이 다들 조용히 할 일을 했다. 아니, 청국장 한 끼 먹었다고 이렇게 된다고? 속이 불편할 때 맑은 된장국을 끓여 먹어도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았지만, 청국장의 효과는 확실히 다른 차원이었다.

대충 90퍼센트 정도 비건식으로 차려낸 크리스마스 점저. 남은 파스타는 다음날 토마토소스 오븐파스타가 되었다. 집에서 먹는게 재료낭비가 가장 적다.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다시 혼자 집에 조용히 남았다. 채수를 내고 된장을 풀고, 냉이에 생콩가루를 묻혀 넣고 한소끔 끓였다. 생콩가루를 된장국에 넣는 생각은 누가 한 것일까? 두부를 넣는 것보다 국물이 더 고소하고 걸쭉해진다. 단백질과 이소플라본 같은 영양도 더해진다. 향긋 쌉쌀한 냉이 향에 고소한 콩가루와 구수한 된장국물이 어우러진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밥을 한술 말아먹으면 더 고소하다. 친구가 놀러 오면서 사온 방풍나물을 데쳐 무치고, 미나리와 부추는 유자 당근 라페와 간장을 조금 넣어 무쳤다. 생채소, 익힌 채소, 통곡물과 콩, 밤, 팥을 넣은 밥, 김까지 꺼내 놓으니 마음이 뿌듯해진다.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밥을 먹었다. 내일은 난생처음 내 돈 내산 청국장을 해볼까 생각하며. 고소하고 향긋한 냉이된장국을 한 그릇 비웠다.

크론병을 포함한 염증성 대장질환 환자들의 대변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것에 비해 미세 플라스틱이 훨씬 더 많이 검출됐다고 한다. 주로 생수병이나 음식의 포장용기, 랩 같은 포장재의 성분이 검출된 것이라고. 여러모로 몸에 이로울 것이 없는 것이 플라스틱인 듯하다. 어떤 기전으로 플라스틱이 크론병 같은 장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장내 미생물 환경을 악화시키고 염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던 플라스틱은 몸속에서 호르몬 밸런스를 무너트리는 것뿐 아니라 장 건강까지 망가트리고, 심지어 처치곤란인 존재가 됐다. 플라스틱 섭취를 최소화하려면 배달음식을 끊고 플라스틱 용기의 사용을 멈출 수밖에 없다. 불편하고 귀찮아도 하는 수 없다. 조금 더 편하게 살려고 하다가 인간이 여기까지 온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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