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공개된 축산업계의 뒷 이야기에 대한 다큐멘터리 'Milked' 후기
채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로는 여러 가지겠지만, 채식에 관심이 있다면 넷플릭스에 있는 채식 관련 다큐 한 편쯤은 본 사람이 많다. 축산업계, 패스트푸드 업계, 그리고 의학계가 말하지 않는 육식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몸을 망치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채식으로 운동 효과를 더 극대화한 운동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은 '더 게임 체인저(The game changer)', 축산업계가 소비자에게 밝히지 않는 진실을 밝혀내는 '카우 스피라시(Cow spiracy)', 그리고 남획과 플라스틱 쓰레기 방류로 인해 바다 생명의 위기를 다룬 '씨 스피라시(Sea spiracy)'까지.
나 또한 2018년 처음으로 채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이 다큐들이었다. 1년을 채 넘기지 못한 짧은 채식 실천으로 그쳤고, 작년에 본격적으로 채식을 시작한 뒤로 이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을 반면교사 삼아 남은 일생은 죽은 생명을 먹지 않아 보겠노라 다짐했다. 작년에 다시 채식을 마음먹게 된 것은 육식이 몸에 미치는 영향, 특히 나의 경우 호르몬 질환이나 호르몬 관련 암의 발생에 대한 것을 공부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가장 충격을 주었던 것은 우유와 치즈, 요거트 등의 유제품에 대한 사실이었다.
고기를 즐겨먹지는 않아도 매일 아침 요거트, 그것도 유청을 잔뜩 빼 단단하게 뭉쳐진 그릭요거트를 즐겨 먹었다. 건강식으로 먹어야 하니 그래놀라와 과일을 올려 먹으며 하루를 잘 시작했다고 자부했다. 오전에는 우유를 듬뿍 넣은 고소한 카페라테 한 잔을 먹었다. 저녁은 가볍게 먹겠다며 루꼴라와 토마토를 깔고 그 위에 물소젖으로 만든 부라타 치즈 하나를 얹은 다음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 소금을 올려 먹었다. 120그램 정도 되는 치즈 한 덩어리를 오롯이 혼자 다 먹어도 포만감이 크진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소의 젖이 호르몬 교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실이 이제 비밀리에 문서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서도 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몰랐던 것인가?' 자괴감이 들었지만, 또 그런 것 만도 아니었나 보다. 내 주변에 흰 우유를 즐겨마시는 사람은 별로 없었지만, 치즈버거나 피자, 파마산 치즈를 듬뿍 올린 파스타, 치즈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떡볶이 같은 음식은 모두 좋아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고 결심하면 너나 할 것 없이 그릭요거트를 먼저 찾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였을 것이다.
유제품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로 젖소가 젖을 만들기 위해서는 늘 임신상태여야 하고, 이를 위해 강제로 소에게 성호르몬을 주입하고 인간의 물리적 힘으로 소를 '강간'해 임신을 시킨다는 점이다.(실제로 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작업대를 '강간대'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이때 주입된 호르몬은 소의 생식기관과 유방, 지방세포에 집중적으로 쌓이게 되고 젖을 통해 분출된다. 즉, 온갖 호르몬이 녹여진 우유를 우리가 먹는 셈이다. 억지로 임신을 한 상태의 엄마소는 새끼 송아지를 출산한 뒤 바로 새끼 소와 헤어지게 된다. 새끼 소가 우유를 먹으면, 인간이 먹을 우유가 줄기 때문이다. 축산업의 문제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등에서는 인간이 새끼 소를 억지로 어미소에게서 떼내어 트럭에 싣고 가는, 어미 소가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꼭 포함한다. 경중을 따지기 어렵지만, 어미소를 죽이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빼앗는 고통을 반복적으로 계속 주는 것이 오히려 더 잔인한 것 같다.
두 번째는 우유의 영양성분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호르몬의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우유 자체에 너무 많은 양의 지방, 특히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포함돼있다. 동물성 지방의 과도한 섭취는 심혈관질환, 당뇨병, 암의 발생에 기여한다. 이 우유의 지방만을 곱게 가공한 버터나 치즈, 발효한 우유를 걸러 농도를 높인 그릭요거트에는 지방 함유량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동물성 지방 자체가 주는 문제도 있지만, 호르몬은 '지용성'이라는 점 때문에 첫 번째 이유와 또 이어지는 복합적 문제를 만든다. 유제품 섭취와 유방암 발생, 또는 진행, 재발에 대한 상관관계는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됐다.
세 번째는 소의 젖은 소가 자랄 때 필요한 영양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포유류들이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는 기간 동안 인생에서 가장 큰 폭의 성장을 한다. 때문에 어미의 젖은 그 성장에 필요한 영양을 가장 이상적으로 담고 있게 된다. 인간의 모유는 35%의 지방과 5%의 단백질, 60%의 탄수화물을 포함한다. 이 탄수화물 중 대부분은 락토오스의 형태다. 인간은 태어나 몇 년 동안만 모유를 먹게 되고 이후 젖을 떼고 일반 식사로 전환한다. 모유를 먹는 몇 년 간만 락토오스를 소화할 수 있게 되고 그 이후로는 락토오스의 소화를 할 필요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당불내증'인 이유다. 특히 한국인의 경우 80-100%가 유당불내증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유를 먹어도 소화가 된다고 착각 할 수 있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 '의사에게 물어보세요'의 <먹거리> 편에서 유당불내증을 다룬다. 한 의사가 아침에 플랫화이트(라테보다 우유를 조금 섞은 커피)를 마시고 나면 곧장 배가 부글부글하고 곧 화장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유당불내증 검사를 한다. 역시나 결과는 유당불내증이었다. 그러나 검사를 실시한 의사는 '정도가 심하지 않으니 너무 많은 양을 마시지는 말고, 아침에 커피 한잔 정도는 괜찮다'라고 한다. 네? 아니 방금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 속이 끓고 화장실을 간다고 말했는데요? 먹거리에 대해 의사에게 뭘 물어보라는 건지 혼란을 줄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얘기지만, 미국 내에서도 의사들이 영양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의사들이 정기적으로 영양에 대한 최신지견을 공부하도록 하는 법안이 미국 내에서 발의되었으나, 의사단체의 거센 반발로 무산됐다고 한다. 다행히 최근 하버드 의대, 스탠퍼드 의대 등을 중심으로 의사가 식이에 대해 공부하고 환자에게 교육할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이 늘어나고 있으며, 몇몇 개 대학에서는 식물기반 식이를 의사에게 의무적으로 가르치겠다고 하는 학교들이 등장했다. 환영할 일이다. 왜 이제야 이런 변화가 있는지도 아쉬운 만큼.
최근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제작된 'Milked'는 이런 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대 우유 생산국가인 뉴질랜드에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하물며 갇혀있지 않고 진짜 풀밭에서 풀어서 키우는 젖소들조차도 강간, 송아지 빼앗김, 탄소와 매탄의 배출 문제, 전염병의 위험이 지워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소비자에게 보이는 환경이 조금 더 낫다고 해서 근본 원인이 해결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건강한 민족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이들은 네덜란드인들이 뉴질랜드를 점령하기 전까지 우유를 먹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유럽인들이 뉴질랜드를 점령하고 난 뒤 유제품 생산을 위해 젖소를 키우게 됐고, 점차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너무 많은' 소를 키우고 있다. 이 결과로 뉴질랜드의 상징이었던 아름다운 자연은 오염되고 있다.
작년에 채식을 다시 시작했을 때, 치즈가 그리웠다. 워낙 좋아하고 즐겨먹던 식품이었기도 하고, 비건 치즈에 대한 만족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같이 채식 모임을 하는 지인이 <여자가 우유를 끊어야 하는 이유, 제이니 플랜트 저>라는 책을 추천해줬다. 여성과학자인 저자는 유방암이 네 번이나 재발해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자연식물식을 공부한 뒤 육식 중에서도 특히 유제품이 여성건강에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리고 있다. 이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 이후 내 머릿속에 치즈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매일같이 요거트와 치즈를 먹던 사람이지만, 미련이라곤 한 톨도 남지 않게 됐다.
요즘은 파스타에 뉴트리셔널 이스트와 마늘 파우더, 잣가루와 여러 향신료를 섞어 만든 나만의 파스타용 시즈닝을 만들어 올린다. (비건 파마산이라는 이름으로 레시피가 공유되고 있지만, 빠르미쟈노 레지아노의 맛과는 완전히 다르기도 하고, 굳이 그렇게 불러야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화덕피자도 정말 좋아하는 메뉴였는데, '마리나라'라는 원래 치즈가 들어가지 않는 메뉴가 있어서 즐겨먹는다. 이스트도 쓰지 않고 천연발효종으로, 그것도 우리밀로 만드는 피자 장인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에 감사하다. 요거트는 안 먹으면 그만이다. 왜 이사실을 몰랐을까. 요즘은 오메가3를 아주 파워풀하게 먹을 수 있는 나만의 '오버나잇 오트밀'을 즐겨먹는다. 여러 가지 과일이나 향신료 토핑으로 변주하며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코를 먹을 때 캐슈너트을 갈아 라임즙을 조금 섞으면 사워크림을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요즘은 다양한 비건 치즈를 어렵지 않게 구할 수도 있다. 다만 비건 치즈도 여전히 지방이 너무 많아서 자제하려고 한다. 요즘의 고민은 오트 밀크다. 우유를 대신하는 대체제는 아마 가장 먼저 대중들에게 알려진 채식 식품군일 것이다. 그만큼 우유를 먹지 않고 대체하기도 쉽다. 스타벅스에도 두유와 오트 밀크의 옵션이 모두 가능하다. 두유를 원래부터 먹어왔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두유를 넣은 커피는 많이 어색하지 않다. 나는 두유보다 오트 밀크를 좋아한다. 커피에 오트 밀크를 넣으면 설탕을 추가하지 않아도 은은한 단맛이 돌기도 한다. 다만, 시중에 판매되는 오트 밀크, 특히 우리나라 제품들을 중심으로 식품첨가물이 두 가지 이상 들어간 것들이 많다. 안전하다고 판단되어 승인된 첨가물들이지만, 굳이 많이 먹고 싶지는 않다. '이솔라비오'라는 이탈리아의 오트 밀크는 첨가물이 없다. 귀리의 함량도 내가 먹어본 오트 밀크 중에 가장 높아서 그냥 마셨을 때 가장 고소하고 맛있다. 문제는 라테로 마시면 귀리 맛이 도드라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개봉 후 빨리 마셔야 한다. 커피엔 '오틀리 바리스타'가 가장 맛있었지만 역시나 제이인산칼륨과 탄산칼슘이 들어있다. 마찬가지로 안전하다고 판단된 허용량 내에서 사용했을 것이다. 여기에 오틀리 제품군은 채식하면 놓치기 쉬운 비타민D2, B2, B12를 추가해뒀다. 잘 만든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유제품까지 안 먹으면 진짜 힘들지 않아?'라는 질문, 혹은 '발효한 유제품은 오히려 좋아'라는 말들도 많이 듣는다. 생각보다 하나도 안 힘들어서 나도 놀랐다. 눈앞에 보이면 '오늘은 그냥 먹지 뭐'라고 생각하고 먹을 줄 알았다. 그렇게 먹더라도 스스로 죄책감 같은 건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가끔 생선구이는 먹고 싶어도 유제품은 별 생각이 없다. 눈앞에 잔뜩 차려져 있더라도 그렇다. 그렇다고 나랑 같이 밥을 먹는 상대가 치즈가 듬뿍 올려진 음식을 먹는 것에 별 감정을 느끼지도 않는다. 내 기분을 상하게 하려고 치즈를 먹는 게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도 내가 치즈를 먹지 않는 게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알면 내 채식을 이해하고, 응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라면, 할 수 없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