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지향인들을 힘 빠지게 하는 질문, 나도 궁금해서 계산해봤다.
채식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단연코 1위는 단백질에 대한 것이 아닐까? 채식하면 단백질이 부족하지 않아?라는 질문을 받으면 '곡물에도, 콩에도, 초록색 식물에도, 심지어 과일에도 단백질이 있어'라고 답해준다. 그럼 곧 따라오는 후속 질문.
채식 단백질은 완벽한 단백질이 아니지 않아?
식물로 얻는 단백질이 동물성 단백질보다 질이 떨어지지 않냐는 말이다. 이 말은 식물성 단백질이 우리 몸에서 필요로 하는 - 외부에서 음식을 통해 섭취해야 하는 아미노산 8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오해에 기반한다. 약 100여 년 전, 동물 쥐 실험을 통해 식물성 단백질보다 동물성 단백질이 설치류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를 얻었고, 이것이 오랜 시간 동안 '식물성 단백질은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포함하지 않아서 질이 떨어진다.'는 왜곡으로 이어졌다. 물론, 아주 몇십 년 전부터 식물성 단백질이 모든 필수 아미노산을 포함하고 있다는 연구들은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여러 연구들을 근거로, 미국, 캐나다, 영국 등에서는 잘 구성된 채식 식단은 인간의 전주기(영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모두)에 적절한 식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잘 구성된 채식 식단'은 흰쌀과 풀만 먹는 그런 채식이 아니라, 통곡물, 과일, 다양한 채소, 씨앗류, 콩류를 다양하게 섭취하는 것이다.)
아무튼, 정크 비건식을 하는 게 아니라면 단백질 섭취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나는 실제로 내가 어느 정도 단백질을 섭취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단백질뿐만 아니라 몸이 필요로 하는 여러 무기질과 비타민들은 잘 먹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건강검진에도 기본 영양 검사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본격적인 채식 지향의 삶을 200일이 조금 넘게 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번 체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Cronometer'라는 서비스는 내가 먹은 음식을 입력하면 꽤나 자세하게 섭취 영양소를 분석해준다. 해외 서비스이기 때문에 '두부조림'이나 '고사리무침'같은 것들이 미리 분석되어있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으며, 아무리 내가 무게와 양을 재서 먹는다고 하더라도 조리시간이나 방법에 따라 영양소 파괴의 오차를 계산하지 못한다. 또한, 나의 소화능력에 따라 실제로 내 몸에서 소화, 흡수한 영양소의 양은 물론 달라진다. 그러나, 채식을 하면서도 내가 충분한 영양을 잘 섭취를 하고 있는지, 또는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에 충분한 영양을 주고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해보기에 훌륭한 서비스다.
우선 회원가입 후 나는 영양소 섭취 타깃을 수정했다. 기본 설정은 내 키와 몸무게, 체지방률에 따라 필요로 하는 전체 칼로리의 45%를 탄수화물에서, 25%를 단백질에서, 30%를 지방에서 얻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나는 자연식물식 가이드에 따라 80%를 탄수화물에서, 20%를 단백질에서, 10%를 지방에서 얻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었다. 다만, 탄수화물에서 당(sugar)의 섭취는 별도로 분석되니 당은 최소로 섭취하는 것으로 따로 눈여겨보도록 한다. 지방질도 세부 분석이 되는데, 트랜스지방, 포화지방은 물론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섭취량도 분석해주니 이 부분도 눈여겨보도록 한다.
서비스 가입 후 첫날 아침으로 오버나이트 오트밀과 병아리콩 피넛버터 쿠키를 먹고, 점심으로 팥칼국수를 먹었다. 저녁은 콩을 듬뿍 넣어 지은 밥을 봄동과 무나물을 넣고 고추장을 조금 넣어 비벼먹었다. 참기름은 넣지 않았다. 팥칼국수에 팥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집에서 만들어본 경험을 토대로 대충 입력했다. 밥은 계량컵으로 현미 3컵에 귀리 한 컵, 검정콩 한 컵과 청색 콩 반 컵을 넣어 만든 것이고, 냉동 밥 용기 개수로 나눠서 한 그릇 양을 계산했다. 봄동은 리스트에 입력되어있지 않아 일반 배추로 대신했다.
몹시 흥미로웠다. 첫째로 삼시 세 끼와 간식까지 모두 기름을 먹지 않았는데도 지방의 양은 넘치게 섭취했다. 아침으로 먹은 오버나잇 오트밀에 견과류와 플렉씨드, 치아시드, 헴프 시드를 더한 것에서 지방을 많이 섭취했고, 콩에도 지방이 들어있어서 더해졌다. 다만 오메가 3가를 충분히 차고 넘칠 만큼 섭취해서 오메가 3와 오메가 6의 비율이 1:2도 되지 않은 정도이니,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백질은 충분히 섭취했고, 필수 아미노산을 모두 다양하게 잘 섭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미네랄도 충분했고, 비타민은 몇 가지가 좀 부족했다. 비타민D는 점심을 먹으러 오가고, 사전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햇볕을 충분히 쬐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비타민 B12는 오트 밀크 음료(오틀리)에 첨가된 것으로 조금 섭취했다. 매일 먹지 않아도 되는 영양소기 때문에 미량을 먹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자평한다. 비타민E는 조금 부족했고, 마그네슘이 충분한 만큼 칼슘은 충분히 먹지 않았으므로 칼슘 섭취를 잘할 수 있는 방법도 고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정확한 분석은 내가 먹은 식사를 실험실로 보내 분석하는 것일 테고 이 사이트의 분석은 대략적인 것이겠지만,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는 비슷하게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고 본다.
둘째 날엔 끼니를 두 끼만 먹었다. 아침으로 사과와 오버나잇 오트밀을 먹었고,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이탈리아 콩 수프를 끓여먹었다. 간식으로 사과 하나와 천혜향 하나, 그리고 선물 받은 비건 버터쿠키 2조각을 먹었다. 버터쿠키는 영양성분이 분석되어 있어 그 값을 입력했다. 콩 수프는 만들면서 계량을 했기 때문에 레시피를 그대로 입력했고, 덜어 먹은 양만큼 입력해 분석했다.
버터쿠키는 역시 지방이었다! 어쩐지 고소하고 맛있었다. 아침에 먹는 오버나잇 오트밀에 들어가는 설탕의 종류를 몰라시스로 바꿨더니 칼슘이 좀 늘었다. 어제도 야외 활동을 했으므로 비타민 D는 충분했을 것이다. 필수 단백질 중 몇 가지가 좀 부족해 보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언제나 식이섬유와 포타시움처럼 동물성 식품을 주로 먹는 사람들에게서 부족한 영양소는 많이 먹는 것으로 나타난다.
매일 먹는 것을 하나하나 입력해서 분석하는 일을 지속할 수는 없지만, 요 며칠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나름 공부도 되고 재미있었다. '건강은 숫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믿는다. 내 LDL 콜레스테롤이 90이면 건강하고, 100이면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뇨병 환자들의 평균 수명이 더 길다는 연구가 있다.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을 더 신경 쓰고, 정기적으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기 때문이다. 평생 과도하게 음주와 흡연을 하고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고도 100세까지 살다가신 집안 어르신들도 있다. 채식보다 키토 제닉을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도 열심히 그 근거를 만들어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단백질과 미네랄을 충분히 먹었다고 해서, 내 건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채식이 정말로 충분한 영양소를 모두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인지, 특히 내가 먹고 있는 식단이 괜찮은지를 확인하는 것은 앞으로도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된다. 채식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거나 평소 건강한 채식을 하다가 최근 바빠져서 가공식품을 많이 먹은 채식인들, 혹은 채식을 하지 않더라도 식단관리를 한다면 한 번쯤 해볼 만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먹는 음식을 매번 계량해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으므로 이런 정성을 투자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ENFP 치고는 꽤나 분석적이지 않은가... 스스로를 자평해보며, 앞으로도 가끔 새로운 음식을 주로 먹게 되는 날에 식단을 분석해보려고 한다. 어쩌겠는가, 나는 이런 게 너무 재미있는걸!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사이트에서 회원가입 후 사용하면 된다! 영문사이트지만 크게 어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