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느릿느릿 달리더라도, 달려봤다는 것의 의미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이 싫었다. 그중에서도 달리기와 철봉에 매달리기를 제일 싫어했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운동회에서 나는 보란 듯이 달리기를 꼴찌로 들어왔다. 얼마나 느리게 뛰었냐면, 내가 속한 그룹이 나 빼고 모두 결승선을 통과해 선생님들이 다음 그룹의 달리기를 준비하느라 새 테이프를 들고 있던 그 테이프를 끊고 들어간 정도였다.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는 엄마와 할머니를 향해 나는 '엄마! 나 1등이야? (테이프를 끊고 들어왔으므로...)'라고 양껏 뿌듯하게 외쳤던 그 장면은 아직도 '흑역사'가 되어 회자되고 있다. 그렇다고 달리기 말고 다른 운동은 곧 잘했느냐? 물론 아니다. 단체줄넘기처럼 나 하나 때문에 우리 팀이 꼭 지고야 마는 그런 운동을 하고 나면 어린 시절의 나는 운동회고 뭐고 삽으로 운동장을 파고 들어가 꽁꽁 숨고만 싶었다. 아무튼 나는 그날 이후로 정말 운동회가 싫었다.
모임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런데이'라는 앱을 깔아보라고 했다. 달리기는 죽어도 싫지만, 하염없이 걷는 것은 좋아하던 나에게 '매일 즐겁게 걷기' 프로그램도 있으니, 일단 앱을 깔라고 했다. 그냥 혼자 걸으면 그만인데 뭣하러 그런 앱을 까냐고 했더니, 내가 걷고 있으면 친구로 등록된 사람들이 응원의 박수를 쳐줄 수 있다고 했다. 그때는 수술 후 회복을 하고 있을 기간이었고, 지나가던 개미에게도 어서 나를 응원하라고, 내가 지금 이렇게 땅에 발을 디디고 걷는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게 아니냐고 따져 물을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본격적으로 응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는 앱이라는 점은 나를 바로 설득시켰다. 물론, 매일 얼마나 걸었는지, 어떻게 걸었는지 등의 기록도 남는다고 열심히 설명했지만,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회복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빠르게 걷기를 하다가 고관절을 다쳤다. 빠르게 걷기를 할 때는 정말 빠르게 걸었다. 지금 뛰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걸었는데, 한 동안 누워 지내다 그렇게 빠르게 걸었더니 자세가 바르지 않았던 탓이었다. 아무튼 걷기마저 잠시 쉬게 되면서 런데이 앱도 잠시 잊혀 갔다.
그러던 8월 중순, 저녁을 먹고 가볍게 한강으로 산책을 갔다. 런데이 앱은 켜지 않았고, 더운 여름밤 강바람을 쐬며 조금 속도를 내어 걷고 있었다. 주로 하는 산책 코스를 꼬박 다 걸으면 7천5 백보 정도가 된다. 그날따라 그 7 천보가 넘는 걸음을 느리지 않게 걸었는데, 걸은 것 같지도 않은 느낌이 들었다. 다이어트한답시고 백반집에 가서 밥공기를 열지도 않은 채로 반찬만 먹고 나온 그런 기분이랄까? 아무튼 뭐에 홀렸는진 모르겠지만, 냅다 뛰었다. 아마 1분 정도 뛰었을 것이다. 뛰는 행위 자체에 큰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절대로 그 이상을 뛰지는 않았을 것이다. 1분을 뛰었는데, 별로 힘이 들지 않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이전보다 조금 더 길게 - 그래 봤자 2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렸다. 조금만 빨리 걸어도 숨이 차고 심장이 뛰던 그 두렵고 기분 나쁜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더 이상의 도전은 나에겐 '투 머치'였으므로 걷기를 조금 더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저 달리기 했어요!' 모임 카톡창에 흥분해서 쏟아냈다. 내가 걷다가 뭔가 모자란 느낌을 느낀 것과, 두 번 뛰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러고도 괜찮았다는 사실을 쏟아냈다. 아니 누가 1분씩 뛰는 걸로 이렇게 난리법석을 한단 말인가. 내 끝없는 오바-육바-칠바까지 듣고도 팔바-구바로 되돌려주는 모임 사람들은 그게 바로 인터벌 러닝이라며, 오늘 대단한 운동을 해 낸 것이라고 영혼을 끌어모아 응원해줬다.
지난해 8월 15일, 처음으로 런데이 30분 달리기 연습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1주일에 3번 달리기를 하는 스케줄로, 1분 뛰고 1분 쉬기로 시작해 뛰는 시간을 1분씩 점점 늘려가다 마지막 주에는 20분, 25분, 30분씩 연속 달리기를 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달리기를 처음 시작하고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일주일에 4일씩 뛰다가 인대를 다쳐 그 뒤로 달리기를 하지 않는 이들이 몇 있었다. 일단 일주일에 3일씩이나 달리는 것은 나랑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으므로 주 2회를 목표로 했다. 이마저도 겨울 찬바람이 불면서, 제주도로 한 달 살기를 가면서 아예 달리지 않는 기간이 생겼지만...
1분을 달리고 1분을 쉬고, 또 2분을 달리고 2분을 쉬고.... 10분을 달리고 5분을 쉬고, 15분을 달리고 5분을 쉬었다 15분을 달리고, 결국은 5분 걷기-30분 뛰기-5분 걷기로 이어지는 여정. 가장 놀라운 것은, 이게 죽을 만큼 힘들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늘 마지막 5분을 남겨두고는 시계를 자주 보긴 했지만,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거나 다리가 너무 후들거린다거나, 혹은 무릎이 아프다거나 하는 일이 한 번도 없었다. 런데이 가이드 음성은 초지일관 나에게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옆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뛸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뛰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거의 빨리 걷는 속도 정도로 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30분을 뛰려면 애플 워치로 119라도 바로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었지만, 한 회 한 회 달리기를 거듭할수록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런데이 가이드와 90-2000년대 댄스가요 플레이리스트만 있다면, 모든 것이 가능했다. (안다. 나도 우아하게 모짜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 같은 것을 들으며 뛰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시작과 끝을 정확히 잘 알고 있는 음악, 그중에서도 천천히 뛰는 호흡과 비슷한 빠르기의 음악을 골라야 한다.)
세상에, 동네 사람들. 제가 30분을 쉬지 않고 뛰었어요! 결국 8주의 프로그램을 거의 반년만에 끝냈다. 중요한 건 끝냈다는데 있다. 주로는 중간에 계획이 틀어지면 그냥 없던 일로 해버리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지만, 달리기는 그렇지 않았다. 어쨌든 뛰고 나면 온 몸에 피가 돌면서 열이 후끈 나는 그 느낌도 좋았고, 할 때마다 박수를 쳐 주는 모임 사람들의 응원도 좋았고, 8주 프로그램 스케줄에 완성 도장을 찍어나가는 재미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려울 때는 일단 실수로 시작하는 것처럼 무턱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작한 일을 끝낼 확률은 작게나마 있지만, 시작하지 않은 일을 끝낼 확률은 0이기 때문이다. 서로의 달리기를 응원하는 기능이 있다는 말에 넘어가 이 앱을 깔지 않았더라면, 걷는 게 지겨워 한번 달려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달리지 못하는, 운동회 공포를 가진 사람으로 남아있었을 것이다.
"아니, 우리 모모님, 언제 이렇게 컸어요!!"
8주 프로그램 완주를 2번 남겨두었을 때 같이 운동모임을 하는 사람이 한 말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 맴돈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운동에 있어서 만큼은 이것저것 많이 시도하고 달리기와 클라이밍도 꾸준히 하는 멋진 여성은, 진심으로 나의 꾸준한 달리기를 응원해줬다. '나 진짜 많이 컸죠.'라며 응석을 부려본다.
'런데이' 외에 다른 달리기 트레이닝 앱을 써본 적이 없어 비교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겨우 걷던 나를 30분 달리기까지 데리고 왔으니 가히 신통방통한 앱이 아닐 수 없다. '날씬한 몸매를 원하십니까?'라는 운동의 목적을 다이어트에만 둔 발언이라던지, 달리다 마음에 드는 이성을 발견하면 인사를 건네보라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사족 같은 멘트들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미운 정으로 쳐 두려고 한다.
30분 달리기 도전. 2021년 8월 15일에 시작해 2022년 2월 22일에 완성했다. 이제는 런데이 앱 내에 있는 다른 달리기 훈련 프로그램으로 꾸준히 달려볼 것이다. 이번 주만 지나면 날씨도 좀 풀릴 것 같으니, 달리기에 더할 나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