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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하면 엄청 힘들겠다.”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사람들은 왜 알면서도 몸에 해로운 걸 먹을까?

by 망원동 바히네

며칠 전 좋아하는 피자가게에서 ‘마리나라’ 피자를 포장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리나라’는 마늘이 들어간 토마토소스만 올려 구운 화덕피자다. 원래부터 치즈를 쓰지 않는 비건 피자. 맛의 핵심은 도우에 있다. 적당히 짭짤하면서도 쫄깃한 도우는 아주 가벼운 소스만으로도 피자의 맛을 끌어올린다. 과거에 치즈가 들어간 피자를 즐길 때도 도우가 맛있는 피자집 몇 군데를 정해두고 자주 다녔다. 신촌과 합정에 매장이 있는 ‘폴베리’가 그 중 하나였다. 작은 이탈리안 비스트로를 운영하시다가 피자를 포함해 파스타 몇 가지, 쿠키류 등을 만들어 파는 형태로 변신한 뒤, 폴베리는 내가 자주 가는 동네 맛집 중 하나가 됐다. 천연발효종을 직접 키워 도우를 만드시는 사장님은 가끔 우리밀로도 도우를 만드신다. 사장님이 이것저것 연구하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아무튼 갑자기 채식을 마음먹은 이후에도 폴베리에 있는 마리나라 피자를 자주 사 먹었다. 신촌점은 매장이 있어서 갓 구운 피자를 바로 먹을 수 있다. 뜨겁게 굽혀진 마리나라는 적당히 짭짤하고 쫄깃하면서 상큼한 토마토와 알싸한 마늘맛이 어우러진다. 딱 기본적인 맛인데 그게 참 질리지 않고 균형 잡혀있다.


며칠 전엔 사장님이 직접 피자를 포장해주셨다. 마리나라를 포장하시면서 사장님은 나에게 “비건이세요?”라고 물었다.

“네!”

“와… 엄청 힘드시겠다.”

“폴베리 마리나라가 있어서 안 힘들어요!”

웃으면서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이었다.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은 뒤 외식을 대폭 줄였기 때문에 사실 힘든 것은 딱히 없었다. 가끔 채식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과 갑작스럽게 외식을 해야 할 때, 조금 불편한 식사자리가 되긴 했지만 그래 봐야 지금까지 한두 번이었다. 내가 채식을 결심한 것은 단순히 내 입에 맞는 기호식품을 바꾼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일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억지로 나에게 고기를 먹이는 일을 만들지도, 그런 일이 생겨도 불편해하며 억지로 먹지도 않게 됐다.


오히려 채식을 결심하고 난 뒤로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따라 맞다고 판단되는 일을 다른 핑계를 대지 않고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늘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행복감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나는 육식과 가공식품이 내 몸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육식이 지구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육식이 동물을 잔인하게 착취하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회식이 있어서’, ‘나는 고기를(생선을) 너무 좋아해서’, ‘채식은 너무 비싸거나 힘들어서’, '채식 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라는 핑계들로 채식을 미루거나 지속하지 못했던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요즘의 하루하루가 더 감사하다. 나의 신념에 따라 내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잘 되지 않는 일이 비단 먹을거리를 바꾸는 일뿐만이 아니다. 운동을 매일 하는 것이 좋은 걸 알지만 여전히 매일은 못하고 있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지만 이 또한 매일은 못한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더 공감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는 일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줄 알지만 잘 되지 않는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렇긴 하지만…’, ‘이 정도면 됐지…’하는 말들로 미루고 포기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끔은 알면서도 '이러는 내가 정말 미워'져 자괴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루에 두세 번, 매일매일 반복되는 먹는 일은 그 반복성과 연속성 때문에 내 몸과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무엇이 몸에 안 좋은 음식인지 잘 알고 있다. 탄산음료와 양념치킨을 저녁으로 먹고, 간식으로 첨가물과 당, 지방이 가득한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면서 그 음식들이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먹는 음식을 선택할 때는 '낙관적 편향성'이 작동한다. 이는 흡연자들이 흡연의 위해를 과소평가하면서 흡연을 지속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건강하게 먹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평균보다 스스로가 더 건강하게 먹었다고 답변했다. 이는 실제로 평균보다 더 건강하게 먹지 못하는 사람들과 BMI가 높은 비만 인구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먹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고 나서 실험을 한 경우에도 사람들은 본인의 답변을 평균보다 더 건강하게 먹는 것으로 답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사람들이 뭘 먹는진 몰라도, 나 정도면 꽤 건강하게 먹는다고 생각한다는 '낙관적 편향'이 나타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첫 번째 언급한 연구에서 답변을 한 시점 이후 6개월쯤 지났을 때부터, 실제로 기존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먹는 식습관 개선이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먹는다.'는 본인의 답변 내용에 맞춰 행동을 변화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때문에 이 연구에서는 딱히 낙관적 편향성을 완전히 없앨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모든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아닌 듯 하지만,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어쨌든 식단을 바꾸는 일은 여러모로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몸에 대한, 지구와 동물의 살 권리에 대한 책임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내 행동을 바꿀 수 있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일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채식하느라 많이 힘들지 않냐고? 먹고 싶은 것만 먹고, 먹기 싫은 건 안 먹는데 그게 힘들 리가.





References



1. Sproesser G, Klusmann V, Schupp HT, Renner B. Comparative optimism about healthy eating. Appetite. 2015;90:212-8.

2. Klein WM, Kunda Z. Maintaining Self-Serving Social Comparisons: Biased Reconstruction of One’s Past Behaviors. Pers Soc Psychol Bull. 1993;19(6):7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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