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게 지천으로 있어도 노동이 없인 먹을 수 없다.
본가가 시골인 애인 부모님 댁에 친구를 데리고 놀러 갔다. 방문 목적은 쑥개떡과 꽃놀이. 지천으로 핀 꽃을 포고 쑥을 좀 뜯어 떡을 해먹을 요량이었다.
우리 엄마는 쑥 뜯는 것을 좋아한다. 많은 엄마 세대의 엄마들이 그러하듯, 채집의 재미를 오랜 세월 느끼며 사셨다. 비싼 호텔을 예약해 여행을 간 날에도, 우아한 옷을 휘감아 입고 호텔 근처 산책을 하다가도 쑥만 보면 쪼그려 앉아 엄마는 쑥을 뜯었다.
"엄마, 가자!! 옷 구겨진다!! 신발에 흙 다 묻었네!!"
앙칼지게 엄마를 말려도 엄마 귀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이렇게 깨끗하고 좋은 쑥이 지천에 널려있는데, 가긴 어딜가노? 나는 못 간다. 엄마야. 이 쑥 좀 봐라."
나는 나름 효도를 한답시고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간 것이었는데, 엄마의 여행 목적은 쑥을 뜯는 것이었던 것 같다. 결국 트렁크 가득 쑥을 싣고서야 엄마는 그 자리를 떴다. 왜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차에 실려있던 자루 두 개에 가득 실은 쑥은 떡이 되어 우리 집으로 배달됐다. 나는 이 많은 떡을 1인 가구가 어떻게 다 먹냐고, 괜히 고생을 사서 한다고 볼멘소리를 하면서 친구들과 떡을 나누고 냉동실 가득 떡을 채웠다. 바쁘고 힘들어 밥할 기운이 없는 날마다 냉동실의 쑥떡은 근사한 한 끼가 되었다. 집에 쟁여둔 쑥떡이 없는데 쑥이 먹고 싶으면 집 근처 떡집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한 끼 분량으로 깨끗하게 포장된 떡이 3천 원. 먹고 싶을 땐 언제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먹을거리였다.
쑥 채집에 일가견이 있는 엄마 덕에 나는 어릴 때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다 쑥 뜯는 것을 택하는 이상한 어린이였다. 엄마 옆에 쪼그려 앉아서, 또 때로는 혼자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 옆 풀밭으로 옮겨서 쑥을 뜯었다. 집 앞엔 커다란 대나무 숲이 있었고, 나는 초여름이 되면 죽순을 끊어오는 것을 놀이로 여기는 아이였다. 엄마의 채집 취미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고로 나는 쑥 뜯는 행위에 대한 모종의 자만심을 깔고 시골로 여행을 갔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엄마의 쑥 뜯는 기준은 여리고 털이 보송보송하고 깨끗한 쑥을 뜯어 국에 넣고, 그 쑥이 국에 넣으면 맛이 없을 정도로 자라면 휙휙 꺾어 떡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을 갔던 지역은 아직 날이 차서 이제 막 여린 쑥이 올라오고 있었다. 떡을 할 만큼 쑥을 캐려면 엄청난 양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린 쑥으로 이 양을 채우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인과 친구, 애인의 부모님이 모두 합세해 한참을 뜯어 체중계 위에 올렸지만 저울은 허무한 숫자만을 우리에게 던져줬다. 쑥은 왜 이렇게 가벼운 것인가. 위로 한 뼘쯤 올라온 쑥을 뜯는 게 아니라 여린 쑥을 뜯어야 했기 때문에 흙과 잡풀이 함께 뜯어졌다. 하나하나 쑥을 다듬어가면서 뜯고 나서도, 거실 한가운데 쑥을 모두 쏟아붓고 한번 더 다듬어야 하는 지루하고 고된 작업을 거쳐야, 마침내 냄비에 들어가 데쳐질 준비가 다 된다. 펄펄 끓는 물에 살짝 쑥을 데치면 온 집안에 쑥 향이 돈다.
"한증막에 온 것 같아."
내 기준에서 요즘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다. 좋아하던 찜질방에 못 간 지 3년째, 쑥 데치는 향기에 잠시 노스탤지어에 빠져본다.
다섯 명이 합심에서 뜯은 쑥은 데쳐져 방앗간으로 보내졌다. 쑥떡도, 쑥 인절미도 아닌 쑥개떡을 만드신다고 했다. 경상도가 고향인 나는 '장떡'만 먹고 자라 '개떡'이 뭔지 정확히 몰랐다.
"개도 먹는다고 해서 개떡이지. 요즘 개는 아무거나 안 먹거든. 개도 먹을 정도로 맛있어서 개떡이야."
아버님의 농담에 합심하여 맞장구를 친다.
쑥개떡엔 쑥과 쌀이 2:3으로 들어간다. 무게로 따져서 2:3이기 때문에 부피로 따지면 쑥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정말 쑥은 한 자루를 뜯어도 3킬로가 안된다.) 기름도 없이 소금과 쌀과 쑥만으로 반죽을 한다. 버터를 넣은 것도 아닌데 반죽에 윤기가 돈다. 손에 묻지도 않는다. 방앗간 사장님 솜씨가 월드클래스다. 반죽은 집에 다시 가지고 와 동글납작하게 빚는다. 찜기를 올리고 살짝 쪄 내면 드디어 쑥개떡을 먹을 수 있다.
'띠용....!'
내 노동의 참맛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쑥개떡은 정말 충격적인 맛이었다. 채 자라지 않은 여린 쑥만을 모아 만들어서 그런지, 정말 방앗간 사장님의 마법이 깃든 건지 몰라도 쑥향이 기분 좋게 확 퍼지는 그 맛이 너무 좋았다. 앉은자리에서 개떡 네 개를 먹어버렸다.
집에 가져가서 해 먹으라고 반죽을 잔뜩 챙겨주셔서 들고 왔다. 집 앞에서 뜯은 머위잎도 크게 한 봉지, 떡 하고 남은 쑥도 넉넉히 챙겼다. 논두렁에 아무렇게나 자란 달래는 삽을 한번 훅 집어넣으면 만워너치쯤 뽑힌다. 냉이도 흐드러지게 아무 데나 자라는데, 다 먹지 못해 캐지 못했고, 캐지 못해 꽃이 피고 말았다. 냉이 꽃을 처음 봤다. 안개꽃처럼 수수한 꽃이었다. 식량이 되진 못한 냉이는 꽃을 피우고 씨를 퍼트려 내년에 다시 냉이로 만나게 되겠지.
집 앞에 지천으로 먹을 것들이 가득하지만 그 무엇도 노동 없이는 얻어내기 힘들다. 야생으로 자란 달래는 뿌리가 제멋대로 자라 씻는데 수고가 더 필요하고, 냉이도 캔 다음 다듬는데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 앉은자리에서 네 개나 홀랑 먹어버린 쑥개떡은 다섯 명이 붙어서 쑥을 캐고, 데치고, 반죽하고, 쪄야만 먹을 수 있다. 여름이 되면 시장에 2개 1천 원에 파는 파프리카도, 한 대야에 3천 원인 토마토도, 큰 망에 3천 원인 양파도 오랜 시간 많은 노동을 거쳐 오는 것들이다. 매년 달라지는 날씨 탓에 예측이 어려워 골머리를 앓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 사람이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농업인데, 그 가치는 날마다 더 떨어진다. 가치가 떨어지니 효율을 높여야 하고, 결국 땅에 무리가 가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어진다. 미국에서 1950년대의 밭작물과 현재의 밭작물을 비교했을 때, 단백질과 무기질, 비타민 함량이 적게는 6퍼센트에서 38퍼센트까지 줄어들었다는 보고가 있다. '유기농'이 상술에 불과하다는, 또 실제로 유기농 인증제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부를 떠나, 거대한 두려움과 답답함이 한데 섞인 마음이 든다.
쑥떡은 맛있었고, 머위 잎은 어른의 맛이었으며, 함께 챙겨주신 딸기는 완숙이 된 상태로 아침에 딴 것이라 꼭지까지 빨갛고 달았다. 남은 쑥은 콩가루를 넣어 국을 끓였다. 쑥에 들어간 된장은 엄마가 담근 3년 된 된장이다. 쑥떡에 들어간 쌀도 애인의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거둔 쌀이다.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내 입으로 들어온 귀중한 먹거리,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싹싹 먹었다.
아 참, 떡은 죽었다 깨나도 비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