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어둠이 내리면 공기는 한순간에 향을 바꾼다. 창문 너머 들어오던 차 소리와 옆집 부부의 대화 소리마저 사라지면 주광색 조명만이 방 안을 채우려 홀로 분주하다.
밤이 되면 자야 한다. 하루의 3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을 '잠'이라는 죽음과 흡사한 행위를 해야 인간은 살 수 있다. 28년간 하루도 잊지 않고 해오던 일상이 요즘 들어 어렵다. 머리만 대면 잠들 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떤 날은 누워서도 한참을 뒤척여야 간신히 잠에 든다. 오늘은 잘 잘 수 있을까. 핸드폰으로 할 수 있는 잡스러운 일들을 마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잠에 들기 위해 애쓴다. 알람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후 베드 테이블에 올려놓고 민트향이 남아있는 입안에 침을 굴린다. 두 팔을 이불 밖으로 가지런히 꺼내어 양손을 포갠다.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참는다. 하나, 둘, 셋. 어쩔 땐 다섯까지 센 후 아주 옅고 길게 숨을 끝까지 뱉어낸다. 언젠가부터 생긴 습관이다. 미지근한 공기는 코를 타고 들어와 온몸을 돌고 들어왔던 길로 나간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느긋해지라며 몸에 끊임없이 신호를 보낸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감각을 느껴보는 명상법을 따라 해 보지만 종아리쯤에서 낯선 녀석이 들어온다. 낮 동안 뭉친 껄끄럽고 불쾌한 마음 조각이 발톱 밑에 숨어 이불속으로 들어왔나 보다. 잘못 뱉은 말, 마음과 달랐던 행동, 어긋난 오늘의 계획, 과거의 인연까지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왔는지 꾸역꾸역 비집고 나와 옆에 눕는다. 이때 잠에 들려면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생각을 꼬리를 끝까지 파헤쳐 바닥까지 확인하는 것, 재밌는 상상으로 현실의 잔상을 덮는 것, 졸려서 도저히 못 보겠을 때까지 드라마를 보다가 잠드는 것. 어떤 방법을 선택하던 지금으로부터 약 두 시간 후에나 잠이 들겠지만 어떻게든 잠에 들면 된다.
동이 트면 머리를 가득 채웠던 무한한 생각의 파편들이 장롱 밑으로, 침대 밑으로 흩어질 것이다. 눈을 떴을 땐 이미 그것들이 자취를 감춘 후일 것이다. 방 안 구석까지 빛이 들고 사람 소리가 창문을 타고 들어오면 지난밤과 다른 사람이 된 냥 하루를 시작하면 된다. 오늘도 평온한 잠을 방해할 껄끄러운 조각들이 모르는 새 몸에 늘러 붙겠지만, 밤이 이 모든 걸 가지고 갈 것이다. 어둠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그것이 오늘 뒤척여도 괜찮을 유일한 안심이자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