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말들로 지금처럼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해야지
"내가 원래 좀 느리잖아."*
노래 '스물'을 들으면 한 사람이 떠오른다. 나에게 '조금은 늦는 사람'이란 말을 해주던 사람. 생각이 많아 선택도 결정도 그리고 후회도 늦게 하는 나에게 그 사람의 말은 딱 맞는 표현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또 마음에 들어. 신중한 거니까.'
그러니 조금 늦어도 곁에만 있으라던 사람. 그때는 우리의 속도가 잘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우유부단한 것이었고 우리의 속도가 맞았던 이유는 언제나 그 사람이 나를 기다려주었기 때문이었다.
뭐든지 느려서 사람에게 마음 주는 것도 느린 나다. 쉽게 마음을 여는 편도 아닐뿐더러 열고자 하여도 상대의 마음을 먼저 신경 쓰다 머뭇거리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나와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사람들이다.
지난 주말, 아는 형과 등산 약속을 잡을 때도 며칠 전에 조만간 등산을 같이 하자고 말을 나눈 상태였음에도 나는 몇 번을 고민한 후에야 연락을 했다. 형에게 이번 주말에 괜찮겠냐고 물어본 뒤 바쁘면 괜찮다고, 괜히 저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같이 보냈다. 혹시라도 바쁘거나 주말 낮에 푹 쉬고 싶은데 나 때문에 같이 가는 건 내 마음이 불편하다.
"형도 네 핑계 좀 되면 안 되냐?"
형의 답장이 왔다. 네 덕분에 이번 주말에 형도 운동을 미루지 않게 되었다며 등산 코스를 몇 개 보내주며 골라보라고 했다.
며칠 전에는 아는 지인에게서 근 일 년 만에 연락이 왔다. 삶을 여행처럼 살자는 라디오의 사연을 듣다 문득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지인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아마 나였다면 생각이 났어도 멀리서 행복을 빌어주기만 했을 뿐 연락은 어려워했을 테다. 나에게는 없는 지인의 용기에 더 큰 감동을 받은 밤이었다.
생각해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한 번씩 연락이 올 때가 많다. 잘 지내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주말에 또 어딜 다녀왔는지. 반면 나는 먼저 연락을 잘하지 않는다. 생각은 많이 하지만 내 연락이 쉬고 있는 그들의 흐름을 깨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부터 한다. 나는 어떠했던가? 그들의 연락으로 나의 쉼에 마침표가 찍혔던가? 마침표가 아닌 쉼표들이었다. 문장과 문장을 연결해 주는 쉼표처럼 내 안부를 묻는 그들의 연락은 내 쉼을 다른 쉼으로 이어주곤 하였다.
집들이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어떤 선물을 해줄지 고민을 하다가 학교 앞의 꽃집에 들러 작은 꽃다발 다섯 개를 주문했다. 형수님, 제수씨, 여자친구에게 가져다드려요. 오늘 늦은 시간까지 노는 거 허락받느라 힘들었을 텐데 집에 가서 꽃다발을 드리며 점수 좀 따세요. 다섯 명의 남자들은 꽃다발을 보고 이걸 어떻게 들고 가야 할지, 어떻게 줘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뭘 어떻게 줘요. 생각나서 오랜만에 샀다고 하세요."
쑥쓰러워하면서도 막상 집에 갈 때 다들 꽃다발이 구겨질까 봐 조심스럽게 들고 가는 모습이 하나같이 사랑스러웠다. 잠시 후 집에 도착했는지 하나둘 고맙다는 연락이 왔다. 그때 한 답장에는 나에게 '낭만적인 사람, 그래서 더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이라 적혀 있었다.
낭만적이라는 말, 감성적이라는 말은 내가 종종 듣는 말이다.
'이름난 화가가 되지는 못했어도 기본적으로
아름다움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자였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얼마나 삶이 풍요로워지는지 알지 못했다. 한번
산책을 하면 열몇 가지 아름다운 장면을 발견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에서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내가 낭만적이라는 말을 듣는 까닭은 어쩌면 나 역시 조금은 아름다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겠다. 운전을 하거나 길을 걷다가, 여행을 갔을 때나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아름다운 것들을 자주 보거나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순간을 만나면 나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거나 메모장에 문장을 남겨 두곤 한다. 가끔 일행들에게 무얼 그리 찍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어떤 순간의 아름다움을 다시 만나는 일은 매우 드물었기에 나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 덕분에 내 휴대폰에는 풍경 사진과 썼다가 묵혀둔 메모들이 쌓여 있다.
얼마 전 수능을 앞둔 우리 반 학생들을 위해 떡볶이를 사주려고 분식집에 전화를 걸었다가 사장님의 친절하고 따스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져서 같은 교무실 선생님들께 한껏 신난 채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그때 동료 선생님께서 예전에 내가 겪은 또 다른 친절한 경험담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나에게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을 들으며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아름다운 순간은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다만 그 순간을 지나쳐 보내지 않도록 아름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한편 '감성적이다'라는 말은 걱정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상황과 감정에도 민감한 사람이지만 그만큼 내 감정과 상황에도 예민한 사람이란 사실을 이제 잘 알고 있다. 상대의 기분을 잘 알아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대 역시 내 감정을 읽어주기를 바랐기에 감정에 대한 민감함은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보이게 했지만, 나를 차갑게 보이게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내 모습은 사랑에 있어 서로를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만 내 감정을 드러내었다. 특히 어두운색의 감정은 속으로 삼키는 데에 익숙해져 갔다. 외롭긴 했지만 기대에서 오는 실망감보다는 그게 더 나았다.
그래도 감성적인 나의 모습은 상대의 기분을 잘 알아채어 무엇을 원하고 또 싫어하는지를 알게 해주었고, 그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나에게 편히 꺼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나를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아마도 이런 모습이 내 인복을 더 크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다.
크리스마스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지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오랜만에 카드를 사야겠다. 생각이 느려 말보다 글이 편하니 카드에 짧은 글이라도 써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서툴게나마 표현해야겠다. 다 큰 성인들에게 보내는 크리스마스카드라면 조금은 낭만적일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말들로, 그 말의 방식들로 앞으로도 지금처럼 내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해야지.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나를 좋아해 줘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 정준일, '스물' 중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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