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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Apr 27. 2024

긴 터널의 끝

우리는 '희'의 기쁨을 아는 사람

 겨울 방학이 끝나고 오랜만의 회식 자리였다. 새 학기의 시작이 주는 설렘과 걱정을 안고 여러 이야기가 오가다 얼마 전 퇴임하신 교장 선생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퇴임식에서 교장 선생님은 퇴임 후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셨었다. 앞으로 일 년간 자신은 방학을 보낼 계획이라며 전국 곳곳을, 또 외국을 다닐 거라고 했다. 모두가 소망하는 부러운 말년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회식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인해 아직 남은 빚이 있어 퇴직금을 받으면 그 돈으로 인생의 마지막 빚을 갚을 예정이며 그때가 되면 자신은 해방에 놓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것이다.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교장 선생님께서 쓰신 '해방'과 '방학'이라는 말을 가만히 되뇌어 봤다. 그분에게 퇴직은 '해방'의 순간이었기에 퇴임 후 앞으로의 일 년을 '방학'이라 표현하셨나보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마지막 날까지 교문 교통 지도와 점심 급식 배식을 하셨다. 누가 부탁한 일도, 교장이라는 직함에서 해야 할 일도 아니었다. 오롯이 본인이 원하셔서 한 일이었다.

 참 대단하신 분이셨어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술잔을 계속 기울였다.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이야기도 길어졌다. 방학의 이야기, 새 학기의 이야기, 그리고 가족 이야기까지. 그러다 한 부장 선생님께서 자신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셨다. 작년 한 해 동안 아드님과 사모님께서 많이 아팠으며 아드님과 사모님이 거의 다 나으실 때쯤 자신의 몸에도 이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었다. 이야기를 꺼낸 선생님은 작년에 나와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른 교무실 소속이었기에 우리는 그분만 많이 아프신 줄 알았다. 자기의 몸에도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의사를 통해 들었을 때 참 많은 생각이 들었고 그중에는 학생들의 생각도 있었다고 하셨다. 이 아이들의 남은 일 년을 잘 마무리 해줘야 한다는, 자신이 맡은 생활기록부만큼은 다 작성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엇이 그 순간에도 자신의 학생들을 생각나게 했을까? 전해 들은 말로 그분께서는 올해 희망 업무 작성표에 몸이 많이 아팠어서 담임을 하기 힘들 듯하다고, 다만 담임을 희망하는 분이 적으면 담임을 맡아 보겠다는 내용을 적으셨다고 한다. 사실 건강문제가 아니어도 그분께서 담임을 못 하겠다고 하면 담임을 충분히 빼줄 수 있는 연세셨다. 하지만 학교는 그분께서 많이 아팠다는 것을 알면서도 앞의 말은 못 본 체 뒤의 말에만 주목하여 올해도 담임을 맡겼다.


 옆에 있는 다른 선생님이 그분께 어떻게 버티셨냐고, 자신 같으면 세상이 나만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고개가 저절로 들려졌다. 나 혼자 어쩌지 못할 일들에 허우적거리며 막연해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들은 언제쯤 끝날지, 도대체 얼마나 더 나이가 들어야 나의 주변과 내 안이 평화로워질지를 생각했었다. 올해 초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들린 한 카페에서 본 방명록에는 수많은 이삼십 대의 아픈 청춘이 가득 써 있었다. 사랑, 취업, 친구, 가족들에 아파해 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한때 나도 끙끙 앓던 것이기도 했다. 방명록을 끝까지 읽다 그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나는 긴 터널 속에 갇히지 말기를, 터널의 끝에는 빛이 있으니 멈추지 말아 달라는 짧은 글을 방명록에 썼었다. 하지만 정작 나 역시 끝나지 않는 터널을 원망하며 지내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처럼 터널의 길이가 정해져 때가 되거나 혹은 몇 가지 과업만 이루면 언젠가 모든 터널이 끝난다고 생각해 왔던 걸까? 작년, 마흔을 앞두고 친한 형에게 내가 가진 고민들을 털어놨었다. 어른이 다 되지도 못했는데도 찾아오는 마흔이라는 나이가 부담스럽다고,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막막해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나의 말을 형은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마흔의 중반을 넘어가는 자신도 삶에 궁금증만 늘어간다며, 자신 역시 이런 고민을 아는 형들에게 이야기하면 그분들도 똑같이 어려워하는 게 삶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끝은 없는 거라는 생각이 그때도 들었었다. 그리고 오늘 회식 자리에서 들은 교장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의 이야기는 인생의 어느 시기부터 괴로움이 사라지고 안정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자신이 퇴직할 때까지 큰 빚을 지게 될지, 가족들이 돌아가며 아프게 될지 그분들도 알지 못했을 거다. 터널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음 스테이지가 또 나오는 게임 같은 삶에서 우리가 가진 목숨의 개수는 과연 몇 개나 될까?

 하지만 또 하나 분명한 건 학교에서 본 그분들은 항상 웃고 있었고, 자기 일에 매번 최선이셨다는 것이다. 묵묵히 자신의 터널을 걷고 있던 분들이었기에 두 분이 그런 아픔을 안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었다. 긴 터널 끝에 잠깐의 빛과 다시 반복되는 터널, 마치 희로애락(喜怒哀樂)이란 말 같다. '희'에서 '락'으로 가려면 '노'와 '애'를 지나야 하듯 삶은 어쩌면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여정인가 보다. 긴 터널을 여럿 안고 있는 삶. 하지만 터널의 어둠에 익숙해질지언정 그 어둠을 닮아가지는 않고 싶다. 우리는 '희'의 기쁨을 아는 사람. 그러니 '희'를 등불 삼아 '노'와 '애'의 터널을 묵묵히 걸어 ‘락’으로 향하고 싶다. 그 앞에 다시 '노'와 '애'가 있다고 한들. 묵묵히 터널을 걷는 사람들과 함께해서 그런지 오랜만에 술을 많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 밤이었다.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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