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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May 25. 2024

제주의 양손

제주처럼 쉽게 읽히는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자신이 두 손에 무엇을 쥐고 싶은지 고민이 들면 제주에 가야 한다. 


 제주는 어느 방향의 끝을 가든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혹은 그 반대로 달려가도 길의 끝에는 바다가 기다려주고 있다. 파도 소리를 많이 듣다 보니 어딜 가나 파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구름이 하늘을 '쏴아아'하고 천천히 쓰다듬으며 지나가는 듯하며, 눈도 멀리 하늘에서 내려와 한라산의 정상을 만날 때에는 '철썩'하고 쌓였을 듯하다. 귤이 익어갈 때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어쩌면 파도 소리가 들릴지 않을까? 제주는 왠지 그럴 것 같다.   

 제주의 바다를 눈으로 보려면 낮에 가야겠지만 귀로 담으려면 밤에 찾아가야 한다. 파도 소리를 제대로 들으려면 온전한 고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파도 소리가 멜로디라면 고요는 코드다. 고요의 코드 위에 파도의 멜로디가 얹어질 때 육지에서 온 손님은 바다의 노래를 온전히 들을 수 있다. 숙소를 바닷가 근처로 잡은 이유는 바다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바다를 듣기 위해서다. 너무 많이 걷지도, 저녁 술을 많이 먹지도 않고 잠자리에 들면 잠들기 전까지 파도 소리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면 제주는 우리가 잠에 들 때까지 지치지 않고 노래를 들려준다. 마치 그렇기 위해 생겨난 것처럼, 엄마처럼 그렇게.

 제주에서는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바다의 수평선과 달리 오르내리는 곡선도 볼 수 있다. 멀리는 한라산이, 가까이에는 오름들이 그 선을 채우고 있다. 오름은 높지 않아서 좋다. 등산하자는 말을 들으면 대답을 꺼릴 사람도 '오름 오를까?'라는 말을 들으면 '오름쯤은'하고 생각할 것이다. 더구나 작은 오름부터 새별오름 같이 큰 오름까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도 있으니 부담은 더 적어진다. 이처럼 오름은 사람들에게 허용적이다. 품고 있는 것이 많으면서도 까탈스럽지 않다. 오름 앞에 서면 오름은 우리에게 '맘껏 올라와서 내가 가진 것들을 보렴' 혹은 '나를 올라 멀리 있는 아름다움들을 한번 봐 보렴' 같은 말들을 건네는 듯하다. 제주의 옛 돌담들이 낮은 이유도 절처럼 폐쇄적이지 않은 오름을 닮아서인지도 모른다. 

 이런 오름이 내가 사는 동네에 없는 게 안타깝지만 오름은 제주에 있어야 오름다울 수 있다. 도시에서는 오름에 올라가 봤자 그보다 더 높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을 테고, 산이 많은 곳에 있으면 그저 하나의 작은 봉우리 취급을 받을 것이다. 오름이 제주에만 있는 건 오름이 제주를, 제주는 오름을 서로 품고 있어서다.

 파도 소리과 오름,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즐기는 법은 바다가 보이는 오름에 오르는 것이다. 오름을 따라 곡선을 타다 고개를 돌리면 길고 긴 수평선이 뻗어 있다. 그럼 마치 바람 소리가 파도 소리 같고,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파도처럼 보인다. 제주는 이렇듯 한 손에는 파도 소리를, 다른 한 손에는 오름을 쥐고 있다. 제주에 온 사람들은 제주의 양손에서 쉽게 이 두 가지를 읽어 갈 수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오름에 올라 생각한다. '나의 두 손에는 무엇이 쥐어져있을까?'라고. 사람들은 나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무엇을 읽어갈지 궁금해진다. 그게 무엇이든 다만 복잡하지 않게, 제주처럼 쉽게 읽히는 사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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