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성현 May 11. 2024

'겨울 바람'과 '겨울바람

우리는 그런 사이에게 '인연'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준다.

여행을 다니면서 쓴 글을 퇴고하기 위해 타이핑을 하던 중 '겨울 바람'에 그어진 빨간색 밑줄을 본다. 띄어쓰기가 틀렸나 보다. '겨울'과 '바람' 사이에 빈틈 없애보니 그제야 빨간 줄이 사라진다. 혹시나 해서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해 보니 '겨울바람'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겨울바람 : 겨울에 부는 찬 바람

 호기심에 계절별 바람을 다 검색해 본다. '봄바람', '가을바람'과는 달리 '여름바람'은 사전에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여름'과 '바람'이 만난 '여름 바람'이란 표현은 아직 단어로 인정되지 않았나 보다. 

 국어 교사인 나에게도 띄어쓰기는 쉽지 않다. 특히 '겨울바람'처럼 두 단어인 줄 알았는데 한 단어인 경우나 반대로 한 단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두 단어인 경우는 여전히 헷갈린다. '우리 형'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핸드폰에도 '우리형'이라고 저장한 나에게 '우리형'을 '우리 형'으로 적는 건 여전히 어색하다. 그렇게 쓰면 꼭 남의 형 같다. '겨울바람'처럼 두 단어가 각자의 의미를 그대로 가진 채 한 단어가 되는 기준은 결합의 빈도이다. 두 단어가 서로 잘 어울려 오랜 시간 동안 자주 만나 쓰이면 한 단어로 인정받아 두 단어를 띄어 쓰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 빈도의 기준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겨울'과 '바람'은 긴 세월 동안 수없이 만나 어느 순간 '겨울바람'이 된 것이다.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 같다. 띄어있는 어깨와 어깨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 두 마음은 얼마나 마주쳐야 할까? 두 단어가 그랬듯 두 마음이 서로 어울려 자주 만날 때 두 뼘에서 한 뼘으로, 그러다 둘 사이에 누구도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틈이 없어질 때 자연스레 둘은 하나가 된다. 여기에 '겨울바람'처럼 각자의 지닌 의미를 잃지 않고 만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테다. 물론 그런 사이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이에게 '인연'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준다.

 글을 계속 수정하다가 이번에는 '지난 겨울'에서 멈춰 선다. 여기에도 뜬 빨간 밑줄을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가만히 바라본다. '지난'과 '겨울'은 또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쓰였기에 한 단어가 되었을까? '너에게 쓴 마음이/ 벌써 길이 되었다/ 길 위에서 신발 하나 먼저 다 닳았다'*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원고지로는 겨우 한 칸, 노트에서 일 센티도 안 되는 거리의 담을 없애기 위해 두 단어는 몇 켤레의 신발이 다 닳도록 서로를 오갔을 것이다. 마우스 커서를 '겨울' 앞으로 옮긴다. 두 단어가 자신을 붙여 달라고 연신 포인터를 깜빡이고 있다. 손가락으로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지난겨울'에 빨간 줄이 사라진다. 문득 어깨가 시근해진다. 




-

천양희, '너에게 쓴다' 중에서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이전 13화 긴 터널의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