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나는 사소한 순간을 사랑한다. 며칠 전 한 모임에서 앞 사람이 케이크 가루를 흘리고 당황해 할 때 그 옆 사람이 휴지를 꺼내 조용히 닦아주는 모습을 보았다. 앞 사람이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닦아줬던 이도 작은 목례로 인사를 받아주는 모습을 보며 나는 세상을 조금더 사랑할 수 있었다. 반대로 자연스럽게 남의 책을 만지는 사소한 모습에도 나는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예민하다는 말을 괜히 듣는 게 아닌 듯 하다. 하지만 그런 예민함이 사소함으로 인한 거라면 어쩔 수 없다. 나의 세상은 이렇게 사소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지금까지 읽은 문장 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이다. 피천득의 문장들은 모두 작고 아름답다. 하지만 작은 돌 하나가 호수의 파장을 일으키듯 그의 글들이 오랫동안 많은 이에게 큰 울림을 주는 모습을 보면 그의 문장이 결코 작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어렸을 적 큰아버지는 나를 보고 샌님 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자 그저 웃으시며 '얌전하니 작고 작아'라고 하실 뿐이었다. 뒤늦게 단어의 뜻을 알고 큰아버지께 따지고도 싶었지만 해가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건 나를 보며 사랑스럽게 웃으시던 그분의 미소였다. 그리고 정말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세상에 작고 작은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답답해하고 또 누군가는 느리다고도 하지만 나는 그런 걸음으로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삶의 풍경들을 지켜보며 사진으로, 또 어떨 때는 이렇게 작은 글들로 남기고 싶다. 그리고 나를 지나가는 사람들도 거창한 육교보다 천변의 돌다리를 걷듯 사뿐사뿐 지나가 주었으면 한다.
하루를 시작하자마자 오늘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제 겨우 갓 시작한 나의 하루를 그렇게 여길 수 있게 해준 건 출근길에 아름답게 떨어지던 오동나무 잎과 며칠 전 도와줬던 작은 일의 보답으로 내 책상에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커피 한 잔이었다. 귓속에 있는 이석이 몸의 균형을 유지해준다고 한다. 그 작은 돌 하나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흔들리면 사람이 어지러움을 느낀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날 오동나무 잎과 커피 한 잔은 내 하루를 흔들리지 않게 해준 이석이었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작고 작은 일로 나의 생활을 구성하고 싶다.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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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 '나의 사랑하는 생활' 중에서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