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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Aug 17. 2024

마음 지불

선물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선물을 고른다.

     

 어느새 훌쩍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조카의 책가방을 조카들과 함께 본다. 최근 상어에 푹 빠진 조카는 상어가 잔뜩 새겨진 가방을 고른다. 밤이 되면 몇몇 상어 그림이 형광으로 빛난다고 하니 사고 예방에도 좋을 듯하다. 같이 온 첫째 조카가 아직 말이 서툰 동생을 대신해서 동생의 취향과 생각을 중간에서 잘 전달해 준다. 형과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듯하다. 세 살 터울의 형도 나를 살뜰히 챙겼었고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어렸을 때 나는 형을 졸졸 따라다니는 걸 좋아해서 심지어 형이 학교에서 캠프를 갔을 때조차 떼를 부려 따라갔다고 한다. 첫째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가방을 선물하지 못했었다. 미안한 마음에 조카가 좋아하는 캐릭터의 장난감도 함께 사준다. 두 살 터울의 이 남매는 이제 같은 학교에 다닐 것이다. 둘이 등교와 하교를 함께 모습을 그려 본다. 둘째 조카는 벌써 가방을 메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왼손에는 첫째 조카 손을, 오른손에는 둘째 조카의 손을 잡고 마트를 나선다.      


 오래전에 봐둔 모빌을 사러 소품 가게에 들른다. 곧 한 아이의 아빠가 될 친구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다 이미 아이에게 줄 선물은 많이 받았을 것 같아 친구의 아내에게 줄 만한 것을 찾아본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의 사랑꾼인 친구이니 아내가 좋아하면 친구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친구를 통해 많이 들어본 제수씨는 아기자기한 것을 좋아할 것 같다. 우리 집에 종종 놀러 왔던 친구가 집에 있던 장식품을 보고 자기 아내도 이런 거를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으니까. 예전에 보았던 집안 장식용 모빌이 아직도 있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상점 한쪽에 여전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종류도 많아진 상태로. 호박빛의 묘한 색이 돋보이는 모빌과 함께 라탄 퀼트 장식을 집었다. 며칠 후에 만난 친구의 얼굴에는 걱정과 설렘이 가득했다. 병원과 산후조리원도 알아보고 이런저런 육아용품을 구매하느라 하루가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준비한 선물을 건네며 직접 조립해야 하는 모빌이니 실수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인다. 제수씨 취향이 아니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었지만, 다음날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나니 안심이 된다. 라탄 퀼트 장식은 지금 한창 꾸미고 있는 아이의 방 입구에 달 예정이라고 한다.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줄 친구의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순천을 향해 여행을 간다. 원래는 남해로 갈 예정이었지만 이왕 남도 쪽으로 가는 길이기도 해서 광양에 아는 동생을 만나볼 겸 연락을 해 보니 자기가 일하는 미술관이 순천에 더 가깝다며 순천에서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 순천에 마지막으로 왔던 건 5년 전 미국으로 공부를 떠나는 친구와 함께였다. 그때 샀던 브로치는 아직도 내 모자에 달려있고, 친구는 미국에서 결혼을 했다. 동생이 퇴근 시간을 기다릴 겸 한 독립서점에 들러 본다. 생각보다 컸던 서점의 한쪽에 순천을 기념하는 물건들을 팔고 있다. 그중 5년 전 순천 여행 때 샀던 촛불 받침대가 아직도 있다. 여러 종류가 더 생겼지만 내가 샀던 모양과 똑같은 받침대도 여전히 있어 그걸로 2개를 주문한다. 하나는 곧 이사를 하는 동문 후배 선생님에게, 또 하나는 연말이라고 디퓨저를 선물해준 지인 선생님에게 선물해 줘야겠다. 필시 둘 다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일을 마치고 퇴근한 동생에게는 닭구이를 사준다. 맛집이라고 나를 데려간 곳은 정말 말 그대로 맛집이었고 가게가 문을 닫을 때까지 우리는 밀려 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직장 때문에 먼 타지에 내려와 있는 동생은 그동안 직장 생활과 사랑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살도 빠져있었는데 최근에 그나마 다시 좀 찐 거라고 한다. 이런 동생에게는 말을 들어주는 것과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것이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망할 놈의 세상, 마음 좀 편히 살아보자는 말과 함께 택시를 태워 동생을 배웅해주며 그날 밤 나는 동생이 다시 살이 오르고 예전처럼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빌며 잠자리에 든다.

 여행을 다녀온 며칠 후 촛불 받침대를 드릴 두 선생님을 함께 만나 선물을 건넨다. 다행히 둘 다 이쁘다며 마음에 들어 한다. 후배 선생님은 부산 여행을 갔을 때 사 온 열쇠고리를 하나씩 우리에게 꺼낸다. 강아지 얼굴이 장식으로 달린 열쇠고리를 새 학기가 시작하면 학급 열쇠에 꼭 달아서 인증 사진을 보내달라는 말과 함께. 이렇게 우린 서로에게 하나씩의 선물을 주고받게 된다.


 이렇게 2월은 선물을 고민하는 시간이 주는 설렘을 마음껏 즐긴 달이었다. 그 설렘은 선물을 해주는 내가 역으로 받는 선물이다. 사실 아무리 상대의 취향을 고려한다 해도 어느 정도는 고르는 사람의 마음에도 들어야 하는 것이 선물이다. 그러다 보면 너무 내 취향을 반영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상대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마음은 선물할 때 돈과 함께 지불하는 비용이다. 하지만 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그 '마음 지불'은 나에게로 환불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배로. 이 점이 선물을 하게 되는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한다.

 우리 집 곳곳에 있는 선물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선물을 고르고 있었을 때 그 사람이 들었을 기분을 생각해 본다. 그 어느 곳에서 나를 떠올리고 내 취향을 떠올리는 시간을 내어준 점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여전히 그 선물들을 보며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선물을 해줬던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선물'이란 단어의 '선(膳)'에는 착할 선(善) 자가 들어가 있는데 선(善) 자에는 '착하다'라는 의미 이외도 '좋다', '소중히 여기다' 등의 의미도 있다. '선물'이란 단어에 왜 저 한자가 포함되어 있는지 알 것 같다.

 3월에도 선물할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선물할 일이 생긴다는 것은 축하나 기념해야 할 일, 때로는 내 위로와 응원이 필요할 일이 있다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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