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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성현 Aug 24. 2024

당신이 두고 간 시선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시선으로 남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 본다.

 요즘 들어 내 눈에 밟히는 건 당신이 두고 간 시선이다.

 휴대전화 속 당신의 흔적은 이미 지운 지 오래. 하지만 며칠 전 오랜만에 앨범 속 사진들을 무심코 내려보다 내가 나오는 낯선 화면이 있어 눌러 보니 당신이 내 휴대전화로 나를 찍은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서 나는 카페 안을 구경하느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그에 맞춰 화면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영상이 몇 개 더 있었다. 아마도 당신이 아닌 내가 나오는 영상이라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잔디 위에서 당신 앞에 앉아 있는 나를 가까이서, 바닷가에서 노을을 찍고 있는 나를 먼발치에서당신은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당신을 보며 해맑게 웃다가도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하면 어색해지는 내가 그 안에 있었다.

 영상 속 화면은 종종 흔들린다. 아마 당신은 눈을 들어 나를 바라봤으리라. 나를 바라봐 주던 당신의 눈을 떠올려 본다. 영상에는 당신의 웃음소리도 작게 담겨 있다. 아마 나와 눈이 마주쳤으리라. 나를 보고 웃음 짓던 당신의 입술을 떠올려 본다. 그렇게 나를 지켜보았을 보았을 당신의 시선을 영상 너머로 그려본다.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시선으로 남겨질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해 본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 당신을 배웅하고 있는 나를 보다 당신은 휴대전화를 꺼냈었다. 그리고 희미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찍기 시작했다. 그 사진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날은 우리가 헤어지던 날이었으니까. 사진 속 내 웃음은 자연스럽지 않았을 텐데. 당신이 그 사진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나처럼 이미 지웠을지도. 하지만 당신의 앨범 속 다른 사진들 틈에 내가 찍어준 당신의 사진이나 영상이 아직 남아 있어 사진 너머의 내 시선을 떠올리는 당신의 하루를 상상해본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당신은 없는 영상 속에서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다 끝내 이런 글을 남기고 있는 나처럼, 당신도 나를 떠올리다 당신만의 방식으로 나를 남기고 있다면 그건 우리에게 남은 행복일까? 아니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잔향 같은 슬픔일까?

 당신이 찍어준 내 모습들을 별도의 폴더에 모아본다. 바로 지우지 못하는 이유가 사진 속 나를 지울 수 없어서인지 사진을 찍어주던 당신을 지울 수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열어보지 않기 위해, 언젠가 다시 사진들을 내려보다 당신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게.     





글, 사진 :: 임성현

Insta :: @always.n.alld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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