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자른다는 건 세상에 공격적이지 않겠다는 다짐.
손톱을 자르는 시간이 좋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정갈해지는 순간.
하얀 휴지 하나를 깔아 놓고 그 위에 툭- 툭- 나의 일부를 잘라낸다.
손톱을 자른다는 건 세상에 공격적이지 않겠다는 다짐. 손톱은 몸에서 세상을 향해 나 있는 것 중 부드러운 것으로 가려지지 않은 유일한 존재다. 이 작은 날카로움이 타인에게 생채기를 내지 않을는지. 손발톱을 감추지 못하는 우리는 손톱을 자르는 행위로 그것을 대신한다.
누군가에게 낸 생채기를 생각해 본다. 거리에선 어깨만 부딪혀도 사과를 건네면서, 의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타인에게 준 상처에는 아무런 용서를 구하지 않은 때가 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표출하는 분노와 남들이 모르게 드러내곤 하는 적대감과 때로는 내가 입힌 상처를 상대가 눈치채지 못했다는 안도감, 세상을 향한 나의 이런 태도가 더는 자라지 않길 바라며 손톱을 자른다.
손톱을 자른다는 건 묵은 나를 보내주는 일.
어느새 또 이만큼 자랐구나.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몇 주의 세상이 손톱에도 기록되어 있을 텐데. 함께 시간을 공유한 것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내가 한동안 나였던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보내준다. 어쩌면 손톱이 다시 자랄 것을 알기에, 버려도 되돌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담담하게 손톱을 잘라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버리는 중. 지난 몇 주간 쌓인 흔적을 버리고, 나의 시간을 버리고, 그렇게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가며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한다. 이런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부질없는 의미 부여로 여전히 붙잡고 있는 것들도 언젠가 버릴 수 있지 않을까? 오늘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가벼워지고 있다.
한밤중에 손톱을 자르면 쥐가 물어가 먹어 내가 된다는데. 이 밤, 우리가 그렇게 만나게 되면 서로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궁금하다. 동일한 삶을,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내가 나에게 무슨 위로를 꺼낼지. 손을 맞잡은 우리가 과연 먼저 울게 될지, 웃게 될지.
갓 깎은 손톱이 까끌까끌하다. 이 낯선 촉감. 하지만 너는 곧 내가 그랬듯 금방 갈려지겠지. 세상은 우리보다 더 단단하고, 삶은 생각보다 더 단호하니까.
조금 전까지 나의 일부였던 손톱들이 하얀 휴지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어떤 것은 초승달로, 또 어떤 것은 그믐달로.
툭- 툭-, 손톱을 자르는 시간이 좋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나를 보듬어 주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