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방식

사랑은 지문과 같아서 세상에 같은 사랑은 없다

by 임성현

옛사랑에 대해 쓴 글에 지인의 댓글이 달렸다.

- 서툴지만 그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댓글에 답글을 남겼다.

- 어떤 사랑의 방식은 인생의 한순간에만 가능한 듯해요.


얼마 전 자주 가는 찻집의 독서 프로그램에서 ‘보낼 수 없는 편지를 보낸다면 누구에게 보내고 싶나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흔한 내 답변과 달리 한 참여자분께서 자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 멀리 있는 사람, 오랫동안 혼자 좋아한 사람,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사람. 그럼에도 그 사람에게 보내고 싶은 편지라니.

- 아.

짧은 탄식을 뱉었다. 나 역시 그 외롭고 적막한 시간을 안아봤었기에 외로움과 적막함에도 끊을 수 없는 그 마음을 잘 알았다. 모두와 함께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며 실례를 무릅쓰고 나이를 물어봤다. 혼자 좋아하던 마음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마음이 되기까지 기다리며 일 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던 오래전의 나와 같은 나이였다.

끝을 각오하면서도

미어짐을 못 견디던 때였고*

삶은 정해진 회차를 따라가다 보면 인연이 끝내 이루어지는 드라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지금, 저런 사랑을 내가 또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랑에 나는 충분히 지쳤다. 애꿎은 찻잔만 만지며 조금 전에 뱉어진 탄식이 이런 나를 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지문과 같아서 세상에 같은 사랑은 없다. 나만 하더라도 상대에게 빠지게 된 계기나, 그 계기가 연인으로 이어지던 과정도 모두 달랐다. 첫 연애의 나는 너무 서툴렀고, 두 번째 연애의 마음은 너무나 빨랐고, 일 년을 기다려 이루어진 그 세 번째 연애에서는 끝도 없이 못난 나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그 다음의 연애는 결국 불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었다. 몇 번의 연애 끝에 사랑을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새로운 이와의 사랑은 언제나 낯설었고, 그 낯선 사랑의 방식 앞에 나는 늘 미숙했었다.

사랑의 방식이 다른 이유는 사랑에 삶의 시기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지난 연애를 돌이켜보면 그때라서 그런 사랑에 흠뻑 젖었고, 그때여서 그 사랑은 증발했다.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떤 사랑을 하게 될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서툶과 모자람과 불안을 지우고 사랑을 하게 될는지. 아니, 오히려 그 시기라서 가질 수 있었던 나의 무엇인가를 놓친 채 사랑을 하게 될 듯하다. 그때의 그대들도 그때의 내가 가지고 있던 그 무엇을 사랑했기 때문에 나를 바라봐주었을 것일 테니, 나 홀로 돌아가 하는 사랑은 불협화음만 일으킬 뿐이다. 다른 시기 앞에서 같은 사랑은 있을 수 없다.


첫 연애로부터 거의 이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의 내가 가지고 있던 무엇이 상대에게 나를 사랑하게 해주었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나의 무엇이 사랑을 끝냈는지는 아직 잊지 않았다. 앞으로도 같은 사랑은 없겠지만, 같은 아픔을 반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내가 지나고 있는 이 시기에 나는 또 어떤 사랑의 방식을 풀어나갈까. 지금의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헤아려본다. 여전히 낯설지라도 그것들을 손에 쥐고 사랑 앞에서 덜 미숙했으면 한다.



-

* 박준, 「은거」 중에서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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