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원하는 복

내 인복의 근원은 사람을 믿는 것에서 발원하고 있었다

by 임성현

나에게는 두 가지 복이 있다. 주차 복과 인복이 그것이다.


먼저 어디를 가든 내가 자리할 주차 자리 하나는 꼭 있는 주차 복.

덕분에 주차 때문에 혼잡한 곳에 차 끌고 가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차에 혹시나 생길 흠집을 먼저 걱정한다. 이미 많은 경험으로 입증된 나의 주차 복은 이미 지인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있어 내게 주차 복이 있으니 내 차를 타고 가자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그 말이 본인이 운전하지 않으려는 심산일지라도 운전을 좋아하는 내게 그쯤은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내 복을 나눠줄 좋은 기회이지도 않은가.

물론 주차 자리가 매번 쉽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하루는 자리가 없어 같은 곳을 뱅뱅 돌다 빠져나가는 차를 보고 냉큼 그 자리에 차를 집어넣은 적이 있다. 봤냐? 옆자리에 탄 친구에게 주차 복을 뽐내자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 이게 무슨 주차 복이야. 그냥 자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 거지.

없으면 나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찾아보는 것, 그것이 내 주차 복의 발원이라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친구 말대로 이런 걸 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어찌 되었든 주차 자리가 쉽게 나타나는 복 덕분에 가까운 카페가 됐든, 먼 여행이 됐든 고민 없이 떠날 수 있으니까.


다음은 인복이다.

인맥이 넓지도 않은 내게 인복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했을 때다. 시험에 몇 번이나 낙방하는 동안 내 현실과 달리 마냥 행복해 보이는 휴대전화 속 세상을 보기 어려워 SNS를 지웠었다. 그러다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날, 스스로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고 싶어 SNS 계정을 다시 활성화하였다. 하지만 막상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 무슨 말을 적어야 할지 막막했다. 몇 줄의 말로는 그동안의 소회를 다 풀 수 없었다. 긴 고민 끝에 그동안 나를 믿고 기다려준 부모님과,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언제나 응원을 해주던 친구들과, 조언을 아끼지 않던 교수님과 선후배들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감사의 말을 남겼다. 그 글을 남기며 내가 인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 이후로도 나를 향한 정서적 지지뿐만 아니라 정말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상황에 부닥치면 꼭 누군가 '짜잔' 하고 나타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 준 적도 많았다. 우리 형의 말처럼 의자에 오래 앉아 있기 말고는 할 줄 아는 것 없는 내가 지금처럼 지낼 수 있는 이유는 모두 지인들 덕분이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들을 통해 힘든 시기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인복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걸까? 주차 복과 달리 불분명한 인복의 발원지는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그러다 최근 자주 가는 찻집에서 ‘당신이 기대는 믿을 구석은 무엇인가요’라는 주제로 독서 프로그램이 열려 이에 대해 오래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주제에 맞는 책을 선정하기 전에 과연 나는 무엇을 믿는지를 먼저 고민해 보았다. 교사로서 교육의 힘을 믿나? 책을 자주 보니 밑줄 친 문장들을 믿나? 긴 시간의 고민 끝에 내가 믿는 건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


그 결론을 따라 신형철 평론가의 책을 프로그램에 가져가기로 했다.


지난겨울, 강원도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 초등학교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사건 다음 날 학교 앞에는 세상을 떠난 아이를 추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눈이 쌓인 담장에는 추모의 글이 적힌 메모지와 꽃, 생전에 아이가 좋아했을 법한 과자와 실제로 아이가 좋아했다는 연예인 사진이 놓이기 시작했다. 비극을 일으킨 사람이 나와 같은 교사여서 그랬을까, 담장 앞을 쉽게 못 벗어나는 사이 한 초등학생 무리가 과자를 들고 와 담장 앞에 두고 갔다. 잠시 후 그중 한 학생이 돌아와 과자 봉지를 뜯어 놓고 다시 떠났다. 자기보다 어린 아이가 행여나 과자 봉지를 잘 못 뜯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안에서부터 올라오는 뜨거운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어 담장을 향해 손을 작게 흔들고 학교 옆에 솟아 있는 집으로 걸음을 돌렸다. 여행 전 아침, 베란다에서 학교를 바라보며 그 아이의 부모가 남긴 인터뷰를 떠올렸다. 종교에 상관없이 아이를 위해 10초만 기도를 해달라던 부모의 말. 그 말을 주머니에 넣어둔 채 3박 4일의 여행을 다니는 동안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나는 십자가나 불상, 혹은 돌탑 같은 종교적 기호를 만날 때마다 아이를 위한 기도를 10초간 올렸다.

몇 번의 기도를 올리다 내가 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 눈앞을 스쳐 간 건 다시 돌아와 과자 봉지를 열어 놓은 아이의 손이었다. 신은 너무 멀리 있으니 결국 믿을 수 있는 건 그런 손길이었다. 행여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우리 곁에 있다고 하여도 나에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존재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떠난 이를 위한 마음을 발하는 사람의 손길이 더 미더웠다.

올해 갑자기 부서가 바뀌며 새로운 부장님과 일을 하게 되었다. 조금씩 새로운 부서에 적응하고 있을 때쯤 누군가 나를 붙잡고 부장님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를 건넸다. 그 말을 들은 후부터 내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던 부장님의 호의 속 이면을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내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건 부장님의 다정함이었고, 한 사람의 다정을 의심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괴로워지는 건 나 자신이었다. 왜 그 사람은 내게 그런 말을 건넸을까, 나를 걱정해서 해준 말이라는 걸 잘 알았지만 의심을 심어 준 그 사람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결국 그 말을 잊어버리고 대신 내게 마음을 주는 이의 다정을 믿기로 했다. 나중에 상처를 입어도 그건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고, 지금 괴롭든 나중에 괴롭든 결국 괴로움은 같을 테니 그 괴로움을 잠시 뒤로 미뤄도 괜찮을 듯했다. 더구나 나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어서 나중의 괴로움이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신형철의 책을 다시 읽으며 내 인복의 발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주차 자리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같은 자리를 뱅뱅 도는 것처럼 내가 믿고자 하는 사람을 끝까지 믿고 그 주위를 서성이는 것. 내 인복의 근원은 그렇게 사람을 믿는 것에서 발원하고 있었고 그들을 향한 믿음이 나를 향한 다정한 시선으로 회귀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 믿음으로 상처받고 다시 긴 시간을 울게 될지라도 나의 믿음을 믿고 싶다. 별거 없는 내가 또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이 복 때문이었으니까. 어쩌면 내가 선물하기를 좋아하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을 내 곁에 붙잡아 내 인복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심산일지도 모르겠다. 이기적일지라도 내 인복의 끝이 없기를 바란다. 당신이 나를 살리는 중이라 여겨 주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복들에 대해 그건 진정한 복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믿으면 그것이 자신의 종교가 되는 것처럼 내 복도 믿으면 진정한 복이 되지 않을까. 믿는 자에게 신이 존재하듯 오늘도 나는 이 믿음으로 내 복을 발원(發願)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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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철, ‘인생의 역사’ 중에서





글, 사진 :: 임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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