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토양과 공기를 먹고 자란 작물이란 걸...
도시를 떠올리면 '24시간 편리한 딜러 버리 서비스' , '다양한 볼거리' , '추가 배송 요금 X' , '잘 터지는 와이파이' 등 편리한 것들이 너무도 많지만 밤에도 눈과 귀가 피곤할 것 같은 시끄러운 소음과 각종 공해가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가, 더 자연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생긴다. 또한 묵묵히 책상에 앉아서 내 결정이 아닌 상사의 결정과 허락을 받고 일을 해야 하는 암묵적인 이 공간에서도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가끔씩은 답답하고 화가 날 때도 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월급날만 기다리고 넘어가버리는 이 재미없는 인생을 보고 있으면 한숨만 절로 나온다. 공장에서 돌아가고 있는 기계와도 다를 바 없는, 감정이 싹 메말라버린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성인이 되자마자, 도시의 빡빡한 삶을 뒤로하고 도시의 삶을 모두 청산하신 후 넓은 논과 밭 자연으로 뒤덮인 시골 마을로 내려가셨다. 서울 토박이였던 우리 엄마가 흙을 밟고 산다니, 엄마 때문이라도 금방 다시 서울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덧 9년 차가 되어버린 두 분은 그곳에 완전히 정착하며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가끔씩 놀러 가는 부모님 집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서 과자를 살 수 있는 편의점조차 없다. 심지어 가로등도 집 주변에는 없어 밤이 되면 온통 암흑세계로 바뀐다. 저녁이 되면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나긴 정막과 푸르른 하늘 속 반짝이는 작은 별과 달 그리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뿐이다. 서울에서 느끼는 경적음, 구급차 소리 등 여러 잡음이 섞이지 않은 자연 친화적인 이곳에 오게 될 때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물론 이곳에 살면 불편한 점들도 많긴 하다. 부모님은 조금 덜 불편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기보다는 그냥 불편함을 받아들이며 살고 계신다. 어쩌면 자연 하나로 모든 단점들을 커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동네가 가진 좋은 장점 중 또 하나는 계절마다 보여주는 다양한 풍경 때문이다. 계절별로 볼 수 있는 풍경이 다양해 눈이 즐거워진다. 도시에서 잘 듣지 않았던 새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더 잘 들리게 되고 또 비를 좋아하는 나한테는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하나까지도 마음에 든다. 천천히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아직은 도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내 나이가 40대에 접어들 때면 자연의 소리와 향기를 벗 삼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