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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품 Mar 23. 2022

사과

오늘도 죄송합니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나는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물론, 진짜 미안해서 하는 사과는 아니다. 죄송하다고 말해버리면 일단 그 상황이 더 커지지 않고 빨리 종료될 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그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의 입장에서 비슷한 의도의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있기에, 눈치가 빠른 사람 입장에서는 그 말이 얼마나 의미 없는 말로 들리는지, 거짓된 사과인지 안다. 그럼에도 상황을 회피할 때는 그만한 말이 없기에 자주 사용하게 된다. 


그러나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사과를 하다 보면, 상황은 빨리 종료될지 몰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 저자세가 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말마다 제각기 가진 힘이 있는 건지,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모든 문제 있어서 문제가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점을 고쳐야 하는 사람으로 되어버린다. 말을 내뱉는 순간 몸이 자연스럽게 나를 '잘못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것 같달까, 심리적인 자세가 나도 모르는 사이 낮아지는 것이다. 사과는 필요한 '순간' 에만, 진정성 있는 마음을 담아 살아가고 싶다. 당연한 것인데도 나에겐 아직 용기가 필요하다. '그냥 내가 잘못한 것'으로, '그냥 내가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덮어두고 넘어가지 않는, 사과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선 사과하지 않을 수 있는 당당함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타인을 향한 어느 정도의 맞춤은 필요하다. 하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해주느라 나의 색까지 흐려진다면, 그때는 멈춰야 한다. 지금의 나는 멈춰야 할 지점을 발견하는 것과, 그 지점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혜롭게 멈추는 것이 참 어렵다. 내가 추구하는 진정한 삶의 모습은, 나의 색깔을 지키되 다름 사람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주변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정말 미안할 때 진심으로 사과하고, 하고 싶은 말을 지혜롭게 하며 사는,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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