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1인치 차이로 결정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엔 가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액자로 걸어 놓을 만큼 나름 집안에서 비중 있게 남아있었습니다. 어느샌가 다른 가구처럼 가훈도 가훈 액자도 사라졌지만 분명 나의 성장기엔 가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뤘고 자녀도 있지만, 집에 가훈은 없습니다.
가끔은 속으로 자녀가 우리 집 가훈이나 내 인생의 좌우명을 물어보면 어찌 대답할지 고민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고민의 결과는 “겸손과 인내”였습니다.
그간 살아오면서 내가 부족했던 혹은 나름 유용했던 경험의 결과였고, 나중에 바뀔지언정 현재로선 그렇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의 문화와 정서에는 겸손이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겸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요하게 여겨지지만요.
하지만, 겸손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처럼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고 축적된 성과가 있거나 내실이 있을 때, 즉 뭔가 남이 인정해 주고 부러워할 만한 그 무엇인가가 있을 때만이 겸손이라는 말이 성립합니다.
속된 말로 쥐뿔도 없는 사람과 상황에서 겸손이란 단어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조직 내에서 가끔씩 성과를 이루거나 공(功)이 있는 사람들이 그 성과를 나누거나 감사의 의미로 겸손의 표현을 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정작 해야 할 준비와 검토, 계획을 하지 않아서 엉망진창의 결과를 앞에 두고 하는 겸손의 멘트와 몸짓은 겸손이 아니고, 변명에 불과합니다.
이런 미숙함을 우리는 아마추어라고 비판하곤 합니다.
물론 일 잘하는 아마추어들도 많지만, 프로와 아마추어는 결국 그 대상을 통해서 내가 금전적 이익을 보느냐가 기준일 겁니다. 그 기준에 따르면 직장인들은 다 프로여야 합니다.
프로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회사가 돈이 없다고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 것처럼, 그 무게가 곧 프로인 직장인이 일을 잘해야 하는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일을 잘해야 하는 프로가 자신의 미숙함과 게으름을 겸손의 멘트로 위장하고 넘어가려 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위장의 멘트는 결국 자신의 마인드와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하게 되고, 그 정당화는 결국 실수와 아마추어적인 일처리를 인지할 수 없게 만들어서 결국 악순환을 반복하게 만들 뿐입니다.
아마추어는 겸손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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