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의 물품 대금 기준 일은 매월 15일이다. 마침 이번 해는 15일 전에 명절이 끼어 있었다. 명절 전에 납품 대금을 결재하는 것은 벤더에겐 꽤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 요즘도 대기업에서 상생 경영을 명분으로 명절 시즌에 대금 결재를 미리 지급했다고 美談 기사로 나온다. 담당자는 부서장에겐 아무런 보고도 없이 결재 문서에 보일 듯 말 듯 지급일은 13일로 수정했고, 특정 업체가 조기 결재를 재촉했다는 이유로 그 업체만 더 빨리 지급할 수 있는지를 자금 담당 직원에게 물었다. 그 사실은 거꾸로 재무 부서에서 부서장에게 확인이 들어왔다. 부서장의 추궁에 담당자는 전 직장에서 그리 해서 그리 했단다. 수백 개의 벤더들의 형평성 문제 제기와 불만은 어찌할 거냐는 질문에 그저 생각 못했단다. 더 나아가 부정행위에 대한 합리적 의심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도 없었다.
과거에 모 대기업 회장이 기업은 이류, 관료는 삼류, 정치인은 사류라는 말을 해서 grade 논쟁이 온 사회에 불어온 적이 있었다. 여전히 조직 안에서는 자원과 가치의 희귀성에 따라 당연히 급수 논쟁은 이어져 오고, 다들 일류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싶어 한다.
조직 내에도 공식적인 평가등급 자체가 용어는 S, A, B, C 혹은 Excellent, Very good 등 표현만 다를 뿐 결국 사람을 역량이나 성과를 가지고 등급을 나누는 것은 여전하다.
흔히 질이 떨어지는 대상을 삼류라고 부른다. 숫자 삼(三)을 좋아하는 동양 문화가 반영된 듯한데, 조직 내 삼류의 기준은 무엇일까?
첫째, 룰과 프로세스를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다. 존재하는 룰과 프로세스를 알지도 못하고 일을 하는 건 등급 외로 치겠다. 즉, 룰과 프로세스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성향, 성격대로 일을 한다. 특히 자신의 성격대로 일 하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대부분 성격상 公私구분이 안 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지인들과 식사 비용을 요즘 흔한 더치 페이, 1/n을 하자 하면 도무지 이해를 못 한다. 또 업무 시에는 보고를 기피한다. 이미 공사 구분 미약에서 드러났듯이, 자신의 경험이 판단 기준이기에 상사나 내부 프로세스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는 인식이 전혀 없다. 그저 자신의 경험과 판단 기준에 부합하면 옳은 것으로, 극단적인 확증편향 오류를 보인다.
둘째, 투명하지 않다. 불투명의 양상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말 부정 감사를 받아서 책임을 져야 할 마땅할 잘못과 비리를 저질러서 이를 감추기 위한 것이 한가지요, 또 한 가지는 자기 멋대로 업무를 한 이유를 물으면 정확한 이유를 대지 못할 정도로 자가당착에 빠져있거나, 이미 습관화되어 그 이유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보지 않기에 왜?라는 질문에 할 대답이 없다. 마치 자기 눈앞에 공이 날아오면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아버리는 수준의 반응이다. 그래서 잘 수정도 되진 않는다.
셋째,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킨다. 마치 회의 목적에 맞지 않는 회의 자료 양식을 그저 예전부터 써오던 것이라서 라는 답변 외는 왜 그걸 쓰고 있는지 답하지 못하는 것처럼. 어느 순간 왜 이렇게 일하는지, 그래서 장단점은 없는지에 대한 인식과 인지 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그저 계속 영혼 없는 "복붙(복사해서 붙여넣기)"만을 반복하게 된다. 끝내 굳어지고 다져져서 조직 전체의 프로세스에 비정상이 정상을 대치하는 비극이 벌어진다.
삼류는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그 조직 전체가 삼류 이하로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런 리더는 자신의 자리와 업적이 온통 비정상적인 방법과 독단으로 쌓아 올려 왔기에, 비정상의 프로세스를 절대 고치려 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이를 개선하려는 구성원과 노력을 아주 열심히 제거하려고 한다. 그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 혹은 그것밖에 모르니 개선의 당위성을 모를 수도 있다.
치유 방법은 마치 외과적 수술처럼 메스로 도려내는 수밖에 없다. 환부를 도려내고서도 주변에 약물 치료를 해야 하는 것처럼, 잘못된 리더를 도려 내도 그가 조직 곳곳에 남긴 족적들을 지우는 것은 매우 지루하고 어려운 작업이다. 그 리더의 수제자들과의 2라운드 갈등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