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그 임원이 회사 밉상이 된 이유

by 독거작가 Mar 16. 2025
아래로

옛날 옛적 어느 중견 회사에 인기 없는 임원이 한 명 있었습니다.

부서원들도 그렇고 동료 임원들도 임원으로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면평가 점수도 평균 이하였습니다.

그 임원이 인기가 없는 이유는, 업무 지시가 없는 상사 밑에서 일을 만들어서 했기 때문입니다.


그 임원의 상사인 대표이사는 입사 첫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이사는 할 일 없을 거야, 대부분 내가 직접 지시하고 결정하니까.”

그 말을 듣고는 ‘그런 난 뭘 하란거지?’란 생각이 들었지만,

갓 입사한 임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과장된 표현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 조직에서 창업자의 가신으로서 수십 년 근무하여 계열사긴 하지만, 법인의 대표이사까지 올랐을 때는 그래도 기본적인 인사적인 소양과 철학은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 임원이 재직한 4년 동안 정말 제대로 된 업무 지시는 단 한건도 없었습니다.

입사 첫날 대표이사의 말처럼 그 임원은 할 일이 없었습니다. 최소한 지시받은 업무는 없었습니다. 차라리 가끔 저 높은 그룹의 탑경영진에서 오더가 있으면 있을지언정.


임원은 초조했습니다.

20년 넘은 직장 생활과 몇 번의 이직과 우여곡절 끝에 대기업 정도의 처우의 임원은 아니지만 중견기업의 임원이 됐는데, 가급적이면 최대한 오래 임원직을 유지하고 싶었습니다.

이 회사에 입사할 때 헤드헌터가 한 말도 기억이 납니다. 임원은 성과보다도 결국 정치로 살아남는다고, 그 핵심은 바로 위 직속 상사라고.

그래서 임원은 원래 소질은 없지만, 흉하지 않을 정도로 대표의 말이라면 껌벅 죽는시늉까지 해가면서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회사는 일하는 곳인데, 최소한 연말 성과평가 란에 적을 실적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기존 업무는 예하 팀장들의 실적이니 그걸 뺏을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부하직원들은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임원보다 먼저,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지적 호기심이나 성장의 욕구도 작았습니다.

그러니 매달 임원회의 자료마다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고 일을 벌이는 임원이 반가울 리가 없습니다. 그저 빨리 사라져 주길 바라는 귀찮은 존재로 인식했고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의 비협조와 수동적 공격성을 보여줬습니다.


동료 임원들도 나대는 이 임원이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집사처럼 뒤치다꺼리만 해주길 바라는데, 기획의 기본 전제인 비판적 현상 분석과 문제 제기, 대안 기획등이

본인과 본인 조직 그리고 본인 업무를 비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원래 당연한 반응이고 이 임원이 극복해야 할 저항이지만, 위에 말한 대표이사의 성향과 수준 그리고 조직의 풍토로 인해 임원 혼자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대표의 첫출근 멘트처럼 그곳엔 그 임원이 할 일이 정말 없었습니다.


그 임원은 일을 해도 빈다로 일을 안 해도 회사에서 버티기가 어려웠고 밉상이 되어 슬그머니 사라졌다는 슬픈 얘기가 전설이 되어 내려옵니다.



작가의 이전글 조직 내 빌런과 방치된 공유 모빌리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