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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나에게 준 선물

11월 회고글 : 내면의 치유와 응원하는 삶

by 윤서린

특별한 것 없는 마흔일곱 번째 생일을 앞두고 나는 나에게 어떤 선물을 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뭘 바란다고 얘기하는 성격도 아닌데 그러니 아무도 내 생일을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서 축하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무료하게 인스타를 넘겨보다가 "내 마음을 기록하는 법"이라는 피드가 보여서 들어가 봤더니 홍대에서 강연이 있는데 무료로 스무 명을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별 기대 없이 신청서를 썼다. 하고 싶은 질문에는 "'나의 글쓰기가 가족이나 지인을 슬프게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썼다. 요즘 그게 내가 글을 쓰면서 자꾸 내 글을 검열하게 되는 이유이기 때문이었다.

성인이 된 딸들이 한두해 전부터 내 생일 미역국을 끓여줘서 올해에도 내심 기대했는데 전날까지 아무도 미역국에 들어갈 국거리 소고기의 여부를 묻지 않았다. 당연히 미역을 물에 담가 불리지는 사람도 없었다.

나는 이번 생일에 미역국을 얻어먹기 틀렸다는 생각에 조금 쓸쓸했는데 나를 위해 내가 미역국을 끓이고 싶진않았다.

생일날 오전에도 5시간 동안 설거지 알바를 해야 하는 내 고단한 삶에 조금 우울하던 차였지만 다행인 건 내가 좋아하 는 bts jin이 내 생일 맞춰 데뷔 11년 만에 첫 솔로 앨범을 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게 내 생일 선물이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대체할 수 없는 엄청난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 나는 분명 그가 노래하는 노랫말에 힘을 받고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테니까. 그의 앨범 제목이 "해피"라는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와 내 생일 선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했다.

출근하면서 나는 큰애들 단체 문자방에 내가 읽고 싶었던 책목록을 네 권 캡처해서 보냈다. 이 중에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을 골라 메모를 써서 달라고. 엎드려 생일선물 받기를 실천한 셈이다.

알바 끝나고 전기장판에 누워 아픈 허리를 지지고 있는데 아무도 저녁 외식이나 생일파티에 대한 얘기가 없었다.

나는 내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로 bts 소속사가 있는 용산 하이브 근처 카페를 갈까 생각했다. 앨범 발매날이니 분명 온통 Jin의 노래가 카페에 울리고 있을 텐데. 대형 광고 버스도 있을 테고. 운이 좋으면 바로 옆에 사는 32년 지기 친구를 불러내 차라도 한 잔 마시고 올 수 있을 텐데 싶었지만 생일날 친구 집 앞에 찾아간다는 건 뭔가 축하를 바라는 모양새라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 덕메(덕질을 같이하는 친구)가 없으니 혼자 즐기다 와야겠다며 주섬주섬 옷을 입고 버스도착 시간을 확인하려 휴대폰을 들었다. 수십 통의 미확인 문자 속에 “오늘 참석하시는지 연락을 남겨주세요"라는 글이 보여 들어가 보니 글쓰기 특강에 당첨되었으니 7시까지 오라는 담당자의 글이 보였다.

지금은 5시 20분.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경의선으로 갈아타고 홍대를 가기 위해 나섰는데 네이버지도 녀석이 나를 골탕 먹이는 건지 중간지점에서 환승해야 하는 경의선 노선이 운행중단 됐다는 메시지를 띄운다. 나는 몇 분 차이로 경의선을 놓치고 화정역에서 택시를 잡아야 했다. 서 있는 택시들은 하나같이 승차거부. 결국 카카오택시를 불러 홍대로 가는데 금요일 저녁이라 차는 또 어찌나 막히는지.

멀리를 참아가며 1시간을 멈췄다 섰다 반복하는 차 안에서 화실 친구의 밥이나 같이 먹을까 하는 전화를 받으니 내가 지금 생일날 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잠시 현타가 왔다.

결국 담당자에게 지각사유를 보내고 택시에서 내리려 주변을 둘러보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bts Jin의 앨범 현수막 이 펄럭이고 있었다. "어머, 이걸 여기서 보게되다니. 기사님 저 잠깐 창문 좀 내려도 될까요?" “네~그러세요” 1시간동안 운전만하시고 한마디도 안하시던 택시기사님이 웃으신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현수막 사진을 찍었다. '뭐야~ 완전 럭키비키잖아!' 뭔가 행복한 생일 저녁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지각생이라면 으레 허리를 숙이고 강의실에 조용히 들어가 뒷자리에 앉는게 상식인데 이곳은 앞쪽 문 밖에 없어서 나는 강연의 흐름을 끊고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비어있는 맨 앞자리에 앉았다. 내향 성향의 내가 모두의 주목을 받은 이상 나는 뭔가 나를 더 각인시킬 수 있는 멘트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이유인즉, 나는 강연하시는 작가님과 행사 담당자인 출판 에디터님을 언제가 또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생일날 기적처럼 만난 인연의 단초 같은 느낌.

스무 명의 참가자들과 함께 잠깐의 글쓰기와 발표를 하면서 오늘이 내 생일이자 최애 JIN의 첫 앨범 발매일이라는 아

밍아웃(BTS 팬이라고 밝히는 것)을 하면서 지각으로 머쓱했던 분위기를 풀었다.

에디터님께는 내가 가져간 “모든 날, 모든 순간, 내 마음의 기록법"을 보여드렸다. 내가 서울와우북페스티벌에서 구입한 책인데 강연이 열린 이곳 ”그래도봄" 출판사의 책이어서 반가웠다고 말했다. 인스타에 글쓰기 특강 이벤트도 이 책이소개되길래 신청하게 되었다고. 에디터님은 책비닐로 싸여있는 내 책을 보시며 즐거워하셨다.

에디터님은 참가자들에게 홍대에 오면 조용히 책 읽고 싶을 때 이곳을 이용해도 된다는 안내도 해주셨다. 다만 책을 안 가져간다는 조건으로. 아직도 책도둑이 있다는 얘기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자기 내면의 글쓰기 강연은 세심한 사례와 실제 짧은 글을 써봄으로써 만족도가 꽤 높았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서 ‘바로 이거야. 내가 하고 싶었던 거.’ 이런 번뜩임이 스쳐갔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 내 내면의 치유에 목적이 있었지만 이런 글이 과연 세상사람들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과연 필요한 글인지 늘 고민했었다.

하지만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나같이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이런 기회로 글을 쓰며 자신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도 무엇인가를 계속 쓸 것이다. 그리고 내 내면을 더 들여다보는 글쓰기에도 도전할 것이고 가까운 나의 친구와 지인을 이 글쓰기 세계에 초대해 같이 치유하고 서로의삶을 응원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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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글쓰기 모임 [야옹시의 비밀글방] 11월 회고록에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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