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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자기만의 속도와 궤적을 남기는 존재

<보고, 10분, 사유> 물음표와 느낌표 그 사이 어딘가....

by 윤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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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를 씻는데 달팽이가 물에 둥둥 떠올랐다.

껍질 속에 얼굴을 숨기고 있어서 빈 달팽이껍데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작고 귀여운 녀석이 숨어있다니.


가만히 녀석의 행동을 지켜본다.

긴 촉수를 뻗어 여기가 어디인가 둘러본다.

생각보다 먼 곳으로 온 걸 아는 건지 촉수들이 들락날락 주변을 탐색하느라 바쁘다.


달팽이 껍데기는 인간인 우리 입장에서 보면 별로 단단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달팽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몸을 보호해 주는 칼슘으로 지어진 튼튼한 집이다.


달팽이는 성장하면서 탈피를 하지 않는다.

제 껍질을 스스로 몸과 함께 키운다.

멋진 녀석이다.


나는 성장하려면 나를 얽매는 껍질들을 벗어버려야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나보다 달팽이가 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풀밭에 놓아준 녀석이 땡볕에 그냥 있으면 어쩌나 싶었다.

상추를 씻다 말고 다시 나가보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주변 풀들을 요리조리 살펴보다 생각했다.


달팽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네...


자기만의 속도로 움직이는 달팽이.


인간의 눈에는 너무 느려서 지루하기까지 한 그의 움직임.

그 움직임이 그에게는 최선임을, 최대의 속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도 달팽이처럼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나아간다면 어떨까?

달팽이가 최선을 다해 지나간 그 자리에 남은 끈적한 점액질 길처럼,

우리의 삶도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걷다 보면 진한 궤적이 되어 우리를 증명해 줄 거라 믿는다.


자연을 통해 오늘도 하나 배운다.

느린 것 같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가는 자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

비록 달팽이처럼 긴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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