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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페트병에 쓰인 '사랑'처럼

<보고, 10분, 사유>

by 윤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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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냉소적이 될까?


내 존재의 발아자체가 남녀 간 서로 '사랑'이라 믿었던 그 감정에서 시작되었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내 존재도 그 사랑이라 착각한 감정의 소멸처럼 자라나지 못하고 어린 시절부터 소멸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어린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믿지 않기로 한 걸까?


믿었다가 또 손 놓고 떠나버리면 영영 길 잃은 아이가 될 것 같아서.


나는 사랑이라 불리기 전의 설렘과 더 이상 사랑이라 부를 수 없는 이별이라는 마음에 집중한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너무 뜨거운 감정이라서 네 영혼에 화상을 입힐 것 같다.

잘못해서 사랑이 내게 엎질러지면 살 속 깊이 그 뜨거움이 타고 내려 와 나를 다 태워버릴 것 같아서 무섭다.


사랑받지 못한 아이는, 절대적 사랑이라 믿었던 존재들의 부재로 인해 이렇게 '사랑'을 겁내는 어른으로 자랐다.


'사랑'의 본체인 '부모'로부터 그 사랑의 부정성을 경험한 나였기에.

그런 나를 누군가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겁이 났다. 믿지 않았다.


'그렇게 말해놓고 어차피 떠날 거잖아. 어차피 변할 거잖아.'

그래서인지 나는 어린 시절 '짝사랑'이라는 감정을 좋아했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되었다.

서로 싫어져 이별하지도 않아도 되었다.

사랑의 희열은 없어도 사랑의 절망 또한 없었다.


나는 내 삶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하지 않음을 고백했다.

어린 시절의 설렘이 사실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 안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물음표를 던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에게 '사랑'을 끊어내지 말라고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사랑'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다양한 감정으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나에게 '사랑'을 믿어보라고 말한다.


사랑이라고 쓰인 물병의 물을 받아먹고사는 화초처럼 나도 사랑으로 자라나 보라고 말하는 걸까?

너는 그냥 물인 줄 알았겠지만 그건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사랑이었다는 걸 알아차리라고 말하는 걸까?


나를 키운 건 페트병에 눌러쓴 '사랑'이라는 글자처럼 다정하고 소중한 누군가의 마음들이 한 방울씩 모여있었던 거라고.


그러니 시들지 말고 사랑 가득 머금고 꽃 피워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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